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구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 그의 방송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5월 25일 밤 10시 30분, 아프리카 유명 BJ '철구'가 2018년 시작한 1년 7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BJ로 복귀했다. BJ 철구는 어제 복귀 방송에서 동시 접속자 수 37만 명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이로 인해 아프리카 TV서버가 잠시 동안 다운되는 등,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아프리카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그의 위엄을 재확인시켜주었다.
BJ 철구는 그간 방송에서 하는 많은 엽기적 행각과 욕설, 비방 등으로 인해 많은 비난과 욕을 듣기도 했지만, 이번 그의 복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과 팬층을 보이며 그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철구의 방송은 '철구 방송은 공공장소에서 볼 수 없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자극적이고 과격한 방송이 많은데, 그의 방송은 그러한 면 때문에 많은 규제와 심의를 받기도 하며 많은 사회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그의 방송이 청소년이나 아동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치므로 그의 방송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고 해도, 그의 인기와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송이 이렇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이에 대한 해답을 프로이트의 정신 심리학에서 찾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또는 충동)이 항상 신체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마치 인간의 혈액이 끊임없이 몸을 순환하면서 주변 기관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도 인간의 정신적 결정과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는 근원적 존재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프로이트가 "충동"이라고 부른 이 본능은 두 가지의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존재하는데, 하나는 생(生)의 본능인 '에로스'이고 다른 하나는 사(死)의 본능인 '타나토스'다. '에로스'는 생명의 본능이라고도 불리며, 생명을 지속하려고 하는 욕구다. 이 욕구는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고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며, 한 종족의 번창을 가져오게 한다. 반면, '타나토스'는 파괴의 본능이라고도 불리며, 생물체가 무생물로 환원하려는 본능이다. 이 본능은 인간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타인이나 환경을 부수고 공격하게 한다. 인간의 역사는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새로운 부족, 새로운 국가를 형성해가며 자신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평온하게 만들기 위해 함께 힘써 왔지만, 반대로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며, 함께 모든 것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대립은 결국 인류의 역사에 온건히 남아있는 인간의 본능 그 자체이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대립은 결국 인류의 역사에 온건히 남아있는 인간의 본능 그 자체이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문화가 점차 발전되면서 인간은, 이러한 자기들을 파괴시키는 '타나토스'를 억누르고 종족을 번창시키는 에로스를 키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에로스'적인 것은 선, ' 타나토스'는 악이라고 규정하며, 국가를 통해 '타나토스'를 억제하고 ‘에로스’를 선호하게 만들고자 했다. 국가는 누군가가 허가받지 않은 '타나토스'를 행하면 그를 처벌하고 그의 분출된 타나토스를 제압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타나토스’는 악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국가가 ‘타나토스'를 제압한다 한들, 인간의 DNA에 내재된 파괴의 본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억압된 파괴본능은 오히려 더욱 곪고 골아 더욱 기괴하고 해괴한 모습으로 사회 곳곳에 표출되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엽기적이고 괴상한 사건들은 이러한 '타나토스'의 분출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결국 인간들에게는 그들의 몸속에 내재된 '타나토스'를 배출해줄 배출구가 필요함을 뜻했다. 격투기, 공포영화, 코미디 등과 같은 각종 매체들은 그러한 인간의 욕구를 배출하는 배출구 역할을 했다.
철구의 방송 역시도 사람들의 이러한 욕구를 배출시켜주는 하나의 배출구 역할을 했다. 철구는 방송 초기 간장을 몸에 붓고, 집에 밀가루를 뿌리고, 방의 유리창을 깨는 등 우리 삶에 밀접한 기존 질서들을 파괴하는 행위를 했다. 이러한 파괴 행위는 사람들의 일상적 ‘’ 타나토스'를 자극 했는데, 그는 그동안 대중들의 '타나토스'를 대변하던 기성의 복서, 배우들과는 달리 친근하고 이웃 같은 동네형 이미지를 가짐으로써,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자기들과 능력도, 외모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철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각종 파괴적 행동을 보면서, 그동안 해소하지 못했던 마음속의 '타나토스'를 해소했다. 결국 철구의 방송은 기성의 매체들보다 친숙한 ‘타나토스’ 배출구 역할을 했고, 이는 그를 지금과 같이 큰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기성의 매체들이 하지 못한 일상생활 속에서 생겨나는 파괴의 본능을 일반인의 몸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 철구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대중들의 '타나토스'분출 욕구와 결합해 지금과 같은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철구의 방송은, 한 번에 37만 명이나 보는, 사람들의 파괴 본능을 해소해주는 대표 배출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글은 절대 철구의 방송의 방송에 대해 좋고 나쁘고에 대해 논의하는 글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가지는 '타나토스'의 척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의 방송이 파괴적이고 눈살을 찌푸리는 방송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복귀 방송이 동시간 대에 37만 명이라는 숫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의 파급력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정도 규모의 파급력은 분명 사회의 어떤 부분을 대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것이 프로이트의 정신 심리학에 비추어 봤을 때, 사람들이 표출하고 싶어 하는 내면의 파괴적 본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방송이 사람들의 '타나토스'를 긍정적으로 풀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프로이트가 말한 타나토스라는 욕망이 정말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라면, 이러한 방송을 무조건 부정하고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의 파괴 욕구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런 문화들을 장려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키워가는 것이 사람들의 '타나토스'를 바른 방향으로 풀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이러한 콘텐츠들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고 규제할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콘텐츠들이 사람들의 '타나토스'를 더욱 슬기롭게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