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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y 16.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II 경기 신륵사

열다섯. 1,600년 여주 神勒寺 신륵사

驪州여주 검은 말이 사는 동네.

서울과 면적이 비슷한 큰 마을이지만 인구는 달랑 10만.

남한강이 흐르는 바람에 죄다 상수도 보호구역에다, 곳곳에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특별히 할것이 없어 인구가 늘지 못하는 동네다.

이 여주읍에서 여주대교를 건너면 낮고 부드러운 곡선의 鳳尾山봉미산(飛鳳歸巢形비봉귀소형:봉황이 날아드는 형상)이 나서고, 이 산 남쪽 기슭에 신륵사가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숲이 우거지고 왼쪽 곁으로는 岸壁안벽이, 마당 앞으론 驪江여강이라 부르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절경이다.

신륵사는 신라 제 26대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다.

어느 날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이에 원효대사가 7일동안 기도를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정작 이 절의 내력은 이를 뒷받침할 유물이나 유적이 없어 알수 없다.

사찰의 배치방법을 가람이라고 해서 일주문 들어가 사천왕문, 불이문, 탑을 거쳐 법당에 이르는 모든 시설을 갖춘 곳을 伽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 신륵사는 최근에 지어진 일주문만 달랑 하나 있다.


神勒寺 신륵사


고려 고종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印塘大師인당대사가 나타나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진다.

신력으로 제압했다하여 神力의 神신 과 제압의 勒륵을 합쳐 神勒寺신륵사가 된다.  


고려 공민왕의 왕사 懶翁和尙 惠勤나옹화상(게으른 늙은 고승) 혜근이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서 법회를 열자 신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野壇法席야단법석(야외에 설치된 설법 자리).

자신보다 보다 따르는 백성이 더 많다고 밀양 영원사로 귀양을 보낸다.

가는 길에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신다.

그래 신륵사는 후세에 존경받는 영정을 모시는 조사전을 부랴부랴 세우고 나옹화상의 영정을 거니 다시 인산인해다.

1392년 이제 불교의 고려는 가고 유교의 조선이 들어선다.

당연히 사찰들은 어려워진다.

세조의 비 貞熹王后정희왕후는 풍수지리상 지세가 불길하다고 하여 1469년 서울 강남구 태모산 아래 있던 세종의 英陵 영릉(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을 여주로 옮긴다.

당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렸던 한명회는 신륵사를 영릉의 願刹원찰(창건주가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특별히 건립하는 절)로 추천한다.

이에 신륵사는 200여 칸의 大伽藍대가람이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신륵사는 500여 승군을 조직해 싸웠고, 이때 극락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

1671년 현종때부터 다시 일으켜온 것이 오늘날의 신륵사이다.

구룡루

강변의 너른 마당을 지나면 왼쪽에 구룡루가 있다.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의 누각이다.

구룡루를 돌아들면 맞은편에 극락보전이 있다.

아미타불 도량인 신륵사 금당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집으로 1797년에 시작하여 180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내부에는 목조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고, 1900년에 그린 후불탱화·신중탱화·감로탱화와 1908년에 조성한 지장탱화가 있으며, 1773년에 주조한 梵鐘범종이 있다.

그리고 극락보전 정문 위에는 千秋萬歲천추만세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나옹의 친필이라고 구전되고 있다.

극락보전

금당 앞에는 보물 제225호인, 구름과 용무늬가 아름다운 다층석탑이 서 있고, 양 옆으로는 스님들의 선방인 禪覺堂선각당과 고려시대 이후 시인 묵객들이 묵어 가며 자연을 노래했던 寂默堂적묵당이 있다.

극락보전 왼쪽으로 비껴서서 만나는 그림 같은 단칸집이 보물 제180호로 지정된 조사당이고, 북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나옹선사 석종부도와 부도비, 석등이 건립되어 있는데 모두 눈여겨볼 만한 유물들이다.


조사당
명부전

구룡루 앞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면 보물 제225호인 다층전탑(塼塔)과 대장각비가 남한강을 굽어보고 서 있다.

신륵사는 벽돌로 쌓은 탑으로 인하여 고려시대부터 벽절이라고도 불려왔다.

탑의 건립년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탑 북쪽에 있는 수리비에는 영조 2년에 세워졌다고 쓰여 있는데 이때 탑을 수리하고 비를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다산전탑

신라 선덕여왕 때 석양지가 작은 전탑을 만들어 석장사에 봉안하였다

- 삼국유사 권4


이어 나옹선사의 다비장에 세운 삼층석탑, 나옹선사의 호를 딴 정자 江月軒강월헌이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를 굽어본다.

강월헌
3층석탑
수백년 보호수 향나무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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