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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23.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I 경상 병암정

열셋. 물맛 좋은 예천 01 병암정

예천이라는 이름은 정유재란 때 울산의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이 고을을 지나던 명나라 장수 양호가 예천읍 노상리의 주천이란 샘의 물 을 마셔 보고 감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맛이 달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게

우리 중국의 예천(醴泉 단술 처럼 맛이 좋은 샘)에 못지않구나.  


고려시대 때 흔 씨의 집성촌.

고려 제 29대 충목왕 등극.

충목왕의 이름은 흔.

왕의 이름은 백성이 사용할 수 없는 법이라 난리가 났다.

성을 바꾸게 된다.

엄마는 안동 권씨가 된다.

예천 권씨의 5대손 권선의 아들 오행, 오기, 오복, 오윤, 오상 5명 전원 과거급제하여 五福門 오복문에 등극.


*五福오복; 수壽,부富,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장수하는 것,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도덕 지키기를 좋아하는 것,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    


1498년 무오사화.

연산군은 이제 32살의 예천 권 씨 영수 셋째 아들 권오복 사형을 시킨다.  

나머지 가족은 전부 살아남기 위해 본관을 안동으로 바꾸게 된다.

그래서 현재 안동 권씨는 70만 명.

예천 권 씨는 달랑 5천명.


예천을 대표할 정자.

병풍처럼 펼쳐진 암반위에 정자 하나 짓고 안빈낙도.

현판을 걸었다.

병암정屛巖亭.

소실되고. 


1843년 김해출신으로 명성황후의 천거로

1888년 파주목 사로 정계 진출하고 기술자인 중인의 벼락출세로 당연히 고종의 오른팔이 된 덕수궁 리모델링 수석 건축가인 경상북도 관찰사 이유인이 병암을 찾았다.  

1898년 법무대신으로 중인이 법무부장관에 오른다.

1895년 을미사변발생하여 명성황 후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되니 일본을 질타하다가 유배 길에 오르고,

1900년 경북관찰사로 재기해서 고종황제 모시려고 금당실에 99칸 대궐 건립한다.

1905년 부보상들로 조직된 공진회에 적극 가담 친일단체인 일진회가담하나 당연히 유배되는데 이미 선생은 64세.

세상이 싫어 병암정 터 사들이고 옥소정 건립한후 거대한 암반위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며 매일 고종황제를 향해 북향사배한다.

고종황제가 하야하셨다는 소식에  곡기를 끊었다.  

예천 권 씨 종친회 소집하여 다시 사들여 현판을 바꿔 달았다.

병암정.

권원하가 이유인의 대를 잇는다.

독립운동 자금 마련하다 가산 탕진하고 23살에 투옥되고 2년 후 출옥한 후에  병암정에서 아이들 가르친다. 39살에 역시 곡기를 끊는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2006년 KBS 황진이 제작팀이 병암정을 찾아서 1년 2개월 동안 하지원과 장근석은 대박.

그래서 병암정은 장안의 화제가 된다.

조선의 위대한 선비 이유인과 권원하 선생이 머물던 곳

1970년 예천군의 인구는 14만 명, 지금은 달랑 5만.  

예천권씨 초간종택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草澗 權文海 초간 권문해(1534∼1591) .


권문해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1598년 건립한 종택이다.

권오상 형제는 무오사화 때 사형당한다.

동쪽으로 뒷산이 반달모양으로 싸안고 좌측으로 白馬山백마산이 청룡을 이루고, 우측으로는 娥眉山아미산이 백호를 이루어 풍수지리상 명당자리.

별당 뒤 야산 밑 書庫서고에는 초간 권문해 선생이 저술한 大東韻部群玉대동운부군옥의 版木판목 677매와 14대 째 전해지고 있는 옥피리, 資治通鑑 綱目 자치통감강목 全帙전질 120권이 보존되어 있다.

중요민속자료 201호.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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