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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이 드는 숲 Mar 31. 2024

비대칭으로 그려진 눈썹을 그냥 두었다.

   온몸으로 봄을 맞이하듯 환절기 감기로 한 주를 꼬박 앓았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서 욕실로 가는 길 짧게 몇 단어 뱉어 보니 코맹맹이 소리는 났지만 다행히 열은 내려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지난 며칠 감지 못한 머리카락 사이로 온수가 타고 흘렀다. 순간 책상 위 마른 목을 길게 빼고 있던 아스파라거스 나무가 떠올라 젖은 머리를 대충 짜서 틀어 올리고는 젖은 까치발 흔적을 남기며 방에서 화분을 안고 다시 욕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틈틈이 물기 가득한 나무를 흡족스럽게 바라보며 마저 의식은 진행되었고 주변의 선명했던 것들은 점점 수증기로 흐려졌다.  

   검은 도스 창에 '오늘은 멋지게 보내보자'라는 조건을 걸고 엔터를 친 것처럼 그 이후는 불가항력적으로 수많은 계획 값들이 줄지어 내 머릿속을 빼곡히 채워갔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었다. 볼에 난 뾰루지를 피해 선스크린 다음 파운데이션을 차례로 바르며 '욕실에서의 미션'은 거의 완성되어갔다. 거울 앞에는 입력 값에 맞게 끝이 살짝 말린 긴 머리에, 분홍 카디건과 비슷한 혈색으로 발그레한 볼타지를 한 모습이 있었다. 임무를 완료한 요원처럼 미련 없이 욕실을 나서려는 찰나 미묘하게 다른 양쪽 눈썹이 눈에 띄었다. 그제야 한쪽만 뚫린 코로 요란스럽게 드나드는 숨소리 또한 의식하게 되었다. 살짝 내려온 오른쪽 눈썹 끝을 검지로 지우려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하였다. 비염 스프레이도 쓰지 않고 그대로 비대칭인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내 머릿속 도스창에는 새로운 입력 값이 필요했지만 그마저도 어긋난 계획들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오늘은 멋지게 보내보자'라는 내 조건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노트북 하나를 들고 삐뚠 눈썹과 숨소리로 당차게 밖을 나섰다. 한 주 꼬박 앓아내고 맞이한 만큼 따스하고 포근한 봄이었다. 조용한 카페 한쪽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작하는 말만 떠올린 채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의 수미상관 짜임새는 지성의 계획이 아닌 본능에 가깝길 바라면서.

   창문 양쪽 끝으로 사람이 생겼다 사라지는 풍경을 한참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는 내게 큰 사건이었다. 혼자 카페에 간다는 것은 조용히 앉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일상의 그늘에 가려졌던 내면의 감정과 욕구에 광도와 채도를 높이는 중요한 의식에 대한 의지였다. 미지근한 냄비를 맨손으로 무덤덤하게 잡고 옮기듯 더 이상 내가 품고 있는 감정과 욕구의 온도가 들여다봐야 할 만큼 뜨겁지 않아서도 있고, 미각을 잃고 팔 첩 반상 앞에 앉은 듯 그 감정과 욕구에 대한 입맛이 없어진 탓도 있다. 이는 무언가를 열렬하게 좇아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치열하게 내 미래를 위해 전재산을 걸고 미국에 가서 하루에 세 시간도 못 자며 자격증을 취득해 돌아와 봤고, 순열하게 가진 것 없는 사람을 마음 하나로 사랑해 보았다. 어디가 어설펐을까. 그 열렬의 끝은 허무를 남겼고 나는 현재 그 공허함을 삶의 근본 자체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꺼진 노트북 검은 화면으로 나의 여전히 삐뚠 눈썹이 비쳤고, 나는 콱 막혀 버린 한쪽 코 대신 반대쪽으로 더 큰 숨을 몰아쉬며 비장하게 다시 키보드를 눌러 글 쓰는 화면을 불러왔다. 바랐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졌다면 그것은 바람과 상관없이 내게 올 것이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 도스창을 지우기로 마음먹었다. 행복을 도출해 내기 위한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입력값은 넣지 않기로. 그저 생각보다 삐뚤 하고, 불편하고, 부족한 듯한 것들에 호들갑 떨지 않고 무뎌지길, 뜻밖에 작은 기쁨이 찾아왔을 때 두 광대를 힘껏 올려 웃어내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내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듯, 안간힘 써도 마음과 현실의 비대칭은 부정할 수 없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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