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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채록 Nov 23. 2021

무얼 해도 가라앉는 웃픈 현실

영화 <싱크홀> 리뷰

<해운대>, <부산행>, <터널>, <엑시트> 등 그동안 다양한 재난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흔히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재 우리가 재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뒤덮인 지금, 또 한 편의 재난영화가 개봉하였다. 새로운 도심형 재난으로 떠오르고 있는 싱크홀을 소재로 한 작품, <싱크홀>이다.

국토교통부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평균 900건, 하루 평균 2.6건의 크고 작은 싱크홀이 발생한다고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부실 공사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7월 미국에선 실제로 아파트가 싱크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있지 않았는가. 도심에 사는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 재난과 코미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장르가 만났다.


11년 만에 장만한 집이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싱크홀’ 사고로 땅속으로 꺼져 버린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원(김성균)은 ‘내 집 마련’이란 한국인의 제1의 목표를 이룬 행복도 잠시, 싱크홀로 그는 일순간에 모든 걸 잃는다.


근데 재난영화라 하면, 인물들이 생존을 향해 내달리는 만큼 자연스레 극의 분위기가 어두워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 뭔가 이상하다. 생사의 기로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 웃음이 새어 나온다. 재난과 코미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장르가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야 차승원, 이광수 등 뛰어난 예능감을 갖춘 이들을 기용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이들의 연기력 덕분에 과장되어 보이는 몸짓도 재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분투로 보이게 만들었으니까.

지하의 이들과 달리, 지상에 있는 이들의 몸짓은 굉장히 무겁다. 보기에 따라 구조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 감독은 일반적인 재난영화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쯤에서 사명감을 가진 인물이나, 언론에 사진 한 장 더 찍히려는 정치인들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그런 장면은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어찌 보면 이게 더 현실적인 터치가 아닌가 싶다. 뉴스만 봐도 여러 이해관계에 묶여 한 발짝 떼기 힘든 일이 부지기수 아닌가. 또, 최선책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발버둥 쳐도 가라앉기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그리기 위해 지하와 지상, 두 공간의 온도차를 달리 설정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재난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작품에 감정적인 순간이 아예 없진 않으나, 그걸 인지할 만큼 길게 가져가질 않는다. 또, 코믹스럽게 연출된 부분들이 많다보니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그려진 지점들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이처럼 불균질한 영화의 톤앤매너가 단점으로 작용하며 작품을 색안경 쓰고 보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마냥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부동산’ 문제라 영화의 싱크홀이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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