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생태와 비보裨補의 과학
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고 비워두는 것은 오래된 과학의 경험이 축적된 지혜의 소산입니다.
마당은 고추를 말리고 타작을 하고 새끼를 꼬는 등 다목적의 작업공간으로 쓰일 뿐 아니라 평상에 앉아 저녁을 먹거나 어린이들은 식후 그대로 누워 별을 헤다가 잠이 들기도 하지만 관혼상제에는 잔치마당으로도 쓰이므로 잔디도 심지 않고 잡풀은 뽑아주고 매일 비를 들어 쓸어줍니다.
그 빈 마당은 최대한의 햇볕을 받고 반사하여 집안을 밝혀주고 장마철에 비가 내리면 잠시 비가 그칠 때마다 빈 마당은 습기를 빨리 증발시켜 집안을 건조하게 유지합니다.
한여름 햇볕에 달궈진 앞마당은 온도가 올라가고 대나무, 감나무 등이 심어진 뒤뜰은 그늘져 온도의 차이를 크게 만들게 됩니다.
뒷산과 연결된 뒤뜰의 찬 공기는 앞마당의 더워진 공기로 인해 공기의 흐름을 만들고 여기에 앞마당과 뒤뜰의 고저차이가 흐름을 쉽게 하고 대청과 안방의 뒤뜰에 면한 작은 창은 그 흐름의 속도를 높여주게 되는것이죠.
여기에 탁월한 과학적 지혜가 있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바람에 대나무 이파리의 설렁이는 소리가 전해지는 낭만이 보태어집니다.
건축예술의 경지를 뛰어넘으나, 그 모든 지혜와 예술보다도 더 뛰어난 점은 공간을 비워둔다는 차원 높은 철학인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지혜들은 자연의 섭리를 깊이 성찰하고, 이해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데서 옵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억지로 만들지 않습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더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간단한 원리들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늘의 힘을 빌리는 것이죠.
자연은 우리 곁에 너무도 크게 존재하고 있어서 거기에 조금만 기대어도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고 그것을 조금만 거슬려도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것입니다.
그 생명의 기가 살아 흐르는 그것, 생생지리를 아는 것이 한옥의 지혜일것입니다.
동양 건축은 그 건축자체 하나로 존재하지 않고 주변과 함께 존재합니다.
풍수
건축의 배치와 설계는 그 圍繞위요공간(어떤 지역이나 현상으로 둘러싸인 공간)주변의 공간구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재보존법에서 도심의 섬을 만드는 현실의 문제점이죠.
여기까지는 흔히들 말하는 동양건축 중에도 극동지방의 색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한옥은 아주 중요한 요소를 가미하게 됩니다.
이로서 한옥이 한옥인 이유가 완성됩니다.
우리 풍수사상에서 가장 독특한 생각인 裨補비보의 철학.
사람의 팔자가 노력에 따라 고쳐질 수 있듯 땅이 가진 팔자도 고쳐질 수 있다고 믿는것이 비보라는 개념이죠.
풍수는 명당을 찾는 안목이지만 세상엔 완벽한 명당은 없습니다.
어떤 땅이 명당이 못될 때, 그것이 조금 덜 미치면 조금만 보완하고, 크게 못 미치면 많이 보완하여 좋은 지형으로 만든다는 것이 비보의 사상인것입니다.
산림경제...
무릇 주택에서 왼쪽에 개울과 오른쪽에 긴 길과 집 앞에 연못과 집 뒤에 언덕이 있는 것이 가장 좋고 여의치 못할 때는 동쪽에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남쪽에 매화나무와 대추나무를, 서쪽에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를, 북쪽에 살구나무와 벗나무를 심으면,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대신할 수 있다.
집 서쪽 언덕에 대나무 숲이 푸르면 재물이 불어난다.
문 앞에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고 당 앞에 석류나무가 있으면 길하다.
집 마당 가운데 나무를 심으면 한 달에 천금의 재물이 흩어진다. 집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를 한곤(閑困)이라고 하는데 마당 가운데 나무를 오래 심어놓으면 재앙이 생긴다."진미공(陳眉公)은 이렇게 말하였다.
- 산림경제, 복거(卜居)편
한옥 사는 부부의 이혼율은 콘크리트 아파트에 사는 부부의 이혼율의 반의 반도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철골구조의 폐쇄적인 사무공간에서 더구나 금연공간에서 스트레스 받던 남편이 다시 콘크리트 구조의 폐쇄적인 아파트로 퇴근하니 만날 부부쌈 안하면 오히려 이상한것이.
일본의 한 학자의 보고서에 의하면 목조주택에 살면 수명이 10년 길어진다는 믿을만한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화재가 걱정일까요?
오랜 기우에 불과합니다.
흡수율 17%의 소나무는 1,000도의 불과 만나도 3.6cm만 타고 더 이상 안탑니다.
이를테면 구조상 필요두께가 20cm면 양쪽으로 3.6cm씩 27.2cm의 소나무를 구조재로 사용하면 말 그대로 방화구조가 되는것이죠.
별빛 쏟아지는 달빛 쏟아지는 한옥.
자기가 나고 자라던 한옥에서 꿈을 키우던 자녀들이 손자 손녀를 안고 다시 한옥으로 돌아와 추억의 삼겹살을 흙냄새 풀풀 나는 안마당에서 같이 구워 먹는...
100년이 수명인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닌 1000년조차 우습게 보는 자연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