; 먹을 살코기가 없어 꼬리까지 다 먹었다?
최근에 한우의 맛이 K-food의 바람을 타고 전 세계인들에게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알려지는 중에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도 함께 전해지고 있죠.
소위, 한국은 과거 소고기 살코기를 먹지 못해(혹은 귀해서) 꼬리나 내장 같은 부산물만 먹었기때문에 소분해서 요리하는 기술과 부위가 다양하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1차 정형에서 미국은 8개, 유럽은 10~14개, 일본은 10~12개, 중국은 6~8개, 한국은 10개로 분할하지만 최종 정형을 하며 미국은 12~18개, 유럽은 18~25개, 일본은 30~40개, 중국은 10~15개로 분할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45~60개로 구분하고 식탁에 오르기 전 120개 부분으로 소분해서 조리하는것이 사실입니다.
먹을 살코기가 없어 꼬리까지 다 먹었다?
그렇다면 120여가지 소분된 이유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왕이나 양반들만의 소유물이었던 소의 살코기를 제외하면 서민들은 부속을 먹을 수 밖에 없어서 소분을하고 요리 방식이 발달한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분명 이 또한 항담巷談, 대표적인 Urban Legends입니다.
오히려 한국은 역사적으로 소고기 요리 문화가 매우 발달할만큼 왕에서 서민까지 소고기를 즐겼고, 모든 부위를 활용하는 것은 검소함과 높은 미각 수준의 반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소고기 살코기가 부족해 꼬리 같은 부속물까지 먹었다는 이야기는 주로 근현대사의 특정 시기와 서구권의 식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로 인해 퍼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요인이자, 잘못된 정보의 시작점은 일제강점기 및 전쟁 시기인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소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고기가 매우 귀해져, 자연스럽게 모든 부위를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궁핍했던 시기의 모습이 마치 한국의 전통 식문화인 것처럼 비치거나 과장되었던것입니다.
여기에 식문화차이가 살을 보태게 됩니다.
서구권,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소고기의 특정 살코기 부위(스테이크용 등심, 안심 등)를 선호하고 내장이나 뼈, 꼬리 같은 부속물은 상대적으로 덜 먹거나 가공육 원료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 반면 한국은 예로부터 소를 120여 가지 부위로 세분화하여 털만 빼고 모두 먹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구인의 시각에서는 한국인이 먹지 않는 부위까지 먹는다고 오해를 불러 오게 했습니다.
도축 방식과 유통 구조의 역사적 배경도 한 몫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소 도축업에 종사하던 백정들이 노임 대신 소머리, 뼈, 내장 등의 부산물을 받았으며, 이를 이용해 설렁탕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 음식들이 널리 퍼지면서 서민층의 주요 소고기 요리가 되었고, 이는 마치 살코기는 귀족들만 먹고 서민들은 부속물만 먹는다는 인식을 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소고기 사랑이었죠.
역사적으로 소는 농경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도축이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으며(우금령), 이로 인해 소고기는 늘 귀한 식재료로 여겨졌습니다.
고기가 귀했기(?)에 먹을 수 있는 모든 부위를 활용하는 지혜가 발달했고, 이러한 간절함과 애착이 부족해서 먹는다는 이야기로 와전될 여지를 만들었습니다.
유럽, 중국, 일본, 한국의 서민들의 소고기 취식
과거 농경 사회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는 농사에 필수적인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도축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유럽의 경우, 한국·일본처럼 소고기 소비 자체를 금지하는 종교‧법적 규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중세 유럽에서 소고기 소비는 계층적이었습니다.
귀족이나 부유층은 고급육으로 소고기를 즐겼지만, 일반 농민은 재산인 소를 직접 죽이는 것에 부담을 느껴 상대적으로 덜 소비했다는 경제사회적 분석입니다.
당연히 스튜나 파이 형태로 섭취한 양고기나 육류 중 흔히 구할 수 있었던 돼지고기의 가공품인 살라미, 소시지, 염장 돼지 비계(Lard 라드), 콩피(confit), 기타 특정 부위 가공품(판체타 Pancetta, 스페크 Speck, 잠봉 Jambon)등이 소고기를 구하기 힘들었던 서민들의 대체품이었습니다.
중국 역시 소고기는 농업 생산력의 상징이자 필수 요소였기 때문에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섭취가 금기시되었으며, 그 빈자리를 돼지고기와 다른 가축들이 채웠습니다.
중세 중국 평민에게 가장 흔하고 중요한 육류는 돼지고기였습니다.
돼지는 사육이 용이하고 곡물 자원을 크게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고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사육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이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소비국인 배경이기도 합니다.
1200년간 이어진 육식금지령이라는 일본의 경우는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일본은 675년 제40대 天武天皇 てんむてんのう 천화 텐무텐노가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육식을 금지했습니다.
육식 허용은 메이지유신(1868년)의 후속 조치로 1872년 이뤄져 결국 일본에서는 일본 정부가 1200여년간 이어진 육식 금지령을 해제하고 문명인이라면 육식을 해야 한다고 장려했지만 오랜 인식 때문에 서민들 사이에 서양 요리가 널리 퍼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를 보자면 알려진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세계 소고기 소비 1위국가는 아르헨티나로 1인당 1년간 51.16 kg를 소비했고 2위는 44.82 kg 로 우루과이, 37.62 kg를 소비한 미국이 3위입니다.
우리나라는 20위권 밖으로 1인당 소비량이 약 ~10kg 전후입니다.
그런데, 금지령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꾸역꾸역 소를 잡아먹었고, 덕분에 조선의 소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15세기 소의 숫자는 대략 3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는데, 16세기에 40만 마리가 되고, 이것이 가파르게 늘어나서 17세기에는 100만 마리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1775년의 조선에서는 하루에 소 1000마리, 1년에 38만 마리꼴로 도축되어 고기를 주렁주렁 걸어놓아 현방이라고 했던 푸줏간을 통해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럼 조선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소고기를 먹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대략 한우 한 마리 당 250kg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면 1년 동안 생산되는 고기는 9500만 kg, 당시 조선 인구를 1600만으로 추정하면, 1인당 5.6kg의 소고기가 돌아갑니다.
현대 늘어난 한국의 소고기 소비량에 60%에 육박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소는 고기만 먹는 게 아니고 뼈를 고아서 탕을 만들고 창자도 구워 먹고 머리는 삶아먹으며 소가죽의 안에 붙은 살점마저 긁어내어 먹습니다.
그러니까 금육이니 가난이니 해도, 조선은 의외로 소고기가 넘쳐나는 나라로, 물론 그때도 가난해서 밥 굶는 사람은 있었겠지만, 고기가 없어서 풀만 먹고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양한 부위의 소고기 요리방법은 부족함이 아니라 대하는 방식의 차이
보통 1차분할은 도체를 큰 덩어리로 분할하는 도축과 유통이 주도하고 2차분할은 판매와 조리 단위로 세분하고 마지막 3차분할은 실제 조리용 최종 형태로 셰프나 가정이 기준이 됩니다.
미국은 1차 분할에서 8가지정도로 구분하는데 쉽게 생각하면 스테이크가 어디서 나오느냐가 기준으로 해부학보다 물류의 단순성이라 할 수 있고 10~14로 분할하는 유럽의 경우 해부학과 조리 기준으로 근육 단위를 존중하고 중국의 6~8가지 분할은 근육보다는 용도로 예를들어 볶음·훠궈·찜 기준으로 힘줄과 막을 독립 재료로 인식합니다.
일본은 10~12개로 분할하는데 근육 정밀도와 마블링이 중심으로 지방을 어디까지 남길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면 한국은 1차 분할부터 조리법을 고려해 국, 구이, 찜등 부위 이름이 곧 요리명이 되는 경우가 많고 , 2·3차 세분화가 매우 발달했습니다.
최종 2, 3차 분할은 품종·정형사·식당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표준 평균으로 감안한다며 미국은 12~18로 분할해 컷 중심으로 3차분할에서는 스테이크 이름이 결정되는데 , 근육보다는 컷 형태에 주력하고 셰프 개입은 최소로 정형의 끝은 접시 크기가 결정합니다.
유럽은 18~25부분으로 요리 중심으로 2차에서 이미 조리 전제가 결정되고 3차는 요리에 맞춘 최소 가공을 하며 정형의 끝은 레시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최종 10~15부분으로 형태(슬라이스·큐브)로 근육명은 거의 사용 안 하고 요리 동작이 기준이 되며 정형의 끝은 조리 동작에 맞추어져 잇습니다.
일본은 조금 더 세밀한 3차 분할에서 30~40부분으로 근육·지방을 분리해 같은 등심도 상품이 다수이고 지방을 남기는 위치가 핵심으로 정형의 끝은 지방의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가장 많은 45~60부분으로 1차에서 감안하고 2차부터 요리가 명확해 3차는 구이, 국, 찜 전용으로 구분하고 소비자 인지에의해 가장 세분화하며 정형의 끝은 조리법이라고 여겨집니다.
즉, 미국은 크게 나누고, 잘라서 팔고 유럽은 정형이 곧 요리라고 생각하고 중국은 형태가 부위를 대신하고 일본은 근육을 나누고 지방을 설계하며 한국은 조리법이 곧 부위명이 됩니다.
한국의 경우 이렇게 부위명과 조리법이 긴밀해 다양한것입니니다.
역사적으로 소는 노동력으로 도살을 제한하고(우금령), 소고기 소비는 의례, 약용, 국물 중심으로 한 번 잡으면 모든 부위를 의미 있게 써야 하므로 남김없는 분화했습니다.
조리적 이유로 한국은 특이하게도 지방과 연도에의 해 구이, 결과 콜라겐에 의해 국이, 결 방향에 의한 찜과 결, 색, 위생에 의한 육회가 모두 발전을 했습니다.
같은 근육이라도 결 방향을 바꾸면 전혀 다른 요리가 되어 예를 들어 앞다리로는 부족해 꾸리, 부채, 갈비덧살이 필요했던것입니다.
유통 구조면에서 서구의 경우 레스토랑과 도매 주도인데 반해 한국은 동네 정육점에서 주문을 대응하는 형태로 정육사는 이 부위로 뭐 해 드실 것인지를 질문하며 요리 의도에 맞춰 이름을 만들어 분화했습니다.
언어 문화측면에서 일본은 한자와 가타카나 체계인것에 반해 한국은 고유어와 묘사어가 다양해 예를들어 살치살 (지방이 ‘치마처럼’), 새우살 (형태 유사), 홍두깨 (도구 비유)처럼 시각적·촉각적 언어는 이름을 증가시켰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 등급제 도입되며 한우에 마블링 이 부각되며어 구이 시장이 폭발, 조금 다른 맛도 상품화되고 부위명도 덩달아 급증했습니다.
즉, 한국의 부위명은 해부학이 아니라 요리·언어·유통의 집합체입니다.
그래서 외국인은 너무 많다고 반응하는 반면, 한국인은 다 달라 보인다고 생각하게 된것이죠
다음에 이어서 한우, 흑우, 와규와 유럽, 미주지역 소고기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