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부 카네기 (1835-1919)는 그가 가진 많은 돈의 일부를 도서관을 짓는데 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흥미롭게도, 미국 뿐만이 아니라 캐나다의 도서관 건립을 위해서도기부를 했는데, 약 125개의 도서관이 카네기의 기부로 설립되었다. 그 중 대다수가 온타리오 주에 기부되었다. 다만 오래된 건물 구조의 특성상, 휠체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서비스 데스크의 위치가 사용자들에게 심리적 위압감을 준다는 등의 이유로 구조물을 변경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래된 카네기 도서관의 구조를 변경한 도서관)
카네기는 도서관 설립 비용의 일부를 기부하면서 조건을 두었는데, 그 중 하나로 지역사회가 도서관 유지비용을 일정정도 매년 지출해야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당시 배우지 못한 노동자들이 도서관을 사용함으로써 지식을 얻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데 큰 목적을 두었다.
(온타리오 주의 한 카네기 도서관)
아동노동도 큰 문제없이 사용되던 시절이었으므로, 저임금의 노동자들과 하물며 흑인노동자들에게까지 "무료"로 개방된 도서관을 위해 기부한다는 것은 꽤 멋진 행위이다. 하지만, 카네기는 노조를 반대한 자본가였으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식의 무비판적 의식을 가진 사회진화론자(social darwinist)였다. 그는 노동자들이 도서관을 사용함으로써 "국가에 헌신하고, 폭력적인 혁명가가 되기보다 조심스러운 진화론자가되어, 파괴자가 되기보다 조심스러운 개량자가 되기"를 노골적으로 천명하였다.
말하자면, 도서관을 통해 불평없이 성실하게, 꾸역꾸역 노오력하는 자기계발 일꾼으로 길들이고자 했던 당시의 엘리트 사회진화론자들과 뜻을 같이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예컨데, 당시 보스턴의 브루죠아 엘리트인 죠지 틱크노어 (George Ticknor)는 도서관의 사명은 연구중심이 되어서는 안되며, 지저분하고 배우지 못한 보스턴의 이미자들을 "향상(uplifting)"시키는 데 있다라고 주장했는데, 기본적으로 카네기는 보스턴의 죠지 틱크노어와 같은 류였다고 보는 것이다.
카네기 도서관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론 무료로 개방된 도서 서비스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들이 혁명가가 아니라 노력을 믿으며 순종하는 일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자기계발 열풍과도 일맥상통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 박터지도록 싸우게 만드는 구조에 대항에 "폭력적"으로 싸우기보다, 열쓈히(?) 시간관리 하면서 자기를 향상, 계발하는 미션에 몰입하는 성실하고 조심스러운 자기관리자가 되는 것.
어쨌든, 인간사회의 시스템과 조직은 일면적이라기보단 입체적인 법. 예컨데, 당시에는 흑백분리주의 하에서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도서관을 사용할 수 없었다. 백인들과 분리된 그들만의 도서관 (예:Greensboro Garnegie Negro Library)에서, 흑인사서들과 흑인 이용자들은 나름의 자율성을 가지고 도서관 자료와 공간을 재료로 삼아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다. 유순한 노동자로 길들이길 원한 카네기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은 도서관에서 남녀노소 하나가 되어 더불어 배우고 서로 지지하며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웬지 한국의 80년대 90년대 초반에 활발하던 야학이 생각나는 지점).
추후 흑백분리정책의 철폐 후, 사람들은 인종과 상관없이 도서관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도서관 이사회의 대다수를 백인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흑인들의 결정권과 목소리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생기기도 했다.
이처럼, 도서관은 끊임없이 사회 행위자들에 의해 협상되고 굴곡을 그리며 변화중인 것이다. 도서관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내어본다. 도서관을 통해 자기계발이 아니라 혁명가가 되는 그 어느날이 올것이라 꿈꾸어도 되겠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