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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Dec 10. 2020

정의로워지는 방법.

정의의 이름은!?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말 '정의'.  우리는 정의를 찾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매우 익숙한 슬로건입니다. 정의라는 단어가 들어갔을 때 이를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회가 정의롭기를 바라고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정의로움은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기질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의로움'은 어떻게 해서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의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많은 만화나 영화는 정의를 다룹니다. 정의로운 주인공, 정의로운 사회. 감독은 이곳에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로움을 담아 놓습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정의로움을 실천하면서 사람들에게 정의로움을 전달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정의로움은 단순히 주인공의 행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영화에는 항상 정의를 반대하는 '악당'이 등장합니다. '악당'은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고 강간하고 누가 봐도 악당이란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추악하고 징그러운 이 악당은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주인공은 이런 악당을 무찌르면서 정의로움을 얻습니다. 주인공의 폭력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의를 위해 행사하는 심판입니다. 주인공의 폭력은 바로 '정의'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가치관이 정의로운 것이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서있는 곳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정의의 편이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악당'을 찾습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가 그렇고 북한이 그렇고, 이슬람 종교가 그렇습니다. 갑질 하는 부자들이 그렇고, 놀고먹기만 하는 백수들이 그렇고, 권리에 찌른 기득권이 그렇습니다. 악당의 사연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의를 위한 소비품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정의를 함께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이들을 벌합니다. 이들을 벌하고 욕하고 굴복시킴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폭력은 정의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정의를 얻습니다.


 정의로운 사회에는 언제나 악당이 필요합니다. 악당을 벌해야만 정의롭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악당을 굴복시켰다면, 우리는 또 다른 악당을 찾아야 합니다. 사회가 계속해서 정의롭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정의의 편임을 증명받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악당을 찾고 그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악당은 누구인가요? 여러분은 정의의 편인가요? 아니, 여러분은 정말 정의롭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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