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 風餐露宿풍찬노숙, 김삿갓(김병연)
; 바람에 불리면서 먹고, 이슬을 맞으면서 잔다.
扁舟下南來 편주하남래
逸駕追鳴鵠 일가추명곡
遇勝即徜徉 우승즉상양
風餐兼露宿 풍찬겸노숙
- 蘇東坡소동파,
游山呈通判承議寫寄參寥師 유산정통판승의사기참요사 此詩為釋道潛作 차시위석도잠작
조각배를 타고 남으로 내려와
편안하게 수레를 타고 따오기 울음소리를 따르노라.
아름다운 곳을 만나면 곧바로 한가로이 거닐다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노라.
방랑시인 김삿갓의 본명은 炳淵병연.
호는 蘭皐난고(난의 언덕,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1807년 3월 13일 김안근과 함평이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살 전후에는 이미 사서삼경을 통달하는 수준이었다.
시 짓는 재주가 남달리 특출하고 역사에 각별한 흥미를 느껴오던 그는 고금의 시서와 사서를 닥치는 대로 섭렵해 왔기 때문에 모르는 글이 없을 정도였다.
향시에 나가 급제를 하였으나, 집도 처자도 버리고 방방곡곡을 떠돌며 해학과 풍자의 시를 읊은 그는 천형의 죄인 같은 시인이었다.
삿갓이라는 이름은 신분을 감추고 다닌 그가 金笠김립이라는 가명을 쓴 데서 비롯되었다.
그가 죽장에 삿갓 쓰고 미투리 신고 산수를 넘나들며 해학과 풍자로 한세상을 떠돌던 방랑 시인인 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뜬 구름 같고 바람 같았던 그의 삶의 궤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묘소가 발견된 것도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그 출중한 머리를 하고도 모든걸 버리고 風餐露宿 풍찬노숙하며 살아간 시간은 향시에 나가 장원을 한과거 시험이 조상을 욕하는 영원한 기념물이 되어 어이없이 천형의 죄인이 된것에서 기인한다.
김병연은 명문 안동 김씨의 일가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익순이 높은 벼슬을 지내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11년 11월, 김병연이 다섯 살 때 평안도 용강에서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
서북 사람들을 차별한 데 대한 반발로 일어난 이 난리는 백성의 호응을 얻어 단시일 내에 가산, 박천, 곽산, 정주를 휩쓸고 선천으로 육박했다.
가산 군수를 지낸 정시는 포로가 되어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으나,함흥 중군으로 있다가 3개월 전 전임해온 선천 防禦使방어사로 있던 김삿갓의 조부 金益淳김익순이었다.
술에 취해 자다가 별안간 들이닥친 홍경래 군에 붙들려 포로가 되었고, 순순히 항복하고 겨우 목숨을 구했다가 농민군이 관군에게 쫓길 때에는 농민군의 참모인 김창시의 목을 1,000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을 위장하였다.
홍경래의 난은 다음 해 2월, 평정되었고. 당연히 김익순의 책임 문제가 나와 참형을 당하였고, 비열한 인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역적에게 항복해서 협력했으니 죄는 당사자에게만 그칠 수 없고, 그의 일가는 조정으로부터 廢家폐가 처분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강원도 영월로 도피하여 숨어 살았다.
나이가 어린탓에 그 내력을 알지 못하고 자란 김삿갓은 과거(소과인 초시나 진사시로 추정)에 응시하여 장원의 기염을 토했다.
이때의 試題시제가
(홍경래의 난때 죽음으로써 저항한 가산군수 鄭蓍정시의 충절을 찬양하고 난적에 투항, 불충을 저지른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를 개탄하라)이었다.
시제의 주인공이 자신의 조부이며, 멸문의 화를 입고 어머니가 근근히 도망쳐 영월땅에 숨어산 내력을 까맣게 몰랐던 그는 서슴치 않고 김익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답글형식의 내용을 써 합격했던것이다.
曰爾世臣金益淳 왈이세신김익순
鄭公不過卿大夫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隴西落 장군도이롱서락
烈士功名圖末高 열사공명도말고
대대로 국은을 입어 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은 한갓 문인의 몸이지 않았느냐.
한나라의 이능은 농서에서 항복했으니 너와 같은 부류며
정공의 충성은 열사들의 초상에서 악비와 같이 드높도다.
詩人到此亦慷慨 시인도차역강개
撫劍悲歌秋水唆 무검비가추수사
宣川自古大將邑 선천자고대장읍
此諸嘉山先守義 차제가산선수의
이쯤 되면 시인도 강개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니
가을 물가에서 칼을 어루만지며 슬픈노래를 아니 부를 수 없도다.
선천은 자고로 대장이 지키는 고을이어서
가산에 비하면 먼저 지켰어야만 옳은 일이었도다.
淸朝共作一王臣 청조공작일왕신
死地寧爲二心子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승평일월세신미
風雨西關何變有 풍우서관하변유
청명한 조정의 한 임금의 신하된 몸으로
죽는 마당에 어찌 두 마음을 먹었단 말이냐.
태평세월 평탄하던 신미년에 이르러
돌연 풍우가 관서에서 일었으니 이 무슨 변고인가.
尊周孰非魯仲連 존주숙비노중련
輔漢人多諸葛亮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동조구신정충신
抵掌風塵立節士 저장풍진입절사
주나라를 받드는데 노중연 같은 충신을 들지 아니해도
한나라를 구할 시에 제갈량 같은 인제가 많았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정충신은 이름을 드높여
맨손바닥으로 적과 싸우다 절사하였도다.
嘉陵老吏揚名旌 가릉노리양명정
生色秋天白日下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혼귀남무반악비
骨埋西山傍伯夷 골매서산방백이
가산에서 쓰러진 이 늙은 충신은 이름을 드높여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 아래서 길이 빛나리로다.
그의 혼은 남묘에 돌아가도 약비와 짝을 할 것이며
뼈는 서산에 묻혀도 백이와 자리를 같이 하리라.
西來消息慨然多 서래소식개연다
問是誰家食祿臣 문시수가식녹신
家聲壯洞甲族金 가성장동갑족김
名字長安行列淳 명자장안항열순
서쪽에서 슬픈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니
네가 바로 국록을 도식한 불충한 신하가 아니었더냐.
가문은 장동 김씨 명문거족이었고
이름은 장안에서 세도 있는 순자 항렬이로다.
家門如許聖恩重 가문여허성은중
百萬兵前義不下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청천강수세병파
鐵甕山樹掛弓枝 철옹산수괘궁지
가문은 이처럼 이름높아 성은이 두터울진데
백만의 적 앞에서도 의를 굽히지 말지어다.
청천강 푸른 물이 고이 씻은 병마와
철옹산 푸른 나무에 걸었던 활이 있잖느냐.
吾王庭下進退膝 오왕정하진퇴슬
背向西城凶賊脆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혼비막향구천거
地下猶存先大王 지하유존선대왕
임금 앞에서는 진퇴를 삼가던 무릎으로
서쪽의 흉적에게 머리를 돌리고 무릎 꿇고 말았으니
죽은 네 혼은 황천에도 가지 못할 것이며
저승에도 선대왕의 영혼은 계실 것이니라.
忘君是日又忘親 망군시일우망친
一死猶輕萬死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춘추필법이지부
此事流傳東國史 차사유전동국사
임금을 져버린 동시에 조상을 잃어버린 너는
한번은 고사하고 만번은 죽어야 마땅하다
도대체 역사의 준엄한 기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치욕적인 이일은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김익순의 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급제는 무효가 되었다.
김병연은 어머니께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었고 그는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조상을 세상에 욕보였고, 조롱하였으니 그 죄를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것이다.
스스로 자책과 폐족의 멸시를 피해 그는 처자식을 뒤로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여겨, 삿갓에 죽장을 들었고,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베게 삼아 무일푼의 슬픈 방랑의 여정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김병연은 방랑생활 중 양반들을 갖가지 주제로 개탄하고 조소하는 諷刺詩풍자시를 많이 써, 초지일관 선비의 志槪지개를 잊지 않았다.
그 재주로 술 석잔 얻어먹고 무식한 양반들에게 질시와 멸시를 아끼지 않았고, 잘못된 제도와 부패한 관료주의자들을 향해 거침없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1841년 광주에서 무등산 장불재를 넘어 적벽을 찾은 김삿갓
적벽에 반한 그는 방랑벽을 잠재우고 무려 13년을 머물며 수많은 시를 남겼고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에서 생을 마쳤다.
57년의 난고(본인)의 생을 시로 남기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 했고 아들 익균이 訃告부고를 듣고 화순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시신을 강원도 영월로 운구했다.
蘭皐平生 난고평생
鳥巢獸穴皆有居 조소수혈개유거 顧我平生獨自傷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망혜죽장로천리 水性雲心家四方 수성운심가사방
날짐승도 길짐승도 모두 제 집이 있건만돌아보니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다
짚신 신고 지팡이 끌고 천릿길을 떠돌며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尤人不可怨天難 우인불가원천난 歲暮悲懷餘寸腸 세모비회여촌장
初年自謂得樂地 초년자위득락지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해마다 세모에 혼자 가슴아파 하였다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니
어려서는 이 몸도 넉넉한 집에 태어나강남의 떵떵거리는 곳에서 자랐고
簪纓先世富貴人 잠영선세부귀인 花柳長安名勝庄 화류장안명승장
隣人也賀弄璋慶 인인야하농장경 早晩前期冠蓋場 조만전기관개장
조상들도 부귀영화를 누려왔고 장안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다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다고 축하해주고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마저 컸었건만
髮毛稍長命漸奇 발모초장명점기 灰劫殘門飜海桑 회겁잔문번해상
依無親戚世情薄 의무친척세정박哭盡爺孃家事荒 곡진야양가사황
세월이 흐르면서 운명은 자꾸 기구해지고마침내 상전이 벽해처럼 변하였다
세상에 의지할 친척없고 인심마저 각박한데부모마저 세상을 떠 집안이 망하였다
終南曉鍾一納履 종남효종일납리 風土東邦心細量 풍토동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狐 심유이역수구호 勢亦窮途觸藩羊 세역궁도촉번양
새벽에 남산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생소한 객지라서 마음마저 애달프다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와 같고 신세마저 궁지에 몰린 양과 같구다
南州從古過客多 남주종고과객다 轉蓬浮萍經幾霜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요두행세기본습 闋口圖生惟所長 결구도생유소장
남쪽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다 하지만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기 몇 해였던가
머리굽혀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일까마는 목구멍에 풀칠하자니 어쩔 수가 없구다
光陰漸向此中失 광음점향차중실 三角靑山何渺茫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강산걸호관천문 風月行裝空一囊 풍월행장공일낭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흘러삼각산 푸른 모습 어찌 그리 아득할까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지만풍월을 읊는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
千金之子萬石君 천금지자만석군 厚薄家風均試嘗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신궁매우속안백 歲去偏傷鬢髮蒼 세거편상빈발창
큰 부자 작은 부자 두루 찾아다니며후하고 박한 집 모두 거쳐보았지만
팔자가 기구하여 남의 눈총만 받다보니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佇亦難 귀혜역난저역난 幾日彷徨中路傍 기일방황중로방
돌아가기는커녕 머물기마저 어려워 길바닥에 헤매는 것이 몇 날 몇 해이던가
김삿갓 종명지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