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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Aug 03. 2017

일반인문 XCII 三伏삼복 더위

; 무더위의 해학, 여름날이 긴 것을 사랑하노라

장마가 끝나니 긴 여름이 시작되었다.

초복에서 말복까지 이르는 삼복은 한여름 무더위의 정점이다.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있는 절기로 하지가 지난 다음 셋째 庚日경일을 初伏초복, 넷째 경일을 中伏중복(초복후 10일), 입추 후 첫 경일을 末伏말복(초복후 30일)이라고 하는데, 이를 三伏삼복이라 한다.


조선시대 더위를 이겨내라는 의미에서 높은 관리들에게 쇠고기와 얼음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귀한 쇠고기 대신 닭을 잡아 삼계탕을 끓이거나 팥죽을 끓이고, 개장국을 만들어, 시원한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거나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며 더위를 물리는 복달임(복놀이)를 하며 허해진 기운을 보강하며 더위를 물리쳤다.


문인들은 복달임 음식과 더불어 술 한잔을 곁들였다.

그러며 한시를 읊조렸을 것이다.


무더위에다 불 같은 수심이 겹쳐서 오장육부 내 속을 삶아 대는구나

온몸엔 붉은 땀띠가 일어나고 곤하여 난간에 바람 쐬며 누웠도다

바람이 불어도 무덥고 불에 부채질하듯 덥구나

목말라 물 한 잔 마시니 물 또한 끓는 물 같구나

구역질이 나서 감히 마시지 못하는데 가벼운 천식이 목구멍을 막는구나

잠들어 잠시 잊고자 하니 또 모기가 덤벼드네

어이해 쫓겨온 귀양지에서 이같은 온갖 흉험 만난단 말인가.   

죽는 것 또한 두렵잖으나  하늘은 어이해 날 궁하게 하는가?  


酷熱與愁火 相煎心腑中 혹열여수화 상전심부중

渾身起赤纇 困臥一軒風 혼신기적뢰 곤와일헌풍

風來亦炎然 如扇火爞爞 풍래역염연 여선화충충

渴飮一杯水 水亦與湯同 갈음일배수 수역여탕동

嘔出不敢吸 喘氣塡喉嚨 구출불감흡 천기전후롱

欲寐暫忘却 又被蚊虻攻 욕매잠망각 우피문망공

如何流謫地 遭此百端凶 여하류적지 조차백단흉

死亦非所懼 天胡令我窮 사역비소구 천호령아구

- 苦熱, 李奎報 고열, 이규보

동국이상국집을 쓴 이규보는 괴로운 무더위란 의미의 苦熱고열이라는 시를 지었다.

얼마나 못견딜 더위였으면 이것으로 시 지을 궁리를 다 했을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퍼진다.

여름 속에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누워 살랑살랑 불어오는 선들바람에 책읽다 차 마시다 잠자다 일어나는 태고적의 정취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을 열면 오히려 아래 윗집에서 틀어대는 냉방기의 후끈한 열기만 밀려드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생활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풍취다.


주렴장막 깊은 곳에 나무그늘 돌아들고 은자는 잠이 깊어 우레 같이 코를 고네

날 저문 뜨락에는 찾아올 이 하나 없이 바람만이 사립문을 열었다가 닫곤 하네  

홑적삼에 대자리 깔고 마루에 누웠다가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네.

빽빽한 잎에 가린 꽃은 봄 지나도 남아 있고옅은 구름 사이의 햇살은 빗속에도 밝구나.


簾幕深深樹影廻 염막심심수영회 幽人睡熟鼾聲雷 유인수숙한성뢰

日斜庭院無人到 일사정원무인도 唯有風扉自闔開 유유풍비자합개

輕衫小簟臥風欞 경삼소점와풍령 夢斷啼鶯三兩聲 몽단제앵삼양성

密葉翳花春後在 밀엽예화춘후재 薄雲漏日雨中明 박운루일우중명

- 夏日卽事 하일즉사 (여름날)


깊은 숲속의 고즈녁한 산집.

여름날 오후의 무료한 햇살 따라 나무 그림자가 자꾸 자리를 옮긴다.

이따금씩 규칙적으로 주인의 우레같이 코고는 소리가 그 적막을 깨운다.

하루 종일 나무 그늘 위로 햇볕만 따갑다가 이윽고 후두둑 소나기가 지나가는 모양이다.

뜨거운 날씨에 한시를 읽자면 시간도 공간도 멈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코고는 소리에 열렸다 닫혔다 하는 사립문,

돌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차 향기,

여기저기서 몰려나오던 솔바람 소리가 나를 에워싸 어느덧 내가 그 속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당나라 文宗문종은 여름 날 신하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모두 더운 것을 괴로워하지만, 나는 여름날이 긴 것을 사랑한다(人皆苦炎熱인개고염열 我愛夏日長아애하일장)라 했다.

여름을 건너뛰고 살 수는 없다.

폭염에 덥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여름이라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함이 삼복을 보내는 마음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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