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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Oct 22. 2020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길도 있다

부산에 다녀왔다. 단 이틀이라도 일상을 떠날 수 있을까 기대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만큼은 일상에서 있었던, 혹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역시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지원했던 기업의 서류 발표는 부지런히 났고, 앞으로 남은 공채 일정들이 어지럽게 머리를 빙빙 돌았다.


돌아가는 날, 부산역을 떠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어지러움 속에서도 이틀 동안 나를 웃게 했던 친구와 시간과 헤어지기가 싫었다. 또 일상으로 돌아가 이틀 동안의 휴가를 자책하며, 또 대답 없는 자기소개서를 내야 하는 일이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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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과 울산역을 잇는 길엔 유난히 긴 터널이 있었다. 부산으로 가던 기차에서 슬슬 지루해져 갈 때쯤, 창밖 풍경을 구경하려던 계획이 덕분에 실패해서 기억에 남았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긴 터널을 지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긴 터널을 지나는 길도 있구나.


취업 준비로 남들보다 유난히 긴 시간을 보내며, 조급함과 부러움을 떨칠 수가 없다. 가끔은 이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들곤 했다. 그런데, 그냥 긴 터널을 지나는 길도 있는 거다. 엎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곳으로 가는 길도 있고, 고속도로로 시원하게 달리는 길도 있고, 샛길도 있고, 부산역과 울산역을 잇는 기찻길처럼 긴 터널을 지나는 길도 있다. 버티기 위해 스스로 수혈하듯 퍼부은 위로지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이 길의 끝을 의심하게 될 때마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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