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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 Aug 30. 2020

프라이드 토론토 (Pride Toronto)

LGBT2Q+와 이성애 중심주의

매년 여름 토론토에서는 프라이드 토론토라 불리는 큰 규모의 LGBT2Q+ 퍼레이드가 개최된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2 spirits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용어), 퀴어 등을 아우르는 대규모 행진이다. 독특하게 치장한 참가자들과 공연 등 볼거리들이 풍성하다. 드랙킹, 드랙퀸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신나는 음악과 활기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꽤 근사하다.

 

여러 종교단체를 포함하여 다양한 지역공동체와 NGO에 소속한 이들이 재미난 치장을 하고 나름의 구호를 만들어 행진을 한다. 몰려드는 인파를 정리하기 위해 경찰들이 안내를 하는 건 기본이다. 공식 행진이 끝나도 게이 빌리지를 따라 노래공연과 춤판이 밤늦게까지 벌어진다. 신나게 어우러져 땀범벅이 되도록 놀고 나면, 다양한 먹거리 부스들이 마련된 곳을 기웃거리다 배를 채우고 또다시 그 축제를 즐기면 된다.


장난스러운 물총 세례와 함께 콘돔, 사탕, 자석제품, 꽃, 풍선, 펜, 무지개 깃발, 티셔츠 등을 무료로 받는 재미도 있다. 한편, 이 행사의 펀딩을 제공하는 다국적 기업들이나 규모가 큰 회사들은 기념품에 로고를 부착하거나, 노골적으로 회사의 심벌을 들고 나와 LGBT2Q+ 퍼레이드를 마치 상업적 광고판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매년 한국에서 행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달리, 토론토 퍼레이드는 대표적 (관광) 상품이 된 지 오래이다. 오직 이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과 지역민들의 소비가 다운타운의 매출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작년 같은 경우, 100만여 명이 참가했으니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한마디로 성정체성에 대한 인정투쟁과 함께 자본이 또 다른 기회를 엿보는 중층의 장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겠다.   


이 큰 행사 하루 전에 열리는 레즈비언들의 행진은 그런 면에서 비교가 된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레즈비언들의 행진 (Dyke March)은 급진적 구호와 비판적 아젠다를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들은 다국적 기업의 끼어들기에 불편함을 보이며, 비록 펀딩이 풍족치 않아 그만큼 볼거리 제공이 적어도 신경 쓰지 않는 쿨함을 보인다. 펀딩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도 있을 터이다. 배부름을 모르는 자본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요즘, 그들의 접근법이 신선하다. 뭐랄까, "오, 살아있네!"를 외치고 싶은 명랑함을 선사해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올해는 코비드-19 팬데믹의 영향으로 행사가 취소되어 무척이나 아쉽다. 주최측은 온라인으로 행사를 대신했는데, 올해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반대 선언을 더 강조했다. 물론 캐나다의 퀴어 공동체는 유색인종 퀴어들을 차별하고 등한시한 역사가 있기에, 교차성 여성주의의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모양새를 취하긴 한다.   


캐나다는 2005년 세계에서 4번째로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했다. 물론, 합법화와는 별개로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컨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70%가 차별을 경험했고, 36%가 학교에서 물리적 폭력 경험을 경험했으며 69% 정도가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 (2016년 통계). 2011년 연구에 따르면,  33%의 레즈비언 청소년들과 40%의 게이 청소년들 역시 학교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 (Taylor et al. 2011). 그로 인한 정신건강의 문제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쥬디 버틀러는 젠더(gender)가 아닌 생물학적 섹스(sex)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급진적 주장을 한다. 비록 그녀만큼은 아닐지라도, 성 정체성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 킨제이의 성 정체성 척도를 상기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1948년과 1953년에 발간된 "킨제이 리포트"는 척도 0에서 척도 6, 그리고 X를 설명하고 있다.

(https://kinseyinstitute.org/research/publications/kinsey-scale.php)

0: 오직 이성애적

1: 주로 이성애적이지만, 우발적으로 동성애적

2: 주로 이성애적이지만, 우발적인 경우보다는 더 동성애적

3. 이성애적이면서 동시에 동성애적 (50 대 50)

4. 주로 동성애적이지만, 우발적인 경우보다는 더 이성애적

5. 주로 동성애적이지만, 우발적으로 이성애적

6. 오직 동성애적

X:  사회적-성적 접촉이 없거나, 무반응


무성애자나 트랜스젠더와 같은 다른 성적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집한 데이터에 근거하지만, 인간의 성적 행동에 대한 최초의 시도로 알려져 있다. 척도 0나 6에 안정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척도에 걸쳐져 있는 다수인의 존재를 지적한 신선한 발상이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는 그 중간을 상상하거나 인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성애 중심주의자들은 동성애자들을 향해 때때로 무례한 질문들을 던지기도 한다. Wittig (1992)는 이성애자들이 눈치 없이 (혹은 무지해서) 동성애자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역전시켜 아래의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중 몇 개만 옮겨 적는다. 괄호안의 내용은 내가 편의대로 덧붙인 것들이다.  


1. 도대체 무엇이 이성애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도대체 무엇이 동성애 원인이지?)

2. 언제, 그리고 어떻게 스스로가 이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따르게 되었나요?(넌 언제 동성애자라는 걸 알게 되었어?)

3. 당신이 주장하는 이성애 성향은, 혹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스쳐가는 일시적 단계이지 않을까요?(그냥 지금 잠깐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4. 이성과 한 번도 잠자리를 안 해봤는데, 어떻게 본인이 이성애자라고 알 수 있나요? (동성인 사람과 자봤어? 자보지도 않고, 어떻게 네가 동성애자인 줄 알아?)

4. 당신 부모님은 당신이 이성애자인 걸 알고 있나요? 친구들은요? 다들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너네 엄마, 아빠가 너 동성애자인 거 알아? 친구들도 알아? 뭐라고 해?)

5. 아동 성애자 대다수가 이성애자인데, 아이들을 이성애자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게 하는 것이 과연 안전할까요? (동성애자들은 변태야. 그런 사람들이 선생이라면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겠어?)

6. 당신이 이성애자라면, 어떻게 전인적 인간이 될 수 있어요? (너 동성애자면서, 어떻게 전인적 인간이 될 수 있어? 어디가 모자란 거지)

7. 이성애자가 되는 게 어떤 문제를 직면하게 되는지 알면서도, 당신 아이가 이성애자가 되길 원하나요? (동성애하면 큰일 나. 그런데도 네 아이가 동성애자가 되길 바라?)


만일, 이성애자가 저런 질문들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황당한 질문이며, 어리석다고 생각하거나, 화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저 질문들은 이성애자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가치관에 대해 겸허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동기를 준다. 이성애 특권에 대해 돌아보고 성적 소수자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느끼도록, 역지사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 사회에서 용인되는 정상성은 무엇이며, 그 정상성을 뒷받침하는 가치와 신념이 절대적일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성이 누구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반대로 누군가를 억압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부조리는 소수자만이 아닌 전체 구성원들이 어떤 방식으로던 대가를 치르게 되며 그 대가는 사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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