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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y 07.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I 강원 하조대

열일곱. 하륜과 조준의 발자취, 河趙臺하조대

襄陽양양.

양양군 현남면 기사문리에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민족 분단의 현장인 38선이 있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에 동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설악산을 비롯한 높고도 험한 산들을 일으켜 세웠다.


큰 들녘 동쪽 끝에 바다 해를 보고, 긴 숲 일면에 강 하늘이 보인다

- 姜希孟 강희맹

강원도 양양군의 현북면 하광정리에 위치하고 있는 초진산에는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이곳엔 봉수대와 더불어 유명한 하조대 정자가 있다.

이름과 관련하여 몇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河崙하륜과 趙浚조준이 이곳에서 노닐었다고 하여 두 사람의 성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두번째설은 조위한이 동명서원기를 쓰면서 세상사람들의 말을 인용해서 조준은 아니고 자신의 8대조인 용원군 조인벽을 지칭하는것이라 하였다.

세번째는 양양지방에 전해오는 전설인데 하씨성을 가진 총각과 조씨성을가진 두 처녀의 사랑이야기가 얽혀 있다고 하는것이다.

어찌되었든 하조대라는 이름의 유래가 조씨성의 인물과 관계가 있는것으로 보여진다.

하조대는 조선 정종때 건립하였으나 철폐되었으며 수차례의 중수를 거듭하여 1940년 8각정을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때 불에 타 소실되었고 이를 1955년과 1968년, 1998년에 중건하였다.

(지금도 공사 중)

하조대, 관아의 남쪽 30리에 있다.

나지막한 산기슭이 바다 속으로 뻗어 들어가다가 갑자기 끊어져 하조대를 이룬다.

하조대 좌우에는 바위벼랑이 기이하고 예스럽다. 바다의 큰 파도가 세차게 부딪치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듯하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조선 건국 초기에 하륜과 조준이 노닐며 구경하던 곳이라고 한다.

까닭에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 輿地圖書 여지지도


하륜과 조준이 항상 놀면서 하조대라고 각석(刻石)을 하였기 때문에 칭한다.

- 1872년 지방지도

여러 사서의 기록으로는 첫번째 설이 유력한 작명설인걸로 보인다.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암석해안으로, 주위의 울창한 송림과 어울려 동해안의 절경을 볼 수 있다.

해가 떠오르고, 검푸른 동해바다 위로 어선이 둥둥 떠 있고, 그 위로 갈매기가 끼룩거리며 날아가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하조대를 기억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조대는 애국가에 등장하는 소나무 영상이 촬영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조대의 이름이 되었던 조준은 세금으로 고달파하는 백성들을 근심하며 시 한 수를 지어 양양 태평루에 걸었다고 하는데 21세기를 사는 대중들과도 다를것이 없었던것 같다.


옛 고을이 경영된 것은 나라 있기 전이어서,

태평한 바람과 달 반천 년이었다.

새는 나무에 해 그림자 세 발 남은때에돌아오고,

사람은 어촌에 낀 한 줄기 연기 속에서 말한다.

강한(江漢)이달려흐르니 세상일이 마음 아프고,

산하에 장한 공적은 하늘에 맹서한다.

근래의 가혹한 부세에 백성이 고달파하니,

동해의 물 기울여 재물을 만들고 싶다.


古都經營自國前 고도경영자국전

太平風月半千年 태평풍월반천년

鳥還官樹三竿日 조환관수삼간일

人語漁村一縷煙 인어어촌일루연

江漢奔流傷世道 강한분류상세도

山河壯續誓皇天 산하장속서황천

邇來讀賻民憔悴 이래독부민초췌

欲倒東溟作布泉 욕도동명작포천

- 趙浚 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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