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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Jun 08. 2023

실패, 또 실패.

너 진짜 바보냐. 어제 면접을 보고 집에 오던 길, 정신없이 신분당선에 올라탈 때쯤에 나만 들리는 소리로 누가 그랬다. 순간 면접장에서 알맹이랄 것도 없이 우두두 쏟아지기만 하던 나의 말들과 면접관님의 알쏭달쏭했던 표정이 머릿속에 겹치게 떠올랐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을 만큼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12년 배워놓고 영어를 못한다는 건 자조라도 할 수 있지만, 30년을 살아놓고 아직도 한국말로 내 이야기를 제대로 담지도 못한다는 건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어제처럼 면접을 보거나 아니면 이렇게 글을 쓰려는 시도를 하고 있자면 아 나는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친구들이랑 웃긴 소리를 하고 놀 때는 청산유수처럼 뱉어지던 한국말이 왜 면접장이나 하얀 창, 반드시 내 말로 채워야 하는 공간을 만날 때마다 턱 막혀버리고 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 작고 새하얀 면접장을 (그런데 어제의 면접장은 정말 하얬다) 내 지저분한 언어로 맘껏 어지르고 말았다.


지하철에 앉아 계속 생각했다. 뭐가 문제일까? 예전이라면 긴장의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끄러움이 많고 누군가의 앞에 설 때면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대학에서의 스파르타 교육과 다년간 면접 경험, 그리고 청심환이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그게 비록 기분 탓일지라도) 사실 덕분에 이젠 면접에서 너무 떨려서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실제로 면접 중에 '면접이 처음이에요?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근데 면접 중인데 말씀을 되게 차분하게 잘하시네요'와 같은 말들도 종종 들었다.


그럼 대체 내 문제는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 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까지 말해놓고 결국 '와 x됐다'라는 생각만 하다가 급한 마음에 또 필터링 거치지 않은 말들로 일단 입을 떼고 마는, 나에게는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지금까지의 면접에서 크게 당황하고 답변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생각하다 보니 결론이 나왔다. 나는 내 의견이나 감정을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구나! 그래서 내가 해왔던 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의 의견이나 사고가 필요한 질문에서는 작동을 멈추고 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냥 생각한 질문을 잘 대답하는 앵무새였다.


문제를 인지한 순간 나는 너무 절망스러웠다. 내가 단기간에 뚝딱 고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였다. 나는 이번 취업을 준비하면서 그래 노력하면 다 된다! 중꺾마!의 마음으로 버텨왔다. 나는 엄청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일도 잘했던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생각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나는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전이면 6-7에 도달한 후 그쳤을 노력도 8-9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제 면접장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 문제를 깨달은 순간, 내가 순식간에 채워버릴 수는 없는 1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그걸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몇 달, 며칠을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몇 년도 아닐 것이다. 타고났거나 정말 오랜 고민과 생각과 연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인데, 둘 다 아닌 나는 지금 당장 그 능력이 필요하다. 절망스러웠다.


면접의 가장 잔인한 점을 뽑으라면 두 가지나 있다. 원하던 회사에 방문하고, 오고 가며 나의 집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같이 일할 실무자분들까지도 만난 후에 '여기 진짜 좋지? 근데 넌 안 돼'라는 거절을 당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1등이 아니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꽤나 좋은 90점이라는 점수를 받아도, 누군가 91점을 받는다면, 나는 40점을 받은 누군가와 동일하게 그냥 탈락일 뿐이다. 그 면접장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2등, 3등도 안 되고 오로지 단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자신만만하던 마음도 정말 막막해진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나와 비슷한 능력이 있는데 자신의 말을 정리해서 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만년 2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등이나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한 명쯤은 늘 있을 테니, 어쩌면 나의 기회는 영영 없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어제는 한동안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장된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뭐 사회나 회사를 탓하려는 것은 진짜 아니다. 나 같아도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 좋고, 회사는 돈을 주면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인데 당연히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지금의 내 감정이, 눈앞에는 '탈락'이라고 쓰인 100층짜리 건물과 맞먹는 대왕바위가 있고 그걸 가까이에서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지금 나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이다.


면접이 끝난 후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걸어가 지하철을 탔다. 다 너무 대단해 보였다. 다들 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장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처럼 바보 같은 말은 안 했겠지? 어떻게 사람이 취업을 하고, 면접을 보고, 일을 할 수 있는 건지 멍하게 생각했다. 이전의 내가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많이 속상하긴 하지만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무너지면 안 된다. 그래서 오늘도 무작정 카페에 나와서 넋두리를 적는다. 이걸 다 적고 나면 또 새로운 공고들을 찾아보고, 내일은 또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것이다. 면접 결과는 나올 때까지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너무 청춘만화 주인공처럼 둥둥 떠있던 때가 있어서 오히려 이런 차분함과 담담함이 나에게는 좀 필요했었다고 위로하면서. 그리고 당분간 책을 더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쓸 것이다. 한 단락씩이라도 적어야겠다. 내가 이번 이직에서는 면접장마다 아무말대잔치를 연다고 하더라도, 아주 나중 면접장에서는 그리고 앞으로 올지 모를 다양한 상황들에서는 부족한 말과 생각 때문에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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