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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y 24.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III 경상 용산서원

스물다섯. 경주 이야기 07. 천년왕국 신라에서 조선까지, 용산서원

경주는 최부자집을 빼놓을 수 없다.

경주향교에 이어...

지난 경주 이야기 06에선 경주최씨의 六訓육훈을 이야기 했다.


이번엔 최부잣집에 대대로 내려온 가훈, 六然육연이다.


自處超然 자처초연(스스로 초연하게 지낸다),

對人靄然 대인애연(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한다),

無事澄然 무사징연(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낸다),

有事敢然 유사감연(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한다),

得意淡然 득의담연(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한다),

失意泰然 실의태연(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최진립(1568~1636)

본관 경주. 호 잠와.

좀 낮선 이름이죠.

이분의 14대 종손 최채량은 경주 최부잣집 주인이다.

최진립은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25세 때 임란을 당하자 의병장이 된다.

27세 때 무과 급제하지만 벼슬은 거부한다.

이어 정유재란으로 다시 의병장으로.

선무공신 녹선된다.

63세 때 공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이되는데, 문신이 오르던 자리에 무인이 오른 것.

69세 때 공주영장.

남한산성이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포위당했다.

왕을 구하러 상경 중 용인 험천 지역에서 수십 발의 화살 맞고 하직.

청백리 녹선.

군인으로 청백리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병조판서 추증.

1699년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59에 경주부윤 李衡詳이형상이 지방 유림과 함께 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 位版위판을 봉안하여 장군을 모신다.

1701년 강당 및 남북재를 세워 강당을 敏古堂민고당, 양 협실을 興仁齋흥인재, 明義齋명의재라 하고, 남재를 好德齋호덕재, 북재를 遊藝齋유예재, 문을 植綱門식강문이라 하였다.

1711년 權大規권대규등의 상소에 의해 숭렬사우라는 묘액을 내렸는데, 이때 경주의 유림들이 원호를 용산서원이라고 하였다묘액의 글씨는 이익의 형 李潊이서가 썼다.

1870년 금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24년 중건, 복향되었다.

1993년 2월 25일 경상북도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었다.


앞쪽에 강당인 민고당을 세우고 뒤쪽에 제향공간인 崇烈祠숭렬사를 둔 前學後廟전학후학의 형식으로 배치되었으며, 입구에 신도비각을 세웠다.


사당인 숭렬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5량가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공포는 이익공 구조이며 익공의 장식이 화려하다.

평면은 전면에 반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강당인 민고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공포는 초익공 구조이며 가구는 5량가의 건물이다.

혼합식 기단에 원형초석을 두고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평면은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온돌방 1칸을 두었다.


경주최씨 가암파 문중에서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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