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보이지 않는 길을 걷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관이 학교 뒷길 북촌에 있어서 대학생 때도 오며가며 지나쳤는데, 언젠가 가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와보게 됐다.
총 8명이 한 팀이 되어 90분간 로드마스터를 따라 여행을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은 캄캄한 어둠이다. 여러 소리와 소재들을 느끼며 여러 장소를 지난다. 물론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에 내가 큰 호수라고 생각한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상상의 세계다.
어둠 속에서 우리 일행은 금방 돈독해졌다. 모르는 사람들과 의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불러주며 안내한다. 오로지 목소리 하나를 따라서 한걸음씩 내딛으며 나에게 집중하게 됐다. 보이는 곳에서라면 들리고 만지는 것이 부기능이지만, 이곳에서는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양말 더미에서 똑같은 양말 한 쌍을 찾는 것도 ‘미션’이 되는, 시각을 배제한 감각의 세계.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두려웠는데, 마칠 때가 되자 다시 무언가 봐야만 한다는게 아쉬워질 정도로 어둠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로드마스터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미각은 10%만 사용한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도 무엇을 보고 누구와 함께 어떤 분위기 속에서 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기억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나니 나의 모든 감각에 대해, 내가 듣고 보고 맡고 만지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른 세상에 있다 온 기분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깨워준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상관이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의 결부터 향기와 소리의 원근까지 생생하게 감각이 깨어났다. 한편으로는, 이 전시는 결국 끝날 것이고 나는 빛 속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즐거운 경험을 했지만 과연 이 전시가 끝나지 않는다면 어떨까. 눈을 감으나 뜨나 어둠인 곳이 나의 유일한 세계가 된다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본 건 하나도 없는데 너무 많은 것을 감각할 수 있었던 전시. 로드마스터는 어둠 속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다. 그게 이 전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우리는 일단 외모로 너무 많은 평가를 순식간에 하니까, 눈이 너무 빨라서 놓쳐버리는 감각이 얼마나 많을까. 오늘은 한번 하루를 온전히 느껴보기로 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시리면 시린대로 나에게 주어진 감각을 하나하나 더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