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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벼처럼

 - 아름다운 사람들 2 화

 가을 들판에 영근 벼 이삭의 무게를 견지지 못하고 고개 숙인 황금색 벼들을 보고 있자면 속담의 위대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얼마나 이치에 맞는 말인가? 우리 삶 속에서도 얼마나 맞는 말인가? 새삼 느껴질 때가 있다.   

  

 수술실에는 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청정 지역인 수술실 환경을 유지하는데 애쓰시는 미화 담당 직원분들이 계신다. 그분들 중 올해 수술실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남자 직원 두 분이 연세 때문에 그만두시게 되었다. 보통 이런 분들은 용역 업체 소속인데 병실 보호자 중 한 분이 너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청소하시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나타내면서 정년이 70세로 정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 수술실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연세가 힘든 일을 하시기에는 참으로 연세가 들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은 그야말로 성실히 즐겁게 근무해 오셨고 항상 연세가 많으신데도 그분들 보시기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전공의나 간호사들에게 머리를 깊이 숙여 먼저 인사를 하신다. 


 사실 나는 인사성이 밝은 사람이 아니다. 낯가림도 심하고 사회적이지 못한 성격 탓에 대충 고개를 숙이는 정도로 인사하는 사람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직원분들과 마주치게 되면 마주칠 때마다 먼저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시니 나 또한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배울 게 많은 우리 전공의들에게 정말로 귀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세로 그만두시게 되어 안타깝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일개의 봉직의는 아무쪼록 일을 그만두신 뒤에도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해 드리는 길밖에는 없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크게 마취를 전담하는 마취 전담의 와 통증을 전담하는 통증 전담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마취 전담의는 주로 수술과 관련한 마취만을 담당하며 통증 전담의는 수술을 포함한 급성 통증, 암 통증을 포함한 만성 통증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그러다 보니 마취 전담의는 수술실에서만 근무하고 통증 전담의는 외래 진료실에서 주로 근무하시고 가끔 방사선 촬영을 하면서 시술을 해야 하는 경우에만 수술실에 들어오신다. 


우리 병원의 통증 클리닉도 수술실 밖에 있어 외래에서 진료를 본 환자 중 수술실에서 시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 수술실로 옮겨진다. 그런데 우리 병원 통증을 전담하시는 과장님께서는 친절한 의사로 소문이 나셨다. 환갑이 넘으신 나이이신데도 시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이동한 환자분들을 일일이 이송 시 당신이 직접 챙기시니 환자분들이 좋아할 수밖에.. 외래에서 진료 보실 때도 친절하게 말씀하시니 환자분들이 친절한 의사로 인정하여 작년에는 병원에서 친절상을 받으셨다.     


  내가 전공의였던 그러니까 30년 전. 그 시절엔 의료진에게 친절이란 필요한 덕목이 아니었다. 지금은 친절이 필수이고 친절 교육도 주기적으로 받지만 그 시절에는 그냥 업무에 충실한 것이 중요했고 의료진이 갑, 환자분들이 을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파랗게 젊은 전공의들이 나이 드신 분들에게 반말도 섞어 말하고 그랬던 것 같다. " 할머니... 그러니까.. 내 말은요....라고 했잖아..." 뭐 이런 식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상황도 있었다. 과거에는 마취약제들이 환자들의 몸에서 배출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긴 약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술이 끝나도 마취에서 환자분이 깨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약제들이 좋아져서 수술 후 3-4분이 지나면 환자분들이 마취에서 깨어나지만 그 당시의 약제로는 15-20 분 정도가 되어야 환자분들의 의식이 명확하게 돌아오곤 했다. 그러니 환자분들을 깨우는데 소위 말해서 여러 가지 자극을 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흔한 예로는 환자분의 수술부위를 눌러 통증을 느끼게 하거나 아픈 자극을 준다고 환자분의 유두(nipple) 부위를 비트는 등의 잔인한 행동들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했던 것 같다. 과장님들이나 선임 전공의들이 하는 행동을 배워하는 행동들이었으니 그 행위는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떠도는 이야기로는 할머니 환자분을 마취에서 깨운다고 전공의가 할머니 유두를 심하게 비틀다가 그 유두가 떨어진 사례도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떠돌았다. 


 더구나 마취로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대하는 말투도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리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그런 말들을 생각 없이 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마취 시에 유체이탈이라도 한 환자분이 들으셨다면 격노하거나 통곡할 그런 이야기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시대는 변천하였다.    


 이제 우리는 환자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까 고심한다. 어떻게 하면 불편함이 덜할까 궁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마취 전 병실에서 수술에 필요하다며 위 배액관이나 소변줄을 삽입하고 수술실로 왔다. 그러나 이제는 마취 후에 이러한 환자분들에게 삽입 과정이 불편한 관들을 삽입한다. 금식도 과거에는 수술 후 장에서 가스가 나온 후 풀렸으나 요즘에는 가능한 금식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의료진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의료란 서비스 업종이라는 개념으로 어떻게 하면 환자분들의 불편을 줄이고 서비스를 개선할까 고심하는 분위기로 바뀐 지 오래다. 당연히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졌다. 연세 드신 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로 호명되지 않고 어르신, 아버님, 어머님으로 바뀌었고 젊은 분들에게는 ㅇㅇ님이라고 부르고 항상 존댓말로 일관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부분에 무감각한 전공의들이 있다. 아직도 환자분들에게 반말을 섞어 쓰는... 주로 일상이 바쁜 젊은 인턴이나 전공의 1년 차들이 주로 이런 오류를 범한다.     


 몇 년 전 마취과를 하고 싶어 하던 젊은 여자 인턴 선생님이 있었다. 일도 잘하고 활달한 성격에 나무랄 데가 별로 없는 인턴 선생님이었다. 마취과를 지원한다기에 평소에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술실에서 할머니 환자분을 이송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반말이 섞인 말을 할머니 환자분에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후 그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지 못했고 나의 생각이 대부분의 다른 전문의들과 비슷하여 결국 그 선생님은 우리 과에 지원하지 못했다.   

  

 전공의 선생님들의 일상은 고달프다. 하는 일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다. 때로는 전공의 숫자보다 과장님 수가 많고 그 과장님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니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에게 지적받는 건 주로 환자분들에게 대하는 태도이다. 환자분들이 의식이 없더라도 불손하거나 아니면 무리하게 아픔을 주어 환자분을 억지로 각성시키는 태도는 나에게 걸렸다간 큰일이 난다는 사실을 우리 전공의 선생님들은 잘 알고 있다.


 일 잘하는 전공의보다 예의 바르고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고 환자를 그냥 환자가 아닌 한 인간,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귀한 존재임을 항상 인식하고 대하는 전공의가 우리가 수련시키고자 바라는 전공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공의 시절에 잘 알지 못했던 것을 이들이 다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나도 그 시절 많은 실수와 오류를 범했기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님을 수술장에서 대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머리가 하얗고 조그마한 할머니는 친정어머니를 연상시키고 꼬챙이처럼 마르시고 강단이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를 뵈면 아버님이 떠오른다. 10대 후반 아이들을 보면 천방지축 우리 집 아이들이 생각나고 아가들을 보면 조카 손주가 떠오르고 60대를 보면 언니 형부가 생각나고 2-30대를 보면 조카가 떠오르고... 모두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분들인지라 가족을 만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그런 분들을 접하게 되면 당연히 친절해지고 잘해드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나의 동료들도 나이가 들수록 친절해지는 것 같고 나의 선배들은 우리보다 더 환자분들에게 고개 숙이고 친절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젊었던 시절에 그리 땍땍거리시던 외과 과장님도 정년 즈음되셨을 때는 얼마나 부드러워지셨던가...    

 논에 고개 숙인 벼들도 저절로 그리 되었듯 인생 속 크고 작은 이삭들이 영글면서 우리도 저절로 고개 숙인 의사들이 되어가나 보다.                



제목: 벼 타작 (단원 김홍도 작품, 18세기 후반,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화가인 김홍도가 30대 후반에 그린 단원 풍속화첩 중 하나이다. 풍속 화첩은 배경은 생략하고 소묘풍의 약간의 담채를 가해 종이에 그린 것으로 본격적인 풍속 그림이라기보다는 풍속화 스케치북이라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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