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타보며...
언재 그랬냐는듯 일주일도 채지나지 않은 폭염의 기억을 뒤로하고 가을로 버짝 다가왔다.
새벽부터 내리는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에 넋을 잃었다.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워하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퍼한다는 말이 있다.
士悲秋 사비추(선비는 가을을 슬퍼한다는)
悲秋비추는 시인묵객들의 단골 詩題시제가 되어 왔다.
조선 후기의 문인 李 鈺이 옥은 士悲秋解사비추해 글에서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는 가을을 슬퍼하니, 서리 내리는 것을 슬퍼함인가? 초목이 아닌 것이다.
장차 추워지는 것을 슬퍼함인가? 큰기러기와 겨울잠 자는 벌레가 아닌 것이다.
만약 때를 만나지 못해 멋대로 행동하여 찬찬하지 못함에 이른 고향과 나라를 떠나는 나그네라면, 또한 어찌 가을만을 기다려 슬퍼하겠는가? 이상하기도 하다!
바람을 마주하여 흑흑 느끼어 울며 스스로 즐기지 못하고, 달을 보면 비통하여 거의 눈물을 흘리는 것에 이른다. 저들의 그 슬픔은 무슨 까닭에 의해서인가?
슬퍼하는 자에게 물어보니, 슬퍼하는 자 또한 단지 슬퍼할 줄만 알지, 그 슬퍼지는 것에 의한 바는 알지 못한다.
아, 나는 알겠다!
하늘은 남자라 하고, 땅은 여자라 하는데, 여자는 음의 기운이요, 남자는 양의 기운이다. 양기는 자월(음력 11월)에 생겨나 진사(음력 3ㆍ4월)에서 왕성한 까닭에 사월(음력 4월)은 순수한 양의 기운이 된다. 그러나 하늘의 도리는 성하면 곧 쇠하니, 사월 이후부터는 음이 생겨나고 양은 점점 쇠한다.
쇠하면서 무릇 서너 달이 지나면 양의 기운이 없어져 다하는데, 옛사람이 그때를 지칭하여 ‘가을’이라고 했다. 그런즉 가을이라는 것은 음이 성하고 양은 없는 때이다.
동산이 무너지매 낙수의 종이 울고, 자석이 가리키는바 쇠바늘이 달려오니, 물(物)이 또한 그러하다.
오직 사람으로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그 가을을 슬퍼하지 않음과 같겠는가?
風急天高猿嘯哀 풍급천고원소애
渚淸沙白鳥飛廻 저청사백조비회
無邊落木蕭蕭下 무변락목소소하
盡長江滾滾來 부진장강곤곤래
萬里悲秋常作客 만리비추상작객
百年多病獨登臺 백년다병독등대
艱難苦恨繁霜鬢 간난고한번상빈
潦倒新停濁酒杯 요도신정탁주배
- 登高 杜甫 등고 두보
세찬 바람, 높은 하늘, 슬피 우는 원숭이,
말간 물가, 하얀 모래, 빙그르르 나는 새.
가없는 수풀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끝없는 장강엔 강물이 넘실넘실 흐른다.
만 리 에 슬픈 가을, 항상 나그네 몸이요,
백년에 많은 질병, 혼자 오르는 산이로다.
가난한 삶이라, 흰 살쩍이 몹시 한스럽고,
노쇠한 몸이라, 탁주잔을 새로 멈춘다.
지루했던 여름을 잊고 잠시 悲秋비추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