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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이 드는 숲 Jan 22. 2024

서른 하나, 내 몸 관찰기

"뇌를 비이커 속에 넣고 완전무결한 육체를 얻으시겠어요?"라고 묻는다면

 

  “AGI로 가는 기간은 짧지만 (기술적) 도약은 느리게 진행될 것”

   “Short timeline, slow takeoff”


   며칠 전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Chat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오픈 AI CEO)이 한 말이다. ‘AGI는 뭐지? AI는 아는데’라고 생각하며 관련 기사를 이어서 읽어나갔다. AGI는 인공일반지능으로 이름과 달리 무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 AI의 전 단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선까지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즘의 기술은 ‘에이, 가능하겠어?’하다가 어느 평온한 날 갑자기 일상을 바꿔 놓는다.


   “우리가 70세, 80세가 될 쯤에는 비이커 속 뇌에 주는 전기 자극만으로 건강한 육체를 갖고 평생 살게 될걸. 이미 그 환상 속에 살고 있을 수도 있어. 아니면 로봇으로 늙은 육체를 대체하거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매트릭스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의 대답은 항상 같다. 그때마다  나는 섬뜩하게 생긴 기술 앞에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지켜내는 히로인이 된 것처럼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러다 어느 날, 얼굴에 폼클렌징 거품을 얹으려는데 욕실 습기로 거울 속 내 모습은 윤곽만 남아있었다. 그 상태로 얼굴을 더듬으며 ‘전기 자극이 주는 환상으로 사는 세계라면, 지금 중지와 약지 끝으로 느껴지는 둥글한 코와 평평하게 귀까지 걸려있는 이 광대뼈는 한순간 다른 전기 자극으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 나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묻게 되었다.


   친구의 말처럼 내 손 끝에 느껴지는 이 육체는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고유성의 의미를 결국 상실할까? 물론, 전신 성형의 방법이 이미 있지만 전기 자극처럼 원할 때마다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지 않나. 고유성을 잃은 시대를 사는 것이 사실 나는 조금 두렵다.


   다행히도 내게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있다. 카뮈는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의 숙명이나 결국 인간은 그 의미에 닿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상 끝에서 떨어질 바위인 줄 알면서 온 힘을 다 해 바위를 정상으로 옮기는 시지프처럼 인간은 불굴의 의지로 세상에 던져진 이유를 찾으며 생을 채워 나간다고 한다. 시지프에게 의미는 신의 뜻 그런 것 보다 자신의 어깨와 손 끝에 밀려 올라가는 거친 바위의 감촉, 고르기 힘든 거친 숨결 그리고 정수리부터 복숭아 뼈까지 흐르는 땀의 뜨거운 감촉에 있을 것이다. 뿌연 거울 앞에선 채 중지와 약지에서 느낀 것이 현재 내가 최대로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나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그렇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삼십여 년 세월을 품고 있는 내 몸을 관찰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욕실이 아닌 방에 꼿꼿이 서 있는 전신거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어머니를 닮은 숱 많은 흙갈색 머리를 쓸어 올려 집게로 집어내니 껍질 깐 땅콩색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다. 오른쪽 사선으로 틀어 본 모습은, 완만한 곡선의 이마, 넓고 평평하게 귀까지 이어지는 광대뼈, 귓불에서 손가락 마디 하나 아래 난 각진 턱으로 입체적인 얼굴은 아니었지만 외할아버지를 닮아 동그란 눈에 진한 쌍꺼풀 그리고 친할아버지를 닮아 끝이 동그란 버선코가 전체적인 얼굴에 부피감을 주고 있었다. 아담한 눈썹뼈 위에는 아버지를 닮은 눈썹이 기개 있게 이마까지 뻗쳐 나갔는데, 재미있게도 이제 다섯 살인 조카가 본인의 눈썹뼈를 매만지며 “외할아버지 눈썹”이라고 말하곤 한다. 눈썹만큼이나 턱밑까지 넓게 난 구레나룻은 몇 번의 제모에도 옅어질 뿐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감추지 않고 잔머리털을 모두 귀 뒤로 넘기지만, 어릴 때는 내가 태아일 때부터 남자 이름을 지어 놓고 기다리신 친할아버지 때문에 내가 온전히 예쁜 여자 아이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 면도기를 몰래 빌려 퍼렇게 밀고 다녔다.


    턱선 아래로 적당한 길이의 목이 어깨로 퍼져 나갔고, 왼쪽 보다 오른쪽 승모근이 분명히 더 올라와 있다. 중학생 때 전교 1등 선물로 부모님께서 사주신 남색 가죽 브리프케이스를 몇 년 동안 오른쪽 어깨에만 메고 다녔는데 그 때문일까. 그 자신감 넘치고 행복했던 때의 흔적이라면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왼쪽 손 검지에는 항상 은색 11호 묵주반지를 끼고 다녀 반지 자국이 났고 두 번째 마디 주름에는 작은 갈색점이 숨어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를 따라 고운 글씨체를 갖고 싶은 마음만큼 항상 연필을 세게 쥐고 필기를 한 탓에 오른쪽 손 중지 첫마디에는 사라지지 않는 굳은살이 있다. 배는 아버지를 닮아 식사 전에는 홀쭉하다가 식사 후에는 올챙이 배가 된다. 적당한 길이의 다리에는 어려서부터 근육들이 잘 붙었는데 아마도 초등학생 때부터 온 가족이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며 오른 탓인 것 같다. 특히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조금 더 길고 굵은 듯한데 이는 아홉 살 때 거실에 묶어둔 개의 오줌에 미끄러져 식탁 다리에 왼쪽 정강이뼈가 두 동강 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께서 열 달을 품어 세상에 거꾸로 나오려고 했던 사고뭉치 때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의 고유한 세월은 뇌가 잊고 지낸 순간에도 한결 같이 육체가 품어 지켜주고 있었다. 몸을 관찰하며 타인과 나를 구별할 수 있는 많은 흔적들을 나열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 혁명이 내 육체에 모든 흠을 걷어내고 무결한 환상 속 육체를 준다고 하면, 이 울고 웃는 추억의 흔적을 품은 고유한 육체를 나는 포기할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는 미래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현재에서 닿는 정도의 시간의 바위를 성실히 시지프처럼 굴려 나갈 뿐이다.   


   끝맺으며,

   인간이 화가 나는 대부분의 이유는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결핍을 개선할 수 있음에도 실행하지 않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거운 돌덩이 같은 내 의지를 굴려 가벼운 산책과 건강한 요리로 스스로를 정성스럽게 돌보아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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