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LXIV 宗敎 종교 religion 02

성스러움의 종교 기독교 1/3 예수 그리고 신앙

by Architect Y
예수의 삶

신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는 30세에 세례요한으로 세례를 받고 40일동안 금식을 하면서 사탄의 시험을 이긴 뒤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선교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 뒤 3년동안 설교와 이적을 행한다.

그의 설교에는 이사야와 여호수아 같이 사회정의와 영적성장을 부르짖었던 당대 최고의 유대인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 설교자는 신이 인류 역사에 개입하며, 그 과정에서 유대인이 부름을 받았고 역사의 정점에서 바로 자신을 통해 이 땅에 새로운 유대왕국이 건설될것이라 예언했다.

그는 신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 상당히 견해가 달랐다.

그가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보통사람들보다 죄인들을 더 많이 염려하며,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아버지 였다.

그 설교자는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여자를 구하고, 병든자를 낫게 하고, 사기꾼들, 심지어 유대인이 가장 협오했고, 로마제국을 위해 일하던 가혹한 세리들도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대했다.

그는 신은 절대종교의 형식이나, 유대인의 엄격한 의식을 반기지 않으며,오직 인간의 선한 마음, 비참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사랑에 감동을 받으시는 분이라 외쳤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자든, 여자든, 권세가 높은 사람이든 소외받는 사람이든 신은 언제나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하시며,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마음으로 신의 뜻을 이해하고 따름으로써 그 큰 은총에 보답 할 수 있다고 했다

메시지가 유대의 전통적인 예언에서 완전히 벗어난것은 아니었지만, 예수의 활동에 위협을 느낀 기득권층, Sadducees사두개파와 율법학자 그룹 Pharisees바리새파는 그를 로마 정부에 넘겨 십자가형을 받게 하고 죽음을 맞이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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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졌지만, 설교자들의 가족과 야곱이 이끄는 추종자들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설교자의 비전은 너무나 거대한것이기에 그가 없는 이 세상을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설교자가 정말 죽은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보낸 가장 위대한 마지막 구원자이며, 앞선 예언들을 모드 실현한 선택받은 유일한 Messiah 메시아라고 주장했다.

죽은 후 사흘만에 부활하는 기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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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관련된 기록은 제자들이 남긴 4복음서 외에는 거의 없고 그 내용도 역사적 기록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믿음의 기록이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전 3년에 태어나 기원후 30년에 죽었다고 한다.

출신지가 갈릴리 호수에서 멀지 않는 나사렛이기때문에 흔히 나사렛 예수로도 불린다.

출생은 정상적 남녀 교합이 아닌 성령으로의 잉태다

대략 예수 사후 40년인 기원후 70년 전후에 나온 최초의 복음서 「(the Gospel of) Mark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만 나오지 동정녀설은 없다.

그러나 그 뒤로 대략 10~20년 뒤에나온 「(the Gospel of) Matthew 마태복음」, 「(the Gospel according to) St. Luke 누가복음」에서는 탄생설화가 더욱 신비화되어 동정녀 잉태설에 천사의 계시와 동방박사 참배설이 등장한다.

오늘난 교회의 성탄절 행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설화를 뒤섞은것이다.

크리스마스 자체가 4세기에 기독교가 공인 받는 과정에서 로마 태양신의 날짜에 맞추게 된것이다.

위의 세 복음서보다 조금 더 뒤에 나오고 이들과는 성격이 약간 다른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요한복음」에 이르러서는 Logos로고스론이 등장한다.

이 로고스론은 4세기 중엽 Athanasius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성부,성자,성신 Theoria trinitatis 삼위일체설로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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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카톨릭과 개신교 포함)에서 가장 중요시하는것이 역시 부활의 기적인데, 이 또한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세 여인이 예수의 무덤으로 갔다가 무덤 막는 돌이 옮겨져 있고 무덤 앞의 흰옷입은 청년으로 부터 부활소식을 접하고 도망치는것으로 끝난다.

일부 사본에는 이것으로 끝을 맺고 후부분은 후대 가필이라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중에 나온 복음서에는 부활 후 여러 제자들을 만나고, 심지어 수백의 군중 앞에 나타났다고 기록한다.

「요한복음」에는 의심하는 도마에게 옆구리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확인시킴으로 시각적 환각이 아닌 실제임을 강조한다.

재미 있는것은 복음서 중 가장 마지막에 나온 「요한복음」의 양이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적 사유에 바탕을 둔 초월적 성스러움이 지배적이었던 근대 이전의 기독교 인들은 신성모독으로 단죄되어 화형장에서 사라질것을 두려워 하여 함부로 이의를 제기 할 수 도 없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합리적 사유를 바탕으로 복음서를 새롭게 연구하는 풍토가 조성되면서 그의 기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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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Hermann Samuel Reimarus 헤르만 라이마루스와 19세기 David Friedrich Strauss 다비드 슈트라우스는 복음서의 기록들은 제자들이 예수의 실제 모습을 기록한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그들의 관념을 기록한것이라 주장하였다.

그 뒤 예수의 삶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고 실존성조차 부정하는 극단적 학설도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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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John Dominic Crossan 존 도미닉 크로산이라는 학자의 「James D.G. Dunn: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sant 역사적 예수」는 고고학적 고증을 통해 예수를 지중해의 농부출신으로 민중과 함께 호흡했던 종교혁명가로 묘사하여 일반인들에게도 큰 반향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 주류 신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03년 James D.G. Dunn 제임스 던이 쓴 「Jesus Rememberd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은 예수 연구의 한계를 비평하면서 결국 예수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 밖에 없으며 그것이 비록 제자들의 기억에 따른것이지만 신앙인들에게 가장 의미있는것은 역시 기억된 예수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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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르침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다.

기독교를 세계의 종교로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부분이 사랑이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싦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조차 용서하고 사랑한 아가페사랑.

사랑에 대한 강조는 기독교의 얼굴이다.

이에대한 반론의 여지는 없지만 문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것이다.

실천으로 행한 첫번째가 하나님나라가 임하였으니 회개하라는 부분이다.

다양한 비유와 표현방식으로 가르치지만, 대부분이 비유이기에 후대 다양한 해석과 논란을 낳았다.

근대 이전의 하나님 나라는 초월적 세계를 가르치는것이 당연하였지만, 근대 이후에 합리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바로 지금 여기 마음속의 세계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마태복음」에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천국이 우리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고 시사하고 있음을 예로 들 수 있다.

정경으로 인정 받지는 못하지만 1947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외경 「도마복음」에서 이러한 설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 전체의 맥락으로는 종말론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人子인자 Son of Man는 인간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종말론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6세기에 쓰여졌다고 알려진 묵시문학의 원조인 「다니엘서」에서 가장먼저 등장한다.

복음서와 「요한계시록」도 기원전 2,3세기부터 시작된 묵시록적 종말론의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하는 종말론과 부활론,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유대교 본래는 개념 자체가 없다.

초기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sheol 陰府음부는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그리스신화의 Hades하데스나 우리의 저승과 같은 개념으로 모든 망자가 가는 곳이다.

그들은 사후세계보다는 현실세계를 중시했으며 개념도 민족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 수호신에 가까웠다.

구약시대의 종말론과 부활론,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Zoroastrianism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이다.

기원전 6세기 바벨론 유수시기 유대인을 해방하고 성전건축을 가능케한 인물은 페르시아의 키루스کوروش بزرگ (고레스)왕이고 당시 페르시아의 국교는 조로아스터교 였다.

유대교에 스며든 Zoroastrianism 조로아스터교의 사후세계관과 종말론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Zoroastrianism
12 Torah.jpg Torah

정작 유대인들은 Torah토라(모세오경;창세,출애굽,레위,민수,신명기)에는 종말론과 부활론,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없었으므로 이에 대한 신앙도 확정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 활동 당시 대제사장 그룹이고 가장 보수적인 Sadducee사두개인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토라외에 예언의 전통도 인정하는 Pharisee바리새인은 사후세계에 대한 신앙이 있었고, 비밀결사에 가까운 Essenes에세네파는 종말론 신앙이 있었다.

12세기 전후에는 윤회사상이 유행했고 16세기 유대신비주의자 Isaac Luria 이삭 루리아의 영향으로 윤회설이 널리 퍼질만큼 사후세계관은 자유롭다.

현재 기독교의 핵심교리의 하나인 원죄설(Peccatum personale)과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간다는 설은 예수의 가르침과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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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복음서외에 바울에의한 가르침이다.

이를 원죄설이라는 교리로 주장한 사람은 4~5세기 Aurelius Augustinus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신약성서의 최초의 문헌은 「데살로니가 전서」로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보다 20년 앞선 기원후 50년대에 나온것이고 결정판인 「로마서」또한 기원후 50년말에 나온것으로 바울은 복음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바울은 종말론과 구원론에 대한 신앙이 확실했다.

예수의 가르침은 본래 예수의 육성인지, 제자들의 기억의 변형인지, 초대교회가 만들어낸 신화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아래 그러한 제자와 교회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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