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사람들 3 화
올해 초, 안타까운 사건을 뉴스에서 보았다. 캄보디아로 의료 봉사를 간 의료 공과 대학 학생 두 명이 사망하였다는 보도였다. 젊은이들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으니 그 가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좋은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젊음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 않겠는가?
이 사건을 보니 27년 전 이 세상을 떠난 친구가 떠오른다. 친구는 그 당시 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2년 차였다. 그리고 1992년 8월에 네팔로 떠나는 태국 항공이 이상기류에 휘말리면서 산악지대에 추락했는데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연세 대학교 의과 대학은 당시 네팔의 돌카 병원에 선교 및 의료 봉사 목적으로 파견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친구는 사실 그 해에 파견을 갈 순번이 아니었지만 신혼인 동료가 파견을 가게 되자 본인이 가겠다고 하고 순번을 바꾸어 주었다고 했다.
친구와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친구의 아버님은 고향에서 내과의원을 하시는 분으로 전문의를 받으신 후 서울에서 개원하여 편하게 돈도 버실 수 있으셨을 텐데 당신의 고향에서 개원하시고 환자분들을 진료하셨다. 그래서 친구는 그야말로 유학을 하게 된 셈인데 나와는 한 동네에 살았기에 서로 학교에서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는 사이였다.
부모님을 닮아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종교적으로도 독실한 신자여서 늘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친구였다. 의사 국가고시 직전에는 공부를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살핀다고 일부러 그 친구와 공부를 같이 하는 등 그야말로 삶이 봉사였던 친구였다.
어느 날 일요일 오후, 친구가 네팔로 떠나기 며칠 전으로 기억한다. 서로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니 연락도 잘 못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 안녕, 오랜만이지?”
“ 어? 오랜만이네. 잘 지내고?”
“ 응, 너도? 사실은 나 네팔로 떠나 다음 주에.. 그래서 얼굴 좀 보자? 다른 친구들도 우리 집에 와 있거든...”
“에구, 어째... 오늘 우리 아버지 생신이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날이 아버지 생신이어서 난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그 친구는 네팔로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학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 놀라지 말어. OO 이가 이 세상에 없단다..”
“ 무슨 소리야? 네팔로 봉사 갔잖아?”
“네팔로 가는 비행기가 추락했데.. OO가 타고 있던.. 시신도 못 찾았다고 해..”
전화한 친구나 나나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냥 같이 목 놓아 울었다.
얼마 후 연세대학교 학교장으로 친구의 장례식이 진행된다고 하여 친구들과 그 식장에 참석하였다. 넓은 강당에 대학 및 병원 관계자 분들과 사옥이의 가족 분들,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많은 대학 친구들이 모였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장례식 내내 모두 울고 만 있었다.
나중에 가족 분들이 무대에 서 계시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가족 분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막내의 시신도 찾지 못했으니 부모님들은 더욱 슬프셨을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지금보다도 더 미숙하고 어렸기에 친구의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몰랐다. 아마도 우물쭈물하면서 말씀도 제대로 못 드렸는지 이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친구의 언니가 남아있는 유품 속 일기에서 나의 이름을 많이 보았다며 참석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 후 내 꿈에 친구가 자주 등장했다. 주로 대학 시절 즐겁게 같이 지내던 일들의 회상처럼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내 꿈에 나오곤 했다. 한 십 년 이상 내 꿈에 나오더니 이제는 더 이상 꿈속에서도 그녀를 볼 수 없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친구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또렷한데...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고 특히 글 쓰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오래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 환갑이 다가오면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제야 끄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친구를 잃고 나서 내 꿈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그녀의 남겨진 꿈을 나도 꾸어보리라고.. 마취과 의사라 의료봉사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과거 세월 호 사건 때 진도 체육관에서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러나 무언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지금도 친구의 이름과 얼굴이 생생하지만 친구가 이 세상에 잊혀 갈 것 같아 두렵다.
‘ 홍 사 옥 ’
나는 그녀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제대로 사랑한 가장 존경하는 친구의 이름을 오늘도 떠올려 본다.
제목: Christ carrying the cross (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품, 1580, 미국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소장)
베네치아 학파를 기초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표현했던 작가로 길쭉하게 왜곡된 형태, 독특한 공간 배치, 강한 영성적 표현을 했던 작가이다. 신앙의 내용을 설명하는 종교화라기보다는 시각적으로 신앙을 키워 기도할 때 도움이 되도록 의도하였다. 이 작품의 진미는 그리스도의 물기 먹은 눈으로 인간적인 고통을 표현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출처: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