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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Jun 28. 2020

여원의 작사 :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의 작사 3주 차

장마가 시작된 지난 수요일.

3주 차 수업에서 같이 얘기할 숙제를 선생님께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오그라들어요 쌤..흑흑"


숙제는 지난주에 내가 쓴 글을 절(A part), 이음 절(B part), 후렴구(C part) 등으로 파트를 나눠 행 단위로 써오는 것이었는데 너무 느끼한 사랑노래 같아서 부끄러웠다. 글일 때는 마침표로 끝나는 덕에 약간은 담백했던 것도 같은데. 시처럼 행으로 끊어보니 왜 이렇게 오그라드는 건지...


이번 수업은 행 단계의 숙제를 같이 읽고, 어투나 내용에 대해서 자유롭게 첨삭해주는 시간이었다.

예를 들면, 내 A-B part의 첨삭 전 모양은 이랬다.


A
이제 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디자이너 소설가 어린 날의 꿈을 지나
평범한 네모의 요일을 살아가네
B
어른이 된 내 세상은 점점 작아져만가
꿈을 꾸다 우린 결국 멀어질까


B의 두 번째 행은 영화 <라라 랜드>를 보고 내가

“우리도 각자 꿈을 꾸다가 멀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려 적은 내용이었다.

지난주 과제 시점에는 글에 이런 전후 설명이 있었는데 앞뒤를 다 자르고 행들만 남기고 나니, 뭔가 의미 전달이 애매한 느낌이었다. 수강생분들과 선생님이 조언해주신 걸 참고해서 "꿈을 꾸다"를 "꿈을 꾸면"으로 조사를 바꾸고 행순서도 수정했다.


A
디자이너 소설가 어린 날의 꿈을 지나
평범한 네모의 요일을 살아가네
이제 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B
꿈을 꾸면 우린 결국 멀어질까
어른이 된 내 세상은 점점 작아져만가


조금 더 율동감이 생긴 것 같은 느낌. 다른 파트도 수정하면서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같은 내용 안에서 행의 순서만 바꿔도 느낌이 달라졌다. 선생님은 가사의 구성요소가 똑같아도 어떤 순서로 나열하느냐에 따라 마지막에 "의미가 맺히느냐 안 맺히느냐"가 달라진다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시 말해 가사 쓰기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순서를 잘 조합하는 기술이기도 하다는 것.

또 생략과 집중이 필요하다. 길게 줄글로 썼던 것을 행으로 나누니 아무리 줄여도 가사 치고는 분량이 많아 보였다. 다른 수강생분의 과제를 같이 보면서 선생님이 가사가 되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을 골라주고, 서브행으로 빠지거나 없어도 될 것 같은 부분도 얘기해주셨다. 그러면서 "어떤 내용을 지키고 싶으냐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했다. 결국 노래가 되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게 생략하다 보면 뭔 말인지 모를 것 같은데 가사라는 게 진짜 신기해서 꼭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정서만 통하면 납득이 된다. 선생님은 오히려 너무 친절한 가사보다는 '이게 뭔 뜻이지?' 싶은데 노래랑 같이 듣다 보면 이해가 되고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조금은 “불친절한” 가사가 재밌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예로 들자면, 브라운아이드소울의 <그대의 밤, 나의 아침>의 후렴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대의 밤을 이제 내 아침이 맞이해요
나의 허전했던 많은 날에 기쁨이 돼줘요
그대의 마음속에 늘 내가 있어 줄게요
사랑을 고백한 지금의 이 마음 그대로      


“그대의 밤을 이제 내 아침이 맞이해요”

이 가사를 듣고 나는 '이게 무슨 말이지?' 싶었다.

'여자친구가 교환학생을 가서 시차가 있나?'

'여기는 아침인데 저기는 밤인가?'

'같이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이 샘솟았는데 이해가 되고 안 되고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노래가 너무 좋았다.

멜로디와 가사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시점의 마음, 그 정서가 잔잔히 흐르면서 그냥 모든 게 납득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절절한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보컬의 음색도 한몫, 아니 한 일곱 몫 정도 했다.


가사라는 거 오묘하다. 글 쓰는 것과는 또 다르게 어렵고 또 다르게 재밌다.

다음 숙제는 멜로디가 될 레퍼런스 음악을 찾고 지금까지 만든 행을 다듬어 좀 더 정리된 가사 쓰기.

빨리 숙제해야겠다. 벌써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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