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문화, 찿아야 할 예
아래로 부터 예절을 바래야할까, 위에서 시작해야 할까...
길거리에서 안면부지의 남사이에 실갱이가 벌어지면
겉모습에서 보여지는 나이가 어려 보이면 말부터 자르고 시작한다.
그리고는 너 몇살이야로 이어간다.
대체 나이는 왜 묻는것이며 반말은 또 왜 하는가.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많다는걸 알면 바로 말을 낮추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처음사이에 통성명을 하고 나면 내가 형(언니,삼촌...)뻘되니까 말놔도 되지라는 표현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 했을것이다.
언제 부턴가 자신보다 어린 나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하대하 는것에 익숙해 왔다.
權威主義 권위주의.
과연 우리의 선조들은 요즘 유행인 갑질의 기본인 하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을까.
아니라면 언제부터 시작된 쓰레기 문화인가.
이 또한 답이 일제시대로 바로 이어진다.
전쟁의 소용돌이는 그칠 시대가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전쟁과 자연 재해로 피폐해진 땅에 성숙되지못한 민심을 잡는데는 강력한 覇道 패도가 답이었다.
자연히 覇者 패자에의해 통치되는 覇道 패도가 자리잡았다.
다시말하자면 관념이 사물을 넘지 못하는 수준에서는 사물선상의 강력한 통치 기술이 필요한거고 그 중 대화법이란 하대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식민지의 통치 상황에서는 압제를 위해 하대가 자연스러웠다.
해방후 권위주의가 필요했던 건국에서 군부시절 동안 하대는 더욱 뿌리 깊게 내려 않았다.
우리나라는 후배한테 반말 안 쓰는 예의를 지켜왔다.
선후배 사이에 禮待예대 하는거다.
禮待예대
退溪퇴계와 高峯고봉
조선 후기 유학계의 두 거목의 시대를 뛰어넘는 우정에서 그 기본을 찿는다.
한국 지성사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뛰어난 학문 논쟁 중 하나였던 일.
둘의 나이차를 보면 언뜻 우정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만났을 때의 신분을 생각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기이하기까지 하다.
한사람 58세의 퇴계는 오늘날 국립대 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
다른 한사람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상경한 32세의 젊은 ‘고시생’
13년간 두 학자는 애정과 존경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때로는 신랄한 비판이,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있었다.
퇴계선생은 26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 벌이면서도 하대라는 형식을 찿아 볼 수 없다.
우리는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쟤…’ 하면 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
下待하대는 버려야 할 일본 사람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