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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n 08.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III 경상 불국사

스물여섯. 경주 이야기 08. 천년왕국 신라에서 조선까지, 불국사

불국사는 훌륭한 건축물이지만, 사람들은 석굴암에서와 같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데 그만한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국사에 가면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본 다음 법당 몇 개를 휙 돌아보고 그냥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불국사가 원래대로 복원되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아름다운 사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BC 57년 서라벌이 개국한다.

동이 터서 태양이 제일 먼저 비추는 성스러운 땅.

제1대 왕은 박혁거세.

서라벌 제4대 왕 탈해왕이 새로운 서라벌이라는 뜻의 신라로 개명하고 이후 신라는 992년 동안 지속된다.

마지막 왕은 신라 제 56대 왕 경순왕.


417년 아도 화상(덕이 높은 스님)이 신라에 불교 전파한다.

왕이 둘일 수 없다고 귀족들의 반대가 극심하다.

그래 최초의 불교 순교자 이차돈은 이제 전설이 되고 신라의 제23대 왕인 법흥왕은 527년 처음으로 불교 공인한다.


528년 불국(부처 나라)사 창건하고 751년 김대성이 중창, 774년 불국사 완공


공사기간은 24년.

경덕왕 때였다. 대상 대성이 天寶천보 10년 신묘년(751)에 비로소 불국사를 지었다.

혜공왕 때를 거쳐 大歷대력 9년 갑인년(774) 12월 2일에 대성이 죽자, 나라와 집안에서 일을 마쳤다

-삼국유사


수십 칸에 불과했던 불국사는 이제 2천 칸의 대규모 절로 다시 태어난난다.

(*칸은 기둥 4개로 이루어진 공간.)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삼국시대 이래 평지에 세워진 기존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달리 경사진 지형에 인공으로 축대를 쌓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가람배치를 계승함과 동시에 아래쪽에 아마타불을 모신 극락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등 후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전 중심의 가람배치도 함께 공존하는 독창적인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데 이런 형태의 가람배치는 후대에 세워진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불국사만의 특징이다.

1593년 임진왜란 때 소실.

1604년부터 1805년 까지 2백여 년 간 중건, 일제강점기 때 쇠락.

1969년 불국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불국사를 중건을 명 하지만 당시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콘크리트로 복원하라고 하지만 김정기 한림대 교수등 문화재 관련 인사들은 단식투쟁에 들어가며 온몸으로 이를 제지한다.(당시 국민소득은 290달러)

1970년 부터 1973년 까지 중건한다.

당시 도편수는 이광규 선생.


불국사 일주문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70년대에 중건하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 매표소로 이용하는 출입문이다.

이어 바깥세상과 부처님의 세상을 구분해주는 개천이 흐르고, 돌다리를 건너서 사찰로 들어간다.

지금의 다리는 70년대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중건, 복원하면서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도 비슷한 규모의 다리를 세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다리 아래에는 토함산에서 흘러내린 개천이 모여 연못을 이루고 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을 지나게 되고 다시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 또 하나의 다리가 놓여 있다.

계속 가다보면 보이는 당간지주는 화려하고 섬세하지는 않으나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이어 石槽석조(사찰로 들어가기 전 몸과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를 갖는 곳으로 이슬람사원이나 카톨릭 성당입구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 보물1523호)는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직사각형의 모양이고 통일신라제작된것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공간 이 드디어 대웅전 공간이다.

지상에 세워진 부처님의 나라라는 불국사는 모두 4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그리고 법신불을 모신 세 영역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맨 뒤에 관음보살을 모신 영역, 이렇게 4부분이다.

* 대웅전은 석가모니불, 극락전엔 아미타불, 관음전엔 관음불, 비로전엔 비로자나불이 있다

불국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전각이다.

* 홀수는 태양의 수, 짝수는 땅의 수인지라 건물의 칸수가 홀수인것이다.

  불국사는 앉음새가 궁궐과 비슷한데 이는 신라는 ‘왕이 곧 부처’라는 통치력으로 나라를 다스렸기때문.

대웅전 뒤편 강당의 현판은 무설전. 말이 필요 없는 건물.

무설전 뒤로 관음전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가장 센 부처님인 아미타와 가장 센 보살인 관세음에게 나를 맡긴다.

부처는 이미 깨달은 사람, 보살은 아직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




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대부분의 평지사찰에서 보여주고 있는 중문, 탑, 금당(불전), 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불국사가 토함산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고 사찰을 조성했지만, 기존의 사찰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불국사에는 천왕문이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가람배치로 볼 때 자하문이 출입문 역할을 한다.

자하문은 2층 계단 다리인 청운교와 백운교를 건너서 오르게 되어 있으며, 다리 아래는 냇물이 흐르도록 설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국보 제23호.

청운교의 계단은 17개, 백운교의 계단은 16개. 계단은 총 33개.

불교에서 33은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회한의 숫자다.


백운교를 오르면 범영루라는 누각이다.

연지(연꽃이 떠 있는 연못)에 비춘 누각의 모습이 마치 그림자가 떠 있는 듯하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우측 돌아 들어가면 안마당에 들어서고 서측에 석가탑 동측에 다보탑.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 법화경은 칡넝쿨이 혼자서는 위로 올라가지 못하지만 곧은 나무에 의지하면 아주 높이 올라갈 수 있는것처럼 불안한 마음을 다스려 높은 경지에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문화재의 보험 가입 실태」에 따르면 국보ㆍ보물 제1~100호 가운데 보험에 가입된 문화재는 16건,보물은 10건.

숭례문이 9천 5백만원 받았다. 복원비는 200억.

불국사는 209억 보험.


불국사는 사적, 명승 제1호. 199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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