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이 사람보다 귀해요?",
조랑말 박물관

(2018.4.4~6, 방글이11세)

by Archur

도시 속에서 원은 낯설다. 자투리땅까지 경제적으로 써야 하는 도시에서 원이 만드는 여분의 공간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을 둘러싼 상황이 바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도시가 아닌 자연과 같이 밀도가 낮은 지역이라면 원형의 건물이 들어서는데 저항감이 떨어진다. 원형의 건물에 인접해 다른 건물이 이웃할 이유도 없고 특별히 관계 맺을 이유조차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자연 속에서의 원은 도시에서의 원과 달리 안에서의 의미, 즉 원 안에 포함된 것들이 하나의 성격으로 묶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더 강해진다. 왜냐하면 경계가 없는 영역보다는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이 덜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마치 중세시대 유럽인들이 느꼈던 성 안 소우주와 성 밖 대우주의 개념과 비슷하다. 어찌 됐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원형의 건물은 도시 속 보다는 자연 안에서 더 많이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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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지역의 자연으로 한정하면 이야기가 더 구체화된다. 특정한 지역 중 제주의 자연은 '오름'이라는 원형 모티브Motive와 관계된다. '오름'은 제주 지역에 있는 기생화산을 일컫는 제주 사투리다. 오름은 흐름을 이루는 보통의 산과 달리 갑자기 홀로 솟아 있다. 지도로 보면 오름은 원형이다. 이 원형은 오름을 만든 힘의 영역을 보여준다. 이 원 안쪽에서 응축된 힘이 땅을 들어 올렸다. 일반적으로 산맥을 이루는 우리나라 지형에서 오름은 쉽게 볼 수 없는 자연 형태다. 그래서 제주에 있는 건물을 설계하는 많은 설계자들이 오름의 차용을 디자인 모티브로 내세웠다. 그 건물이 들어서는 땅이 자연에 가까울수록 '오름의 차용'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수많은 건물들이 나름의 형태로 보여주는 '오름의 차용'이 정말 오름을 떠오르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반복 속에서 설계자들의 타성이 읽혀서 솔직히 반갑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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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동쪽 중산간에 지어진 제주 조랑말 박물관도 원형의 평면을 보면 '오름의 차용'이 떠오른다. 주변에 오름도 있고 마을의 풍경이 제주도 내 여느 마을의 풍경과 그렇게 다르지도 않으니 '오름의 차용'이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다만, 조랑말 박물관은 원 안쪽을 다시 원으로 비워낸 링Ring 형태다. 그리고 그 링이 불규칙한 콘크리트 벽 위에 올려져 있다. 이로 인해 1층에서의 이동은 무작위다. 반면 2층 전시실과 옥상에서의 이동은 두 개의 원이 겹쳐 있으니 강한 순환이다. 1층을 불규칙한 콘크리트 벽으로 들어 올린 이유는 들판의 공간을 막지 않기 위해서다. 설계자 중 한 명인 윤웅원은 "제주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동물들까지도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동물들이 설계자가 예측한 행태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1층을 거닐면서 동물들을 만나지도 못한다. 다만, 무작위 한 1층의 벽들을 피해 가면서 다채로운 주변 풍경의 변화를 감상할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이한 두 질서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프레임Frame이 인상적이었다. 1층 벽이 무작위, 말 그대로 일정한 패턴Pattern이 없어서 이동하며 보이는 프레임은 계속 새로운 형태로 바뀌었고 그 프레임 안에 파란 하늘과 나뭇가지가 만들어내는 구도가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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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무작위 한 동선과 달린 2층과 옥상의 동선은 순환이다. 2층은 말과 박물관이 지어진 땅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전시공간이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고 말은 나면 제주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주의 말은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박물관이 지어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일대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국내 최대 국마 산지였다. 산마장 중 가장 큰 '녹산장'과 최상급 갑마를 생산했던 '갑마장' 모두 이곳에 있었다. 한 논문에 따르면 전국 목마의 약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짧은 전시 관람을 마치고 옥상에 오르면 조랑말 박물관을 둘러싼 풍경이 막힘 없이 둘러싼다. 설계자는 옥상을 한 바퀴 돌며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경험을 제주도의 오름에서 높이에 의해 독특한 공간 경험을 하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박물관을 링의 형태로 계획해서 옥상을 한 바퀴 돌며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설계자는 박물관 계획을 '아주 작은 오름'이라고 소개한다. 1층에서의 풍경이 아기자기함이 있었다면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광대하다. 그 광대함 속에 불쑥불쑥 솟아오른 오름은 강렬하기보다는 원만하다. 수직적인 요소로 가득 찬 어디를 보나 시선이 막힌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풍경은 낯설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조상들이 보아왔던 풍경이어서 일까? 그 풍경이 유전자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까? 이내 편안해진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에서 눈에 거슬리는 유일함은 옥상을 덮고 있는 녹색의 옥상방수제다.

잠시 눈 앞에 풍경을 조선시대까지 거스르는 상상을 해봤다. 당시 말은 사람보다 귀한 존재였다. 조선시대 제주민들 상당수가 말 키우는 국역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은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심지어 말의 죽음에는 응당히 대가와 책임이 따라야 했지만 말을 키우는 사람의 죽음에는 오히려 무관심했다. 당시 가시리 주민들도 말의 생육을 위해 필요할 뿐이었다. 말은 가리시 사람들의 삶을 유지해 주는 목적임과 동시에 삶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울 리 있었을까? 현재 가시리 주민들은 감귤, 만감류, 콩, 무, 더덕 등 밭작물과 축산 등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농업 외 마을을 활성화시킬 방법을 찾았는데 조랑말 박물관이 첫 번째 사업이었다. 마을 단위에서 발주(?)한 박물관이어서 국내 최초 '리립里立 박물관'이라는 타이틀Title을 갖게 됐다. 사업은 당연히 저예산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설계자는 "거칠고 투박한 건물이 이 장소에서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오히려 "오래된 토목 구조물처럼 시간과 함께 주변 자연에 동화되어 갈 거라고 봤다." 실제 조랑말 박물관은 거칠다. 입면뿐만 아니라 바닥도 노출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짓다 만 것 같아 보이지만 주변이 모두 거친 자연이어서 잘 어울린다. 여기에 더해 가시리 주민들의 고단함도 그 거침과 투박함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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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 쓰여있던 설명을 읽고 방글이가 물었다.

"아빠! 왜 말이 사람보다 귀해요?"

"음... 그건. 이곳에서 키운 말을 왕이 타기도 하고 또 당시에는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잖아. 일종에 자동차였던거지."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사람이 제일 귀하다고 하셨어요. 사람이 말보다 더 귀하니까 사람이 말을 타는 거죠!"

"그렇지. 하지만 조선시대 때는 안 그랬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었지."

"아! 저 사회시간에 배웠어요. 신분이 있었다고."

말이 사람보다 귀했다는 그래서 더 대접을 받았다는 말을 아이에게 설명할수록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세상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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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장과 갑마장 사이를 가르는 길은 '녹산로'다. 4월 녹사로를 찾았을 때 유채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이곳을 갔던 3월 보다 날씨는 더 험궂었다. 쾌청했던 하늘은 금세 어두워져 갑자기 눈과 우박이 쏟아졌다. 그 바람에 눈을 맞으며 유채꽃을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유채꽃도 제대로 못 보고 그냥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다 방글이의 조랑말 체험을 강행했다. 관리인이 끄는 말에 탄 방글이가 눈발을 뚫고 달렸다. 먼 거리에서 이 장면을 본 순간 김훈이 쓴 소설《흑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나온 길',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그 위를 지나는 '확실한 길'만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과 상관없이 방글이는 참 해맑은 표정으로 말을 탔다.

"지나고 나면 지나온 길은 눈비 속에 지워졌다. 이 세상에는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을 터인데 가보지 않은 길이 가보지 않은 자리에 그렇게 뻗어 있을 것인지가 마노리는 늘 궁금했다. 그래서 길은 그 위를 지나갈 때만 확실히 길이었다."
-흑산, 김훈, 학고재-


설계자: 윤웅원&김정주&제공건축(2013)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녹산로 3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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