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월요일 아침

고개를 돌린 그곳에, 버섯이 있었다.

by 정원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준비해 여유롭게 나가리라 다짐했지만, 아이를 깨우고 먹이고 입히는 사이, 시계는 또 계획보다 15분이나 지나 있었다.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는 시간에 가까스로 유치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이를 재촉하는데, 그날따라 유독 아이의 걸음이 느렸다.


“엄마, 이것 좀 봐. 신기한 게 있어.”


일주일에 다섯 번을 오가는 등원길, 주차장에서 유치원 문앞까지 채 50m가 안 되는 그 짧은 거리 안에서도 아이는 많은 것을 발견하곤 했다. 흔하디 흔한 세잎 클로버, 매일 너덧 마리는 만나는 공벌레,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기어코 뿌리를 내린 이름 모를 들꽃… 내게는 이미 무감해진지 오래인 것들을, 매일 보아도 매번 처음인 양 찬탄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마음이 바쁜 아침 시간에는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고 건성으로 대꾸하고는 은근한 손길로 아이의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그렇다.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어 차라리 기록하지 않기를 택할 정도로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있던 나는, 어느새 타성에 젖은 한 사람의 생활인이 되어 있었다. 일상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에도 벅찬 나날들 속에서 기록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 그래.”


늘 그래왔듯 건성으로 넘기려는 찰나, 아이의 목소리가 달랐다. 그 작은 몸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야, 엄마. 이거 꼭 봐야 돼. 진짜 신기한 거야.”

마침내 고개를 돌린 그곳에, 버섯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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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쪼그라든 스폰지처럼 생긴, 누리끼리한 버섯이. 내 검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두께와 길이의 대 위에, 한 번 닦고 구겨놓은 휴지 같은 모양의 갓이 올라와 있는 그것은 우리가 흔히 먹는 버섯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버섯이었다. 신기한 거라고 해봐야 개미가 먹이를 나르는 모습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얼어붙었다. 숲길도 산길도 아니고, 잘 조성된 화단도 아닌, 보행로와 화단 사이를 제대로 메꾸지 못해 흙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버섯이 자란다고?


예전에 읽었던 버섯 그림책*의 기억을 더듬어, ‘그물망 버섯’일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이 진귀한 발견을 한 꼬마 박물학자에게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아윤아, 이거 그물망 버섯인 거 같아. 어떻게 이런 걸 찾았어? 아윤이가 아니었으면 못 볼 뻔 했는데 엄마한테 보여줘서 너무 고마워. 진짜 신기하다, 그지?”


아이는 때아닌 칭찬 세례에 어깨를 으쓱으쓱 하더니 이내 버섯을 발견하게 된 경위를 신나게 떠들었다. (처음에는 민들레 꽃씨를 따려고 어슬렁거렸는데 갑자기 개미 한 마리가 저쪽으로 기어가는 걸 보다가 새로 난 새싹이 있어서 그걸 따려고 했는데 그 옆에 이상한 게 있어서 처음에는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아닌 것 같아서…….)


아이의 조잘거림을 들으면서도, 나는 마음 한쪽에서 이 기이한 아침의 감각을 곱씹었다. 다시 한 번 이 발견의 기쁨을 나눠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는, 평범한 아침을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어준 그물망 버섯과의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신중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러느라 시계는 벌써 출근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지만 이미 지각에 대한 걱정은 저 멀리로 사라진 뒤였다.


어차피 대체 휴무도 쌓여 있고, 늦었다고 눈치주는 사람도 없다. 그동안 나는 뭐가 그리 바빴던 걸까. 습관처럼 서두르느라 또 다른 보물 같은 발견을 흘려보낸 건 아니었을까.


물론 중요한 업무상의 일정이 있는 날에는 서두르는 게 맞지만, 토요일 근무를 하고 난 뒤 하루만 쉬고 바로 나오는 월요일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날이었다. 오늘만큼은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잠시 미뤄두고 한 사람의 엄마로서, 아니 그 이전에 ‘버섯 팬클럽 (오늘부터 1일차) 회원’으로서 이 발견을 순수하게 축하하고 싶었다.


두 손을 꼭 잡고 유치원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쉴새 없이 버섯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가기 전에 꼭 다시 보자. 우리 둘 만의 비밀로 하자. 아니, 제일 친한 친구한테만 알려주자. 회사 친구들에게는 사진을 보여줘도 되지만, 어디서 찾았는지는 말해주지 말자, 같은.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이야기를.


버섯을 하나 찾았을 뿐인데, 우리 둘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날 찾은 버섯의 이름이 실은 그물망 버섯이 아니라 곰보 버섯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주문한 버섯 도감을 펼쳐본 뒤였다.


XL *엘리즈 그라벨 지음, 권지현 옮김, <버섯 팬클럽> (씨드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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