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밥먹다가울컥, #노동, #노동의소외, #밥짓기, #인연
입소문으로 들은 책이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리에 호기심이 동했다.
마침, 생물학적으로는 동생이지만 나보다 여러모로 성숙한 동네 동생이 한국에서 공수받은 책이라며 빌려주었다. (정말 땡규!)
책 제목대로 울컥거리는 대목들이 많았다. 사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울컥거렸다.
한마디로 이 책은 관계(혹은 인연), 노동 그리고 가난에 관한 이야기다. 가난에 대한 절망과 끝없는 노동의 소외 안에서 어찌어찌 살아내던 주변인들, 그리고 그들 안에서 보석을 발견해 내는 저자의 섬세함이라니!
제자들에게 존대말을 쓰는 스승과의 관계, 어렵고 곤궁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듬어 안고 연민하는 관계, 그런 인연들에 마음을 담아 아주 곱게 써내려 간 글들이다. 감동적이다. 그러니 울컥할 수 밖에!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2장, "차마 삼키기 어려운 것들"은 밥먹기라는 행위 뒤에 숨겨진 노동에 대한 날것들을 보여준다. 호텔 요리사들임에도 호텔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한다던가, 바다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천초'라는 해초무침을 기피하게 되는 해녀들, 막상 요리를 하는 업을 가졌지만 하루 2끼만을 먹을 수 밖에 없거나, 다른 동물의 목숨을 해쳐야만 생존하게 되는 인간의 속성과 그에 따른 윤리에 대해 읽다보면, 밥하는 노동 앞에 엄숙해진다.
또, 어떤 이는 온 젊음을 바쳐 도제식으로 제빵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연금과 월급도 떼이는 고충을 겪어가며 기어이 제빵기술자가 되었다. 하지만, 대기업 프렌차이즈에 밀려나 도배로 먹고 산다. 저자는, 중국요리사의 팔뚝에 생긴 '기름빵'이나 오븐을 쓰는 양식요리사의 팔뚝에 생긴 화상을 '칸딘스키의 무늬'라고 애써 그 고통을 달랜다.
인용하고 싶은 문구는 넘쳐난다. 그 중 몇개만 적어본다.
<이모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그랬을까>
"물론 그걸 오래 하면 손가락 건염이나 관절염을 필수로 얻는다. 설거지 파출일은 손목 건염까지 덤이다. 골프 자주 치면 자주 걸린다는 병과 같다. 보험공단에 신고하는 똑같은 증상의 질병, 그쪽 전문용어로 동일한 상병명에도 각기 계급이 있다... 시내에 정형외과를 개업한 지인이 있다. 밥집 아줌마들이 오면 기가 딱 찬다고 했다. 목 디스크에 척추측만증까지, 머리에 똬리 놓고 오봉이라 부르는 밥 쟁반 쟁여서 배달하니 그리 된다고 했다. 그는 이고 가는 밥 배달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신중하게 말한다. (p.153) "
"아줌마나 이모 같은 혈연의 호징은 따스하고 정겹다. 그러나 때로는 직장이란 조직이 지켜야 할 룰과 혜택에서, 예의에서 제외되기 쉽다. 우리가 엄마나 누나에게 그토록 못되게 굴었던 것처럼. (p 154)"
<배달의 민족은 온몸이 아프다>
"사장님의 넋두리처럼 뭔가 중얼거리는데 새겨들으니 기가 막힌다. "내가 돌솥비빔밥을 하자고 해서 그래. 그게 죄야." 1990년대부터 돌솥비빔밥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 집 저 집 다 하는데 안 할 수 없어서 메뉴에 넣었다. 시장 점포에서 밥을 시키면 점포당 2-3인분이 보통이다. 서너 상을 한 번에 배달해야 효율적이다. 문제는 돌솥이다. 몇 상 모이면 돌솥 5-6인분이 한 번에 나갈 때가 잦았다. 돌솥 자체 무게만 1킬로그램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그렇게 누적된 문게가 여사장님의 목과 척추를 주저앉혔다. 왜 아니겠는가. 이제 그런 여사님들, 배달 아주머니들 보기도 힘들다. 거의 은퇴했고, 충원도 안 된다. 3층으로 겹겹히 쌓은 상을 머리에 이고, 시장 골목에서 서커스하듯 인파 사이를 누비던 여사님들이 경추와 척추 부상을 입고 은퇴하셨다. 한 세상의 풍경화가 사라졌다. 그런 건 안 보아도 괜찮은 그림이다" (p.164)
노동의 소외를 이토록 절절하게 묘사한다. 식당에서 이모, 언니라고 나름 정겹게 부르는 호칭이 재생산되어 다른 측면을 만드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며, 같은 병명도 사실은 계급에 따라 원인이 다르다는 통찰은 날카롭다. 그러나, 배달로 척추가 망가져 가는 모습이 상권의 무너짐과 더불어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해 슬프면서도 위로가 되는 한마디를 툭 던진다. “그런 건 안 보아도 괜찮은 그림이다” 라며.
그 부분을 읽고 있노라니, 내가 좋아하는 돌솥비빔밥을 먹을 때마다 서빙하는 이의 손목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토론토에 갈 때마다 종종 들르는 순두부와 돌솥비빔밥 집이 있다. 서빙하는 이들이 왜 죄다 사내들만인지 궁금했었는데, 혹 무거운 돌솥을 나르는 일을 젠더화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3장 "추억의 술, 눈물의 밥"을 읽다보니, 저자와 비슷한 시대를 겪어서인지 공감되는 지점들이 꽤 있었다. 조개탄을 떼던 교실, 육성회비, 연합고사, 가사와 가정 교과목, 글리세린, 풀빵장사, 연탄화덕, 여배우 원미경과 코미디언 이주일, 말괄량이 삐삐, 2부제 학교, 난지도, 수출역군, 수출공단, 삐삐.
저자는 나보다 나이가 다소 위에 있지만, 나 역시 그가 겪은 70년대를 지나왔기에 책속에서 묘사된 생활의 현장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느껴졌다. 비록 3일을 굶은 경험은 없지만, 그와 같이 혹여 대포집에 마주 앉게 된다면 미지근한 막걸리를 앞에 두고 결핍에 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가 말하는 상념들을 떠올리게 하는 동네 풍경이라던가, 사람들, 경험담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들은 주로 어린시절을 보낸 친구들과 그간 각자 걸어온 삶의 궤적을 소소히 추억한다. 읽다보면 가슴 한 켠이 시리다. 내가 살아오며 부대끼고 지나간 많은 인연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들 있는지 아련 하기만 하다.
그나저나, 저자의 친구 춘삼씨는 글을 읽고 연락을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