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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zeze Dec 10. 2021

취향이 묻어나는 동네 :: 서촌 카페 대충유원지

무목적빌딩 [19년도 서울시 건축상]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6 4층

 상업공간, 테라스, 시퀀스, 전이공간, 한옥뷰, 서촌, 컨텍스트

 @daechungpark_inwangsan





서촌의 컨텍스트를 담다


북적거리는 종로구의 서촌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들어오면 오래된 한옥과 빌라, 공방, 작은 카페 등 아기자기하고 여유로운 정취가 이어진다. 인왕산 끝자락,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덜 받은 누상동, 누하동은 여전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다.


세련된 건물이지만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18년도 준공으로, 비교적 신축(?) 건물임에도 이 동네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든 곳이 있다. 4층 건물 무목적 빌딩이다. 원래 가정용 LPG 저장소로 쓰이던 콘크리트 건물이 있던 곳이라 원래 풍경과 비슷하게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그러나 노출 콘크리트 마감에 고압살수장치로 물을 쏘아서 벽면을 일부러 거칠게 만들어 놓았고, 수압의 정도에 따라 벽면에는 크고 작은 무늬의 상처가 나있다.(Chipping 공법.) 세월의 흔적을 일부러 만들어 오래된 서촌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을 조성했다.



소규모 대지임에도
전면도로와 후면 골목을 연결하는 열린 통로를 확보하는 공공성을 잘 표현하였고,
서촌의 도시적 상황에 어울리는 공간계획 및 마감재료 계획과
각 공간마다의 세밀한 배려가 돋보인다.


2019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선정 이유, 서울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거친 노출 콘크리트를 느낄 수 있다

알고 보면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는 건물이다. 19년도 제37회 건축상 최우수상에 선정되며 문화 비축기지, 서소문 역사 문화공원, 아모레퍼시픽 본사 등 감탄을 마지않는 건축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목적 있는 건물, 무목적 빌딩


다른 수상 건물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독특한 구조, 고유한 개성이 있는 브랜드를 입점 기준으로 내세우며, 방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꾸밈없이 심플한 외관, 건물 곳곳에 숨은 디테일, 작은 조경공간 등을 보니 내부 공간을 경험하기 전부터 건물 전체를 구석구석 누리고 싶다는 기대감이 커진다.

그리고 이곳에 꼭 들어맞게 자리한 카페가 있다. 연남동에 이어 고즈넉한 종로구 누하동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튼 대충 유원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이르러야 그 형태를 볼 수 있지만, 거친 콘크리트 질감을 느끼며 계단으로 가보는 것도 좋다. 입장부터 기대감을 갖게 하는 대충유원지의 시퀀스는 눈여겨볼 만하다.


‘대충(大蟲)’이란 조선시대에 호랑이를 일컫는 말. 인왕산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공간의 전이 & 짧고 굵은 시퀀스

카페 입구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정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카페 입구로 가는 길은 좁은 복도다. 구석으로 빼꼼 보이는 정원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을 갖고 카페로 서서히 들어간다. 건물 공용부에서 카페로, 외부에서 내부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간의 전이를 경험할 수 있다.



카페 내부에서 바라본 정원의 정면

커피 바에서 바라본 작은 정원의 모습. 내/외부 동일하게 화강석으로 바닥을 마감해 넓은 유리문을 개방하면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더 모호해져서 마치 실내에 정원을 끌어들인 듯한 느낌이 든다.



1평 정원에 사는 양치식물

양치식물 정원                                                                      

고사리, 이끼, 관중 등 양치식물원에서 볼 수 있는 수종이 눈에 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수종이 아니라서 흔히 쓰이진 않는다. 대표님이 직접 조성하셨다고. 양치식물은 보통 그늘이고 습한 곳에 서식하고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일조량, 토심 등 다양한 생육환경을 고려해 심었다.



시원스러운 통창을 통해 서촌과 인왕산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의 최고 뷰는 바 코너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해 질 녘쯤 오면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 뒤로 통창을 통해 서촌과 인왕산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대충 유원지에서 제공하는 풍부한 시선을 경험하시길.



소품과 디테일

탬버린즈 손소독제(와 촛대를 닮은 받침대), 무심한 듯 정갈하게 벽을 채운 메뉴와 설명글이 보인다. 안심콜을 저렇게 잘 어울리게 써놓을 일이라니. 취향껏, 하지만 통일감 있게 공간을 채웠다. 어느 소품 하나 허투루 놓인 곳이 없다.


익숙한 재료와 마감을 사용하니 카페의 집기와 주인장의 취향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천정 조명이 특이해 자세히 보니 집기들이 올라간 스테인리스 철판과 똑같이 생겼다.



테라스로 가는 길


입구에 이은 두 번째 전이(Transition) 공간이다. 바에서 테라스 공간을 가는 길에  좁은 복도가 있다. 테라스 입구와 커피 바 사이에 있는 좁은 통로는 실내에서 실외로, 바에서 테라스로 공간의 전환을 상기시키는 '길'과 같다.

방문객은 이동에 따라 문틈을 프레임 삼아 보이는 테라스를 보며 앞으로 마주칠 공간에 기대감을 갖게 된다.


낮은 한옥 뷰가 펼쳐진 테라스


크림브릘레, 곶감, 달지 않은 말차라떼가 인기 있다.





흔한 상가주택이 '작품'으로 거듭나기까지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건물 밑으로 뚫린 길은 바로 옆 블록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무목적 빌딩은 상업빌딩인데도 ‘공공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건물의 밑으로 뚫린 샛길을 이용하면 바로  블록을 건널  있어 주민과 방문객이 모두 편리한 쇼트컷이 생겼고, 20년도엔 실제로 샛길을 이용해 화재진압에 기여한 바도 있다.


아마 건축주가 연면적을 조금이라도 넓히고자 했으면 1층에 이런 샛길은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서촌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우선한 건축주의 열린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노출 콘크리트 외장재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이다. 이 익숙하고 단순한 재료로 어떻게 하면 새로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치핑 공법. 내부만 살짝 손보는 게 요즘 방식이라면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건물 하나가 통째 브랜드가 되었다.


사실 종로구 경복궁 일대는 지구단위계획으로 지정되어 있어 신/증축에 규제가 상당하다. 층수, 면적, 외장 소재와 컬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4층 카페에서 보이는 인왕산 뷰나 한옥 지붕을 보고 있자면 서촌만의 독특한 매력이 이제껏 보존되었기에 우리가 지금 누릴 수 있다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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