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대표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가 중 한 사람인 팔라디오의 작업들을 연구하면서 그가
행한 건축적 의미를 해석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시대와 상관없는 단순한 역사공부이거나 고전 건축의 반복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어느 한 시대의 역사를 공부하고 고전 건축을 모방하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팔라디오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지층처럼 쌓인 건축역사들을 그의 작품과 함께 바라보면서 단순히 모방이 아닌 답습하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답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건물이 위치한 장소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과 함께 그의 건물들이 지어진 장소에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고 그 장소를 건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스스로 구할 수 있고, 이렇게 습득한 객관적 사실들을 자신이 처한 건축적 고민들에서 좋은 레퍼런스로 참조할 수 있도록 합니다.
팔라디오의 건축을 생각하면 주어진 장소와 그 장소에 지어질 건물의 형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매우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장소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주어진 대지에서 길, 자연, 방위 등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확장된 개념으로 도시와 관계를 가지면서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이러한 장소에 대한 고민은 빨라쪼와 빌라를 비교하면 잘 드러나있는데, ‘집’이라는 동일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도시와 전원이라는 서로 다른 두 장소에서 전혀 다른 건축적 형태로 나타냈습니다. 또한 빨라쪼와 빌라들이 같은 도심이나 전원에 위치해 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위치한 장소에 적합한 형태를 가지면서 그 장소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팔라디오의 빨라쪼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비첸자(Vicenza)라는 이탈리아의 한 도시를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많은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빨라쪼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많은 그의 건물들이 아직까지 남아있고 아직까지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빨라쪼들을 보면 중정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도심에 위치하였더라도 각각의 건물들이 지어진 장소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 장소에 적합한 형태를 지닌 중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도심형 빨라쪼들은 길의 정면에 면해서 한정된 발전만 가능한 협소한 길에 자리하는 유형이고, 건물들로 가득 찬 도시에서 중정의 역할은 팔라디오 이전부터 집이라는 테마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건물과 마주하고 있는 도로는 마차들로 인한 오물들 때문에 심한 냄새가 나서 도로와 관계를 가지기 힘들었고, 주변 건물들 때문에 자연과의 관계를 가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채광과 환기를 위한 중정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물의 각 공간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전체 형태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요소로 중정은 반드시 필요했던 요소입니다. 팔라디오는 이러한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역사를 바라보고 그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재해석하기를 원했던 그에게 로마시대 건축의 도무스 주택은 빨라쪼를 계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좋은 레퍼런스로 작용했습니다. 이와 같이 빨라쪼는 도심이라는 주어진 장소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를 만들어낸 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팔라디오의 빌라들은 바르케사(Barchessa)와 회랑의 요소들을 이용해서 주변 자연환경과 관계를 가지기 좋은 형태들로 계획되었습니다. 빌라 에모(Villa Emo)를 보면 중앙에 건물의 주인세대가 지내는 공간이 있고 양 옆으로는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공간인 바르케사가 길게 뻗어있습니다. 중앙의 주인 세대는 바르케사보다 높은 높이로 전체 형태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바르케사는 연속되는 기둥들로 인해서 자연과의 관계를 극대화시킵니다. 바르케사 양 끝에 좀 더 높게 만들어진 공간은 건물의 완성된 형태를 나타내기 위한 팔라디오의 계획입니다. 그의 다른 빌라의 예로 라 로톤다(La rotunda)가 있습니다. 농경지를 가진 지주들의 빌라들과는 다르게 교외의 휴식처 목적으로 만들어진 빌라입니다. 빌라 로톤다는 다른 팔라디오의 빌라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세 가지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도시에 바로 인접해 있으며, 언덕의 정상에 자리하고 서비스 시설(바르케사)은 일체 없습니다. 그는 건축사서 2서 3장 18쪽에 아래와 같이 서술했습니다.
“빌라 로톤다는 도시에 인접한 다른 빌라들과 함께 위치하지 않았습니다. 대지는 거대한 극장의 한 면을 부여하며 경작지로 활용되는 아름다운 언덕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완만한 오르막길 언덕 위 매우 쾌적한 장소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빌라의 모든 면에서 매우 아름다운 광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어디는 저 멀리, 또 어디는 저 지평선 끝까지, 그리고 4개의 정면 모두에 로지아가 자리합니다.”
그가 그의 책 건축 4서에 언급하였듯이 이 계획에서는 전망대처럼 주변을 에워싼 모든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주제와 함께 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적합한 형태를 중앙집중형 평면으로 4면이 동일한 상징적인 면을 가진 모습으로 계획되었습니다. 4면의 상징적인 입면은 그가 고전 건축에서 바라본 레퍼런스들을 주로 인용하였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한 장소를 완결된 형태로서 장소를 규정하고 싶었던 팔라디오의 의지가 잘 나타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소에 대한 분석과 함께 적합한 형태를 계획하는 것은 건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모네스티롤리는 자신의 책 ‘La metopa e il triglifo’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장소의 특수성과 계획의 보편성에서 우리의 프로젝트는 완성된다”
우리는 건축을 통해 매번 다양한 장소와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만나는 장소는 우리에게 마주한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오랜 세월 속에서 변화되어왔고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팔라디오에게도 역시 그에게 주어진 수많은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고민하였고 해결하였습니다. 그에게도 장소는 하나의 마주한 현실이었을 것이고 적합한 형태를 찾기 위해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고전 건축과 함께 찾아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합한 형태를 찾기 위한 그의 평면 계획들을 보면 역사를 기반으로 항상 보편적인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팔라디오의 연구가 무엇보다 그의 건물 평면에 적용되고 그 결과 인식됩니다. 평면이 건축과 외부 현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현실로부터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는 건물 부분들에 대한 배치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계획을 위한 노력은 그의 건물들이 영속성을 지니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아직까지 잘 사용되고 있는 것을 통해 이해됩니다.
그는 고전 건축을 통해 주어진 현실에서 새로운 건축을 건설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고전 건축 언어를 연구하여 자신만의 건축 언어로 재생산하는 모습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는 형태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기둥, 벽, 지붕 등)를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들을 있어야 할 위치에 배치하여 장소에 적합한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점이 오늘날 우리가 팔라디오를 좋은 스승으로 생각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도시로부터 놓인 건축의 다양한 주제들에 적합한 형태를 추구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