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뉘우칠줄 알아야...
교회 사무실에서 이틀전 실린 기사생각에 잠시 쉬어간다.
몇년전 세월호참사때 우측으로 편향된 목소리로 정부에 힘을 실어주던 대형교회 목사들에 관한 글을 올린 일이 있었다.
교회, 정확히 하자면 Christian이 해야 하는 책임이자 의무인 悔改회개(repentance), 혹은 참회懺悔를 무시한 신앙은 종교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시말하자면 그건 믿음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과 행동이 다른 가톨릭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위선적인 신자보다는 무신론자가 낫다
교황은 23일 바티칸 교황 처소인 Santa Marta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집전한 아침 미사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일부 가톨릭 신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2013년 즉위 당시도 기독교도들은 무신론자가 선을 행할 경우 그들을 선한 사람들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고 아동 성추행을 저지른 성직자들을 '악마의 무리'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는 한편 '교회의 왕자'로 불리는 가톨릭 교단의 최고 직위인 추기경들에게 진짜 왕자처럼 행동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교황은 그동안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성경의 가르침을 실제로 행할 것을 일관되게 촉구해왔다.
이날 설교 중 즉흥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추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추문이란 하나를 말한 뒤 이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중적 삶을 사는 것이다.
스스로 독실한 크리스쳔이라고 주장하면서 항상 성당에 가고, 이런 저런 (교회)단체에 소속돼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내 삶은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고백해야 한다
이 사람들은 직원들에게 제대로 월급을 주지 않고, 사람들을 착취하며, 더러운 사업을 하고, 돈 세탁을 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중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런 크리스쳔들이 많이 존재하고, 그들이 추문을 일으킨다
우리는 크리스쳔이 무신론자보다 더 훌륭할 것이라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듣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반성과 성찰이라는 것은 비단, Christian에 국한된것은 아니다.
이것을 하지 않는 다면 결국 사회는 표현조차 하기 싫은 구렁텅이로 歸結귀결되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形氣형기(겉으로 보이는 형상과 기운)를 지녀 아무리 천재라도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기 때문에
성인이냐 狂人광인이냐는 오직 뉘우칠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판가름이다
人有是形氣 雖上智不能無過 인유시형기 수상지부능무과
其聖其狂 唯悔吝是爭 기성기광 유회인시쟁
- 每心齋記 매심재기
뉘우침에도 방법이 있다.
만약 밥 한 끼 먹을 사이에 불끈 성을 냈다가
어느새 뜬 구름이 허공을 지나가는 것처럼 한다면 어찌 뉘우치는 방법이겠는가?
작은 허물은 고치고 나서 잊어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큰 허물은 고친 뒤에 하루도 뉘우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뉘우침이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 똥이 싹을 북돋우는 것과 같다.
똥은 썩고 더러운 것인데 싹을 북돋아 좋은 곡식으로 만든다.
뉘우침은 허물에서 나왔지만 이를 길러 덕성으로 삼는다.
그 이치가 다를 게 없다.
顧悔之亦有道 고회지역유도
若勃然憤悱於一飯之頃 약발연분비어일반지경
旣而若浮雲之過空者 豈悔之道哉 기이약부운지과공자 기회지도재
有小過焉 苟改之 雖忘之可也 유소과언 구개지 난망지가야
有大過焉 雖改之 不可一日而忘其悔也 유대과언 수개지 불가일일이망기회야
悔之養心 如糞之壅苗 회지양심 여분지옹묘
糞以腐穢 而壅之爲嘉穀 분이부예 이옹지위가곡
悔由罪過 而養之爲德性 회유죄과 이양지위덕성
其理一也 기리일야
2000년에 열린 사순절 예배 때 지난 2,000년 동안 가톨릭 교회가 기독교인들의 무자비한 수단과 행동으로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미사를 집전했던 2005년에 선종한 교황 Pope John Paul II 요한 바오로 2세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