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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데시멀 시스템과 정보 조직의 재설계

6장. PKM 방법론

by 아키비스트J

배움의 시작


이 이야기는 이미커피 대표 이림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GPTers라는 스터디 모임에서 AI 도구와 생산성, 비즈니스 로드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단순히 도구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정보를 구조화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림님이 소개했던 방법론 중 하나가 바로 조니 데시멀(Johnny Decimal) 시스템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폴더 정리 기법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적용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폴더 정리가 아니라 사고의 재구조화였습니다.




무한 중첩의 함정


폴더 안의 폴더 안의 폴더

현실 세계에서 상자 안에 상자를 넣고 또 그 안에 상자를 넣어둔다면 어떨까요. 무엇이 어디 있는지 절대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 파일을 저장하는 방식입니다.


디지털 파일 시스템의 본질적 문제는 깊이에 제한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이 없으니 폴더를 무한히 중첩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자유로워 보이지만 오히려 이 무한함이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21화에서 살펴본 장기기억의 문제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기억을 못 한다고 느끼는 순간은 저장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에 어떤 맥락으로 저장되어 있는지 길을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디지털 폴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저장 용량이 아니라 인출 구조입니다.


왜 깊은 폴더 구조는 실패하는가

세 단계만 들어가도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립니다. 지난 화에서 언급했듯이 작업기억이 동시에 붙잡을 수 있는 정보는 3~5개에 불과합니다. 폴더의 깊이가 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우리 뇌는 현재 위치를 놓칩니다.


결국 우리는 검색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나 검색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의 이름을 정확히 알 때만 작동합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검색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구글 효과가 작동하려면 최소한 경로를 기억해야 하는데 깊은 폴더 구조는 그 경로마저 지워버립니다.




조니 데시멀: 10×10의 제약이 주는 자유


듀이 십진분류법에서 영감을 얻다

조니 노블(Johnny Noble)이 개발한 조니 데시멀 시스템은 도서관의 듀이 십진분류법(Dewey Decimal System)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을 때 우리는 숫자만 보고도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개인 파일 시스템에 적용한 것입니다.


핵심 원리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영역(Area): 최대 10개 (00-09, 10-19, ... 90-99)
카테고리(Category): 각 영역 내 최대 10개
ID: 각 카테고리 내 개별 항목 (예: 12.01, 12.02...)


최대 10개의 영역을 만들 수 있고 각 영역에는 최대 10개의 카테고리만 담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제한을 둘까요. 단순함과 관리 용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옵시디언 볼트의 실제 구조

추상적인 설명보다 실제 사례가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이 저장되어 있는 제 옵시디언 볼트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00-system
10-work
├── 11-project
├── 12-lecture&presentation
├── 13-consulting
├── 14-writing
└── 15-study
20-insight
├── 21-reading-note
├── 22-ideas
└── 23-coffee-chat
30-knowledge
├── 31-academic
├── 32-web-clip
└── 33-convention
40-personal
├── 41-daily
├── 42-weekly
├── 43-persona-history
└── 44-money flow
90-archive


10번대는 일(work)과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프로젝트, 강의, 컨설팅, 글쓰기, 스터디가 여기에 속합니다. 20번대는 통찰(insight)입니다. 책을 읽고 메모한 것, 떠오른 아이디어, 커피챗에서 나눈 대화가 여기에 모입니다. 30번대는 지식(knowledge)입니다. 학술 자료, 웹 클립, 컨퍼런스 자료, AI 관련 정보, 마케팅 자료,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노하우가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어디에 있을까요. '10-work > 14-writing' 안에 있습니다. 숫자만 봐도 이것이 업무 영역의 글쓰기 카테고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화.png


선반, 상자, 폴더의 비유

조니 데시멀 공식 사이트에서는 이런 비유를 제시합니다. 영역(Area)은 선반이고 카테고리(Category)는 상자이며 ID는 상자 안의 개별 서류철입니다.


이 물리적 비유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뇌는 추상적 계층보다 물리적 위치를 더 잘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서 철학책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면 우리는 '2층 왼쪽 구석'이라고 대답합니다. 숫자가 공간으로 변환되는 순간 기억하기 쉬워집니다.


제 볼트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싶다면 20번대로 가면 됩니다. 웹에서 클립한 자료가 필요하다면 30번대의 32를 찾으면 됩니다. 숫자가 곧 지도가 됩니다.




고유 식별자의 힘


숫자가 이름을 대체한다

이 시스템이 강력한 진짜 이유는 모든 폴더가 고유한 식별자(UID)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24년 세금 관련 문서'를 찾는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기존 방식이라면 '문서 > 업무 > 재무 > 2024년 > 세금'처럼 경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조니 데시멀에서는 11.03처럼 짧은 숫자만 기억하면 됩니다. 파일 탐색기에서 이 숫자를 검색하면 즉시 해당 위치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UID의 장점은 여러 가지입니다. 검색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구두로 전달하기도 쉽습니다. '14번 가서 확인해줘'라고 말하면 글쓰기 폴더를 의미합니다. 심지어 언어 장벽도 초월합니다. 숫자는 만국 공통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도구에서도 작동한다

PARA(Projects, Areas, Resources, Archive) 방식과 마찬가지로 조니 데시멀 시스템은 대부분의 도구와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일 시스템, 구글 드라이브, 원드라이브, 이메일, 노트 앱 어디서든 적용 가능합니다.


아카이브 관점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첫째, 도구 종속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옵시디언을 쓰다가 노션으로 옮기더라도 폴더 구조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둘째, 이관(migration)이 쉬워집니다. 숫자 기반 구조는 어떤 시스템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셋째, 장기 보존 체계를 수립할 수 있습니다. 10년 후에도 14번이 글쓰기 폴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PARA와의 조합


하이브리드 접근법

조니 데시멀은 노트와 폴더의 번호 체계를 담당합니다. 그렇다면 새 노트를 어디에 둘지는 어떻게 결정할까요. 여기서 PARA가 등장합니다.


PARA는 티아고 포르테(Tiago Forte)가 제안한 분류 체계입니다.


Projects: 목표와 마감이 있는 작업
Areas: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영역
Resources: 참고 자료
Archive: 완료되었거나 비활성화된 항목


조니 데시멀이 '어디에'를 결정한다면 PARA는 '왜 여기에'를 결정합니다. 두 시스템을 결합하면 번호는 위치를 알려주고 분류 기준은 행동 가능성을 알려줍니다.


실행 가능성 순서

PARA의 네 가지 분류는 실행 가능성(actionability) 순서로 정렬됩니다. Projects 폴더의 노트는 자주 접근하고 작업합니다. Archive 폴더의 항목은 거의 찾아볼 일이 없습니다.


이 원칙은 아카이브의 현행화와 직결됩니다. 접근 빈도와 활용 맥락에 따른 분류가 정적인 주제 분류보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분류법은 '이것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PARA는 '이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제 볼트에서 11-project는 현재 진행 중인 일입니다. 완료되면 90-archive로 이동합니다. 번호는 그대로 유지한 채 위치만 바뀝니다. 숫자가 정체성을 보존해주기 때문에 아카이브로 옮겨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지 않습니다.




제약 속의 자유


조니 데시멀 시스템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10개라는 제한이 너무 좁지 않을까. 그러나 사용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제약이 있기에 선택이 명확해집니다. 무한한 자유 속에서 우리는 결정을 미룹니다. 제한된 틀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게 됩니다.


10×10의 제약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이것이 별도의 영역이어야 하는가. 이 카테고리가 꼭 필요한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보 세계를 이해하게 됩니다.


숫자는 차갑고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지도입니다. 내 생각과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입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지도가 필요합니다. 조니 데시멀 시스템은 그 지도를 그리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참고문헌


- Johnny.Decimal. "A system to organise your life." https://johnnydecimal.com/

- Dubois, Sébastien. "The Johnny Decimal System." dsebastien.net, 2022.

- Romankiw, Jarod. "Implementing the Johnny.Decimal System."

- NotePlan Knowledge Base. "How to organize your notes and folders using Johnny.Decimal and PARA."

- 티아고 포르테. 『세컨드 브레인』. 서은경 역. 쌤앤파커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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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관한 글을 씁니다. 솔로프러너이자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며, 디지털 아카이브 컨설팅을 합니다. AI 시대 모두가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인지적 평등이 실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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