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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Jun 08. 2023

취준 슬럼프가 왔다

지나가는 모든 풍경과 시간이 지루한 날들

쌩신입 때의 취업 준비와는 상황도, 마음가짐도 달랐다.


내겐 짧지만 나름 알차게 보내 온 실무 경험들이 생겼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또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하면서 명확한 목표도 생겼다. 탈피하고 성장하면서 마음의 껍질도 전보다 아주아주 단단해저서,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실제로 내가 생각했던 시기에 좋은 기회들이 찾아 왔고, 아쉽게도 그 기회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에도 나는 꽤 오래 지치지 않았다. '그래, 그래도 이정도면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겠어!', '시작치고 나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그때가 내게 온 가장 큰 행운이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의 모든 기회도 내가 놓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문득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만 같은 좌절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면접은 이전 면접들과 달리, 드디어 온 기회를 내가 잡지 못했다는 자책이 세게 들었다. 이전에는 들지 않던 후회가 들었다. 매일을 곱씹었다. 왜 그랬을까, 왜 놓쳤을까.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면.. 후회와 자책으로 보냈다.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간간히 지원을 한 곳은 있었지만.. 대부분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먹여 살려야하는 내 몸뚱이를 끌어 안고, 다가오는 불안함을 온 힘을 다해 외면하는 일은 정말 없던 자괴감도 생기는 일이었다. 이전의 탈락들에서 매번 툭툭 털고 잘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많이 강해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고꾸라져서 못 일어나는 나를 보니까 '그래, 내가 나지 뭐.' 싶었다. 잠깐 힘이 강해지는 배너 박사처럼, 한껏 부풀었던 모든 게 다시 평범하게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분명 나는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고, 언젠간, 어떻게든 다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알지만, 이제는 그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더 큰 고민이다. 내 고민은 어쨌든 현재에 있고, 내게 필요한 위로와 말들을 쏙쏙 흡수해서 다시 파릇파릇해졌던 나만의 정화 시스템이 지금은 작동되지 않는다.


오늘도 새로운 채용 공고를 찾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고친다. 하지만 시간은 멈춰있다. 멈춰버린 나의 시간이 무료하고 지루하다. 슬픈 게 아니라 좀 무덤덤해져 버렸다. 지나가는 풍경들까지 지루하다고 느끼면서 집으로 가겠지. 그래도 또 한번 희망이 오면 금방 설레버리고 마는 게 내 장점이니까. 그때까지는 잠깐 그냥 이렇게.



2023년 5월 11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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