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다섯번째 이야기, 집이 되었던 한옥의 지붕
한옥의 깊은 처마는 태양의 직사광선을 막아 대청 같은 반 외부공간에는 옅어진 반 간접 조명효과를 주고 안방의 깊은 내부공간에는 봉창을 통해 허용된 희미한 간접조명이 휴식과 취침에 적당한 정도로 조절됩니다.
우리 민족처럼 양달과 응달을 따지고 간접조명과 반음영 공간을 만들만큼, 즉 볕과 빛에 대해 건축에서 민감하게 대응한 족속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21세기에 와서 보면 가장 지혜롭게 에너지를 배려하는 지혜였던것이죠.
처마 밑 공간은 다목적으로 쓰이는데, 호롱불을 걸기도 하고 곶감과 무청시래기를 널어 말리기도 합니다.
여기에 제비들이 집을 짓고 절반은 한 식구처럼 살아가는 자연이죠.
우리의 한옥은 자연과 떼어 놓고 설명이 불가 합니다.
거기에 과학과 상식이 접목이 됩니다.
현대건축의 틀을 잡고 그 기준을 만든 르꼬르뷔지에는 1914년에 발표한 Domino system으로 건축 5원칙을 정립하여 500년만에 서양건축의 근간인 벽을 쌓아 집을 지었던 건축을 송두리째 바꿔 놓으며 어마어마한 개혁을 환호 했었습니다.
벽 대신에 네 개의 기둥만으로 집이 세워졌기 때문에 벽이 자유로워졌다는 것.
막은 벽을 필요한 만큼 뚫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확 트인 도미노시스템을 보자 먼저 터놓고 필요한 곳을 막아 쓰는 일이 얼마나 쉬운가에 환호했었습니다.
바로 이 엄청난 혁신이 우리의 한옥에서는 몇 천년을 이어져온 기본적인 상식과 과학이 이라는...
「지붕」이라는 말은 「집」에서 나왔습니다.
「지붕」은 「집+웅」혹은 「집+웋」이라는 것인데, 웅이나 웋은 의미없는 접미사(接尾辭)이므로 우리말에서 집은 지붕인것이죠.
맞배지붕은 맞배집이고 팔작집은 팔작지붕의 집이 됩니다.
지붕만 있으면 그게 집이라는것입니다.
햇볕을 가리고 비를 피하는 지붕을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집을 지으려면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지붕을 얹는 것으로 우선 성립하였습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버팀목으로 네 개의 기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한국건축의 기본형인것이죠.
(혹시 하나의 기둥이나, 두개로도 설 수 있다는 기술적 토론을 원하신다면 그건 다음 기회로 넘기겠다. 지금 이 글은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상식과 가장 기본적인 과학을 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둥 네 개로 만들어진 공간은 3000년을 전해 내려온 기본형이었습니다
하나의 기본형이 한 칸 집을 이루고 두 개가 두 칸 집을 이루고 세 개가 세 칸 집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반복되어 99칸까지 조립되는 것입니다.
길이에 따라 필요에 따라 「ㄱ 」자, 「 ㄴ」자, 「ㄷ 」자,「 ㅁ」자, 「ㄹ 」자로 꺾일 수도 있고.
거기에는 형태 또는 형태를 만드는 조형, 그리고 그 조형을 행하는 조형적 태도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공간, 빈공간이 있을 뿐인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채워 넣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내부공간이 아니고 무한한 자연공간의 일부로서 구획된 한 부분이 내외를 관통하며 존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