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세 개의 뇌
기억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닙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지금 이 순간 의식 위에서 동시에 붙잡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부릅니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이 용량은 대략 3~5개 단위(Chunks) 정도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작업기억 속에서 한 번에 많은 것을 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외부에 메모를 해두거나 단계별로 쪼개서 처리해야 합니다. 작업기억의 한계는 왜 노트와 화이트보드, 디지털 메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줍니다. 제1뇌 혼자만으로는 복잡한 세계를 붙잡고 있기에 문이 너무 좁습니다.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은 상대적으로 매우 큰 용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는 컴퓨터처럼 고정된 용량을 가진 저장 장치라기보다는 여러 신경망이 겹쳐 쓰이고, 한 뉴런이 여러 기억에 동시에 관여하는 분산 저장 방식을 취한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기억을 못 한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개 저장 공간이 모자라서라기보다 어디에, 어떤 맥락으로 저장되어 있는지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장기기억의 핵심 문제는 '얼마나 많이 저장할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어떻게 구조화하고, 어떻게 다시 찾아올 수 있는가'에 가깝습니다.
인터넷 검색과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뒤 심리학에서는 이른바 '구글 효과(Google Effect)'나 '디지털 암네시아(Digital Amnesia)' 같은 개념을 논의해왔습니다. 2011년 컬럼비아 대학의 베시 스패로우(Betsy Sparrow) 연구팀은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나중에 컴퓨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알려주면 정보 자체를 덜 기억하고, 대신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더 잘 기억했습니다. 검색엔진이 있으니까 내용을 외울 필요가 없다고 뇌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글 효과입니다. 디지털 암네시아도 비슷한 현상을 가리킵니다.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전화번호나 일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기기가 대신 기억해주면 뇌가 저장을 포기하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 온라인에서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내용 그 자체보다는 '어디에서 찾는지'를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입니다. 구체적인 효과의 크기와 재현성에는 논쟁이 있지만, '내용을 덜 기억하고 경로를 더 기억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점은 디지털 시대의 직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퇴화가 아니라 기억 전략의 재배치로 볼 수 있습니다. 제1뇌는 '무엇을 아예 잊어도 되는가'와 '무엇은 반드시 내 머리 속에 있어야 하는가'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제2뇌와 제3뇌는 '다시 찾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맡습니다. 기억의 폭발적 잠재력은 이러한 재배치를 의식적으로 설계했을 때 열리는 가능성입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