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들의 시 읽기 공부 열정은 식지 않았다. 사정상 오후 4시의 미팅을 6시로 바꾼다던가 하는 변화가 몇 번 있었지만, 우리는 꾸준히 일주일에 한 번씩 화상 미팅을 해 오고 있다. 시를 읽기 전 우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서울에 있는 나의 가족이라든가, 동네 산책을 나갔을 때 생긴 일이라든가, 생일에 무엇을 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며칠 전 읽은 리하 작가님(https://brunch.co.kr/@yeon0517/175)의 "존넨쉬름 (독일어로 양산이란 의미)" 농담을 독일어가 모국어인 시아버지께 물어볼 요양이었다. 양산이란 의미의 독일어 발음이 "진짜 싫다"는 욕같은 우리말 발음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시작 전 남편에게 미리 언질을 해 놓은 상태였기에, 남편도 짐짓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오늘 두 분께 농담 하나 해 드릴게요!"
남편: "한여름에 아빠처럼 대머리인 사람들은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뭐가 필요해요? 하하하.. 독일어로 뭐라고 그래요?"
시아버지: (웃으시며) "모자를 말하는 거니?" 그리곤, 멋쩍은 듯 머리 위에 손을 대신다.
남편: "모자 말고~"
나: "왜 있잖아요, 우산같이 생긴"
시아버지: "오, $&*$%!@^# 존넨쉬름 #$%&!$%^^&"
남편과 나: "으하하하하하하, 맞네 맞아! 으하하하하, 아이고 배꼽이야!"
너무 웃긴 바람에,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화면 밖으로 튕겨나갈 정도로 몸을 휘저었다. 멀뚱히 미소만 짓고 계신 두 분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자, 더불어 크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내가 다시 물었다.
나: "어머니, 어머니 학생 중에 한국에서 유학 온 재밌는 아이가 있었잖아요. 그 학생의 영어 이름 기억나시죠? 영어 이름이 존(John), 성은 나(Na). 그래서 존나라고. 크큭."
모두들: "하하하하, 맞다. 기억나."
나: "존넨쉬름의 존과 그 학생 이름 존나의 존이 같은 뜻이잖아요. 하하하하"
시어머니: "그렇구나! 하하하하하"
남편: "오늘 한국어 단어 하나 더 배우셨네요. 나중에 함 써보세요. 존넨쉬름~ 하하하하"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크게 웃고 나니, 시작부터 에너지가 업되었다. 코비드 때문에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못해 굳어진 얼굴근육이 확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다시 분위기를 잡고, 찬찬히 오늘의 시 "아메리카 타임지"를 읽어나갔다. 남편의 최애 시인인 김수영 시인이 1947년, 그러니까 미군정 시절에 쓴 시이다. 나는 그의 시 중, 국밥집에서 밥을 먹으며 기름덩어리만 준 여주인에게 욕을 하고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며 한탄하는 시구만을 겨우 기억할 뿐이었다. 김수영의 또 다른 시를 알게 되어 좋았다.
당시 일본에서 미국으로의 권력이동과 더불어, 한반도의 불안정한 기운을 느끼는 김수영의 비애 같은 것이 시 전체에 담겨있다. 특히, "와사(=gas)의 정치가여, 너는 활자처럼 고웁다"라는 문장이 핵심으로 느껴졌다. 전후 석유 자원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며, 석유를 둘러싸고 더 심각하게 벌어질 국제적 분쟁과 그 분쟁을 선동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한없이 긴 활자의 연속을 보고, 와사의 정치가들을 응시"하면서, 역사가 그러한 사실들의 목격자가 되리라 말하는 듯하다.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활자(=대중매체)를 통해 매끄럽게 포장되는("고운") 정치선동이 있지만, 결국 그것은 기록으로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다.
김수영의 시는 섬세하고 예리하다. 힘을 주기도 하지만, 차갑고 비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를 읽는 우리는 김수영 시인의 날카로운 지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단어를 익힌다.
"물결처럼"의 "처럼 (~like)"을 설명하던 남편은 예외 없이 농담을 던진다. 한국 소주 "처음처럼"을 소개하고, 몸을 베베 꼬며 여성 모델을 흉내 낸다. 깍지 않은 수염이 길게 자란 얼굴로, 여성의 목소리도 흉내 내며 "처음처럼~"을 외치고 건배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아이고! 아무리 젠더는 수행성 (gender performance)으로 구성된다고 하지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연기다. 그 장면에서, 어머니는 암기하기 쉽게,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부르신다. 그들은 같은 가족이 맞는 것이다.
"찾았던 것이"의 "던"은 과거를 회상할 때 사용한다는 설명에, 어머니는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이 되는지 갑자기 궁금하다고 하신다. 훌륭한 질문이지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관계로 나중에 찾아보자고 얼버무렸다.
"사과"와 "능금"의 차이도 물어보신다. 과일가게에 가서 "애플"을 달라고 할 때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남편은 능금은 순수 한국어이지만, 한자표기어인"사과"를 사용해야 한다고 답한다. (오호! 나는 그 반대로 능금이 한자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도 나의 무지를 깨닫는다, 훌쩍). 그리고, 한국어로 "능금주세요" 하면, 혹 순수 한국어를 신봉하는 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고 추측성 발언을 던진다. 과일가게에서 능금주세요라니, 상상해보니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온다.
남편은 "가다듬으면서"의 ~"으면서"는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할 때 종종 쓰인다며, "걸으면서 커피를 마셔요"라는 예문을 제시한다. 하지만, "가면서"와 "가다가"의 차이를 덧붙여 어머니를 더 헛갈리게 만든다.
게다가 "바위를 문다"에서는 세 가지 동사의 예를 통해,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1) 문다(to bite)/물었다, 2) 묻다(to ask)/물었다, 그리고 3) 묻다(to bury)/묻었다"를 채팅창에 적는다. 옆에서 듣던 나는 '초보 학습자인 부모님을 너무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닌가, 나 같으면 짜증 나겠다' 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작은 획 하나로 다채롭게 뜻이 변하는 한국어가 너무 멋지다고 탄성을 지르시는 게 아닌가? 역시 나는 어머니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것 같다. 어렵겠지만, 그런 삶의 태도를 갖고 싶다. 익숙치 않은 것들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그 익숙치 않음이 주는 배움의 기회를 즐길 수 있다면 삶을 관조하며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와사"는 가스 (gas)의 일본식 표기라고 한다. 구한말 종교나 철학 등 기존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어처럼 일본에서 사용되던 표기를 차용한 것이리라. 와사라니, 솔직히 나는 웬 기와가 엄청 많은 산사의 이름인가 생각했다.
"활자처럼 고웁다," " 오늘 또 활자를 본다, " "한없이 긴 활자의 연속을 보고"의 행들을 듣기만 하시던 시아버지는 독일어로 "Papier ist geduldig"라고 독백하신다. 종이는 불평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아무리 거짓된 내용이라도 종이 위에 적을 수 있다는 내용이란다. 온라인 연결망으로 가짜 뉴스가 더 신속히 퍼지는 현실 혹은 특정 권력이 매체를 전유해서 프로파간다를 만들어 내는 상황과 연결 지을 수 있겠다. 하지만, 종이가 불평 한마디 없이 거짓 기록을 끌어안더라도, 그 자체가 거짓의 존재를 보여주기도 하니 나름 기록적 가치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돌아오던"에서, 남편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테크노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에 "도리도리 댄스"가 있었다고 재롱을 부리기에 이른다. 90년대 한국 노래방에서 다들 도리도리 댄스를 추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하던 표현이라, 실눈을 뜨고 미심쩍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게 있었다고?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자기가 만들어 낸 거 아냐?" 의심하는 나에게, 남편은 반은 억울하다는 듯이, 나머지 반은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고 어이없어한다.
줌 미팅을 마치고, 도리도리 댄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구글 검색을 했다. '도리도리 잼잼, 아기 놀이도 아니고 그런 유치한 댄스가 있다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데, 있다! 앗! 이럴 수가! 과거 이정현의 "바꿔! 바꿔!"를 가끔씩 신나게 부르던 남편, 아니나 다를까 이정현 가수가 도리도리 댄스를 추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