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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Jan 03. 2019

스물 둘, 여행의 순간

토파즈 빛의 바다와 주황 지붕의 나라를 건너


 내 옆에는 노트북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창밖을 보고 있는 꼬마아이가 있다. 나는 물 한 잔을 옆에 두고 흔들리는 비행기의 몸통 안에서 글을 쓴다. 창밖을 보던 남자아이가 지루한지 파란 선반 위로 엎드려 눈을 감았다. 곧 일어나겠지. 지금 이 순간 말고도 떠올려보면 수많은 장면들이 생생하게 스쳐지나간다. 노란 팻말, Usita 라고 새겨진 출구표시. 긴장한 눈으로 바라봤던 이탈리아 사철 안의 부산한 풍경. 키가 크고 눈이 큰 사람들. 커피 자국이 진하게 남은 카푸치노 잔들. 크로아티아로 향하던 페리 안 영화에나 나올법한 리셉션의 직원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선실. 나를 보고 웃으며 지나치던 상냥한 사람들. 바닷가를 거닐던 노부부. 성 동쪽문 청과물시장 5쿠나 짜리 과일을 권하던 할아버지. 나폴리 중앙역 기차 출입문이 열리고 Bye-bye하고 인사하며 내리던 프랑스 꼬마아이. 건물과 건물 사이 춤을 추듯 널려있던 빨래가지들. 수백 개의 장면들이 남았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이 추억이라 부를 만한 장면들을 어디에 넣어두고 지내야 할까. 여행의 순간들이 하루하루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처럼, 돌아간 후의 나의 일상 속에서도 매일매일 다른 의미로 기억되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급했고 때로는 여유로웠으며, 불안이 곧 설렘이고 행복이었던 특별한 시간들. 몹시 그리워질 것 같은 공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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