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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Dec 15. 2020

정의를 원하는 이유.

정의가 필요한 이유.

 정의는 정말 정의로운가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정의가 진짜 정의 일지, 어떤 정의가 정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문화 교육이 발전한 지금, 대부분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정의 따윈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정의를 원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절대적 정의가 사라진 지금, 여전히 사람들이 정의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창 시절 반에 분위기를 깨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재밌게 놀다가도 그 친구만 오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 친구는 소극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아이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정말 그 친구가 싫었습니다. '때리고' 싶었습니다.


 22살 훈련소에 들어갔습니다. 14명의 친구들과 같은 생활관을 썼습니다. 모두가 번호로 불리며 개인의 가치는 사라지는 이때, 한 명의 잘못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우리가 모두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훈련을 할 때면 다른 의견을 내고, 집중을 못하는 훈련병이 있었습니다. 그 훈련병으로 인해 몇 번 얼차려를 받았습니다. 얼차려의 강도가 높아질 때마다 저는 그 훈련병이 너무도 '때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너무 화가 나고 너무 때리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폭력은 오랜 기간 세뇌적으로 배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이 금제가 풀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일을 정의를 위해서 합니다. 누군가를 때리고, 고문하고, 죽이고, 이런 행동들은 정의라는 이름하에 행해집니다. 정의를 위한 폭력은 정의구현이라 불립니다. 정의를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용기 있는 자입니다.


 이는 특히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 sns, 뉴스 기사 등 인터넷 상에는 저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누구는 맞아야 하고 누구는 쫓겨나야 하며,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임을 알지만, 정의를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정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의에게, 상대가 진짜 악인지 아닌지는 정말 중요한 요소일까요? 정의에게는 그저 마음속에 쌓인 폭력을 행사할 악이 필요할 뿐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지금껏 정의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학살을 해왔습니다. 정의는 악과 대치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악을 무찌를 때 태어났습니다. 정의를 찾는 것은 어찌 보면 세상에 악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부터가 아니라, 누군가를 무찌르고 싶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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