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육아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

기록은 거리를 요구한다. 나는 그 거리를 원하지 않았다.

by 정원

나를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으레 내가 육아일기를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꽤 기록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들어간 번듯한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의 명함에는 ‘아키비스트’라는 직함이 적혀 있기도 했다. 사실 이건 다분히 이상주의자였던 당시의 보스가 ‘명함에 적힐 직급은 마음대로 못 정하더라도, 하고 싶은 역할은 스스로 정하라’고 했기에 내 맘대로 정한 거였지만 말이다. 기록을 잘해서라기보다는 기록을 잘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언제나 그랬다. 기록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


그래서 나도 당연히, 언젠가 엄마가 되면 내가 육아 일기를 쓸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적은 기록을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아이가 크면 보여줘야지. 그건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육아에 대한 로망 중 하나였다. 사실은 태교 일기부터 쓰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일이 바빴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실상은 마지막이라고들 하는 자유를 만끽하며 노느라 바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임신 기간 동안에도 포기한 기록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이 한 생명을 생존시키는 데 들어가는 출생 초기에 갑자기 잘 될 리 없다. 아이의 패턴을 체크하기 위해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시간은 분 단위로 촘촘하게 기록했지만, 거기에 나의 감상 한 줄을 덧붙이는 그걸 못했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일정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모든 기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육아를 기록하기 위해서 거리를 두어야 하는 대상이 내 아이, 그리고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면, 나는 거리를 두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지나가 버릴 이 짧은 순간 동안 잠시라도 오로지 아이와 나, 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 있고 싶었다. 가능한 한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존재하고 싶었다.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시기를 보내는 동안, 붙잡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는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부족했다. 기록하고 싶은 순간은 말 그대로 모든 순간이었으니까. 의미 있는 기록이 되려면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버릴 것’을 선택할 수 없었다.


애착은 모든 사물을 거짓된 비범함의 광채로 물들인다. 사랑에 흠뻑 취한 내 눈은 무언가가 정말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중략)

아기와의 나날을 일기장에 조금씩 기록하다 보면 내 안의 비평가와 엄마가 다투기 시작했다. 비평가는 서정적인 세부 사항을 선택하고 싶어 하지만 — 내 딸은 젖은 벚꽃 송이들 속에 작은 손을 파묻었다. — 내 안의 엄마가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전부 다였다. 그녀는 선택하지 않기를 원했다. (p.35)


그래서 레슬리 제이미슨의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을 읽으며 이 문장에서 나는 크게 안도했다. 나만 이렇게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구나. 이 지구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구나, 싶어서. 비로소 내가 무엇을 기록할지 선택할 수 없었던 데 대한 정당한 ‘근거’를 찾은 기분이었다. 내 안에서는 비평가보다 엄마의 힘이 더 셌던 것이다.


몇 번은 기록해 보려고 시도도 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무엇을 적어도 내가 남기고자 하는 것의 100분의 1도 담기지 않았다. 몇 번의 헛발질 끝에 나는 기록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필연적으로 실패할 일에 아까운 시간을 쓰는 대신, 언젠가 그 시공간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면 되새길 수 있을 정도의 실마리만 메모해 두고는 다시 현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록에 대한 마음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기록이라는 도구로, 이 시간을 통과한 나 자신을 다시 읽고 싶었다.


아이가 자라고, 마치 한 몸 같았던 우리 둘 사이에도 조금씩 거리가 생기면서 그동안 눌러두었던 기록에 대한 욕망도 함께 자라났다. 단어 몇 개에 불과하던 기록들은 이제 문장 몇 줄, 혹은 몇 단락, 마침내는 한 편의 글로도 완성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와 집, 유치원, 때때로 놀이터나 키즈 카페를 오가는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용케도 나의 관심을 잡아채는 데 성공한 무언가에 대해 산발적으로 휘갈길 뿐이었다.


그러던 지난 4월 7일, 아이가 버섯을 발견했다. 늘 오가던 유치원 등원길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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