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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Mar 10. 2021

인종차별을 이겨내는 방법

#StopAsianHate 캠페인을 지지합니다.

 최근 제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소련 여자'에서는 아시아 인종차별에 대해 다뤘습니다. 코로나 확산 후 미국 내 동양인 혐오 사건이 3000건 이상 발생, 뉴욕시 동양인 혐오 범죄 1900% 증가했다고 합니다. 뉴욕시에서는 아시아계 증오 범죄 전담 수사반을 편성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아계 인종차별 규탄 행정명령 시행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미국 사회 전역에는 현재 #stopaisanhate 운동이 퍼지고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살 때 일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파리 외각의 루이뷔통 파운데이션 건물을 보기 위해 공원을 걷고 있었습니다. 날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 한껏 신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지나가던 한 백인 남성이 내 옆을 지나면서 재채기를 하는 척, 큰 소리로 '차우!’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곤 친구와 함께 시시덕거리며 지나갔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인종차별이란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 나가기 전 인종차별 영상을 여럿 찾아봤었습니다. 그때는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답답하다 생각했었습니다. 이 악물고 저항하거나,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가만히 당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당한 직 후, 제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웃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뒤돌아 힐끔 쳐다보며, 동양인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미소로 웃으며 사라졌습니다. 


 저는 계속 길을 걸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경치도, 날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심한 열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머리가 멍하고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났습니다. 뜨거운 핫팩을 가슴 안에 넣어 놓은 것 마냥 가슴이 뜨겁고, 쓰라렸습니다. 그때 내가 멱살을 잡았다면, 인종차별 주의자냐고 소리쳤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온갖 상상이 머릿속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내 낙담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친구가 있고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나라의 국민이고, 백인이었습니다. 지인이라고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학교 친구뿐인 내가, 그때 소리치고 반발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싸움이 났을 때, 누가 내 편을 들어줬을까? 경찰을 부른다 한 들 그들이 날 도와줄까? 그때 저는 느껴졌다.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느꼈습니다. 인종차별을 당해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프랑스에 가기 전 대학생 때 일입니다. 저희 반 스튜디오에는 교환학생을 온 흑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날은 그녀가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물었습니다. 그녀는 은행 계좌가 개설되지 않아 은행에 갔는데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괜찮다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했습니다. 대략적인 자초지종만 들었지만, 단순 일처리가 잘 되지 않아 우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한국말을 잘 못하는 흑인 여성이다 보니 여럿 무시를 당한 것 같았습니다. 안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저는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며, 모른 척 지나쳤습니다.



인종차별을 이겨내는 핵심은 내가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든 인종차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분명 누군가는 계속해서 인종차별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들이 공공장소나 길거리에서 인종차별을 하지 못하게는 할 수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인종차별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상대를 막론하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도와주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 불안함을 느끼게,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인종차별을 서로 감시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가장 서러웠던 것은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그곳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반 친구가 인종차별을 겪고 왔을 때 내가 그냥 지나쳤던 것처럼,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종차별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소리 내어 주는 것입니다. 인종차별을 당한 당사자가 당당하게 소리 칠 수 있도록, 그리고 인종차별을 한 사람이 부끄러워할 수 있도록 인종차별에 민감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종차별을 당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지지받고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을 한 사람에게 당신들은 비난받는다는 것을 명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stopasianhate 캠페인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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