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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Dec 11. 2020

정의로운 것은 선한가?

정의와 혐오

 앞서 이야기했듯, 정의로움은 악을 만듦으로 형성됩니다. 정의로움은 악을 부정하며 증명받습니다. 과연 이런 정의는 과연 선한 것일까요?


 현대사회 이전에는 악의 존재가 너무도 명확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의 존재.’ 이들은 우리가 힘을 합쳐 물리쳐야 할 악이었습니다. 이러한 악은 사람들을 뭉치게 했고 국가 단위의 집단을 출범시켰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악이 사라졌습니다. 평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적은 사려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뻔한 악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서 악을 찾아야 할까요?


 사람들은 눈을 사회로, 내부로 돌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내부에서 정의를 위협하는 악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런 존재들은 전과 다릅니다. 이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악이 아닙니다. 이들은 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차 서로의 의견이 갈리는 상대적 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불안을 느낍니다. 자신의 정의가 위협받고, 세상에 악이 득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몇몇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을 악당 취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커진 불안과 공포는 자신을 지켜줄 더욱 강한 정의를 찾게 합니다.


 강한 정의의 욕구는 포퓰리즘으로, 차별 혐오 정치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정의를 증명하기 위해 더욱 강하게 악을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욕과 비하를 넘어 폭행 그리고 참수까지,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정의를 증명하고자 합니다. 웹상에 퍼진 수많은 혐오는 단순히 정신 나간 사람들의 아우성이 아닙니다. 모두 정의를 바라는 각 집단의 정의 표현입니다. 전쟁이 만들었던 국가단위의 집단은 이제 단체 단위의 집단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거대한 악을 잃은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강한 차별과 혐오를 할 것입니다. 정의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강한 연대와 징벌을 원할 것입니다. 목숨을 불사르고 악을 무찌르며 자신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 할 것입니다. ‘강한 악’의 상실과 ‘강한 정의’에 대한 욕구는 우리를 더욱 혐오의 사회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정의는 정말 선한 것일까요? 아니, 과연 이런 정의는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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