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 변기 진짜 쓸 수 있어요?",
구하우스

(2016.11.12, 방글이9세)

by Archur

남한강과 북한강은 수도권 시민의 물줄이다. 그래서 두 강이 만나는 양평군에는 상수원보호구역을 포함해 다양한 규제지역이 지정돼 있다. 그렇다 보니 양평군 내에는 계획적으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 풍광을 찾아 양평으로 사람들이 오는지도 모른다. 서울로도 다닐만해서 밥벌이는 서울에서 하고 그 벌이를 위한 재충전은 이곳에서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중 몇몇은 밥벌이를 하며 꿈꾸어왔던 자신만의 갤러리를 풍광 좋은 양평에서 이루기도 한다. 닥터박 갤러리Dr.Park Gallery(승효상&이로재, 2006)가 그렇고 2016년 몇몇 언론에서 주목한 구하우스Koo House(2016.7.1 개관)도 그렇다.


구하우스의 집주인은 CI, 로고Logo, 네이밍Naming 등을 디자인하는 '디자인포커스' 대표 구정순이다. 그녀는 국내 1세대 여성 디자이너로 꼽힌다. 구하우스는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지만 '집'으로 불린다. 그래서 이름도 '구 하우스Koo House'고 구정순도 관장이 아닌 집주인이다. 구정순은 설계자에게 "큰 작품을 소화할 수 있는 미술관이되 집이었으면 한다"라고 요청했다. 솔직히 말이 쉽지 어려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집'과 '미술관'은 말 그대로 다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을 집처럼 보이는 형태로 설계할 수는 있다. 즉, 형태적으로 '집 같은 미술관'처럼 보이도록 설계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공간구조로 들어가면 '집'과 '미술관'은 서로 공유되는 면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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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해당 가족 구성원의 사용만을 전제로 설계된다. 가족 구성원은 아무리 많아도 10여 명을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인원수는 2.53명(2015년)이다. 여기에 더해 집의 개별 방들은 방의 주 사용자로 더 한정돼서 설계된 공간이다. 부부 침실의 잠재적 사용자는 집주인 부부이지 이웃집 사돈의 팔촌 부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과 방 간의 연결도 개별적이면 그만이다. 반면, 미술관(혹은 박물관)은 특정할 수 없는 관람객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불특정 다수가 공간에 애정을 느끼고 친숙할리는 없다. 무엇보다 전시 동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 전시실들은 물 흐르듯 이어져 있어야 한다. 구하우스도 전시시설이니 각 방들을 물 흐르듯 연결돼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놓고 보니 개별적인 공간으로 구성되는 집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보기에 앞서 더 근본적인 질문. 도대체 왜 구정순은 '집 같은 미술관'을 건축가에게 요구했을까? 일단 의뢰인이 디자이너이니 무엇이 됐든 '콘셉트Concept가 분명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히 '미술관도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그다음 구정순은 '우리가 맛집도 찾고, 럭셔리 브랜드 옷도 사면서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베드 하우스Bed House'로 보는' 즉, '의식주 중에서도 여전히 주住를 중시하지 않는다'라고 봤다. 그녀는 '집이란 게 자꾸 사람이 모이고 머물 일이 생겨야 꾸미고 싶어 지기' 때문에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장치로서의 집을 보여주고 구 하우스를 다녀간 사람들이 '나도 이렇게 집을 꾸며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자는 바람'에서 이런 콘셉트를 생각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회사에서 '늘 고객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을乙이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관람객이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게 되는 보통의 미술관이 아닌 '늘 손님이 들끓을 필요가 없는', '그냥 편안하게 공간을 즐기면 되는',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나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생각했다고 한다([공간] 침실엔 앤디 워홀, 서제엔 마그리트 미술관이 된 집, 집이 된 미술관, 중앙일보 강남통신, 2016.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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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이런 생각을 했으니 설계자는 이를 풀어내야 했다. 집과 미술관의 괴리는 우선 각 실의 크기에 있다. 집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한 면적이면서도 전시실로서의 기능도 수행해야 하는 크기. 이러한 상반됨을 설계자 조민석은 건축물을 두 개로 나누고 길고 좁은 복도Corridor를 통해 연결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복도는 관람동선의 이동통로이기도 하지만 전시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복도 뒤쪽으로 프런트 룸Front Room(거실)이라는 또 하나의 전시실을 만들었다. 사실 복도와 프런트 룸은 하나의 전시실로 만들어도 어색할 게 없지만 그렇게 했다면 '집 같은 미술관'이라는 개념은 구현되지 못했을 듯하다. 복도는 동쪽으로 난 주출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보인다. 관람객에게 구하우스의 개념을 가장 먼저 전달하는 공간이다.


50m 길이의 복도를 가운데 두고 동쪽에는 라운지Lounge(카페)와 클로크 룸Cloak Room, 프런트 룸Front Room, 컬렉션 룸Collection Room이라 명명된 전시실이 있다. 그런데 이름만 이렇게 붙인 것이 아니라 각 공간은 형태와 분위기에서도 닮아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컬렉션 룸을 보면, 구하우스가 지향하는 '일상 속 예술'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곳에는 집주인이 평소 관심을 갖고 모아놓은 물품들이 진열장에 전시돼 있는데, 크기가 작을 뿐이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집을 이렇게 꾸며 놓을 수 있다. 복도를 건너가면 서재Library가 나온다. 구하우스 전체적으로 공간을 먼저 설계하고 그 뒤에 작품을 배치했는데, 이 공간만큼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의 '모빌Mobile(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 2013)'을 염두에 두고 중이층으로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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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북쪽으로 가면 장 프루베 룸Jean Prouve Room이 있다. 장 프루베는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와의 조각적 협업에서부터 가구디자인, 미국 식민지 시대 주택 건축용 모듈식 설계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조합시킨 프랑스 디자이너다. 장 프루베 룸의 콘셉트는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다. 그래서 전시공간 안쪽으로 별도의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방글이가 "아빠 이거 진짜 쓸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화장실에 놓인 변기와 세면대가 실제 작동한다면 쓸 수 있겠지만 이 공간이 실제 게스트 하우스가 아닌 이상 실제 쓰기에는 좀 뭐하다. 심지어 변기에는 제조사 로고도 붙어 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순간 '화장실이지만 화장실로 쓰기에는 좀 뭐함'이 결국 구 하우스가 다른 미술관과 비교했을 때 갖는 '다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럼 이 화장실에 놓인 변기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샘Fontaine'이라 불리는 변기보다 더 맥락적인 '샘'이 된다. 이런저런 생각에 답을 못하고 "음~~"거리자 방글이는 장 프루베 룸을 나갔다. 정확한 답을 기다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장 프루베 룸은 구하우스의 다른 공간보다 더 오래된 분위기를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비치된 헤드보드Headboard가 있는 침대와 책상, 의자, 암체어Armchair 그리고 선반들은 1932년 프랑스 낭시Nancy의 한 대학교 기숙사 방(70개)을 위해 그가 고안한 가구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공간은 일종의 1930년대 모델하우스Model house 혹은 목업 룸Mock-up room이다. 그렇다면 장 프루베 룸만큼은 미술관이기보다는 집이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야 그의 가구를 집이라는 맥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 프루베 룸 서쪽에 있는 거실Living Room에는 실제 집 거실에나 있을 법한 한스 웨그너Hans J.Wegner의 '다이닝 테이블Dining Table'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로버트 인디아나Robert Indiana의 '러브 러그Love Rug(1995)'가 깔려 있다. 2층으로 오르면 가장 먼저 침실Bed Room이 나온다. 침실은 집에서 가장 은밀한 장소다. 그래서 멜 라모스Mel Ramos의 '치키타 바나나Chiquita Banana(2008)'나 탐 웨슬만Tom Wesselmann의 '모니카 누드 위드 스타킹Monica Nude with Stockings(1985/91)'과 같이 므흣한 표정으로 혼자만 주시하고 싶은 작품들이 놓여 있다. 그 외에도 구 하우스의 각 전시공간에는 전시공간의 이름에 걸맞은 전시품이 놓여 있다.

양쪽으로 나눠진 건축물 가운데에는 안마당이 있다. 안마당에 서면 북서쪽으로 문호천이 흐르고 그 뒤로 문안산이 펼쳐져 있다. 안마당의 평면은 장방형이지만 구 하우스는 전체적으로 └┘자 형태라 할 수 있을 뿐 사선과 곡선이 섞여 있다. 다양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구하우스에 사용된 외장재는 단 하나인 푸른빛의 벽돌이다. 구하우스의 벽돌은 벽돌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형태와 상관없이 북동-남서로 길게 한쪽 방향으로만 놓여 있다. 그래서 벽면이 곡선이거나 사선으로 꺾이거나 아니면 캐노피에서 반원이 됐을 때 벽돌의 모서리는 전체적인 방향성에 맞게 노출된다. 먼 거리에서 보면 빛의 방향에 따라 거칠거나 혹은 잔잔한 재질감이 드러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벽돌 하나하나가 드러나 전체적인 형태를 잊게 한다. 설계자는 이런 처리를 '픽셀레이션Pixellation'이라 설명했다. '픽셀레이션'은 '화상을 화소로 나누다'는 의미의 'Pixelate'의 명사형으로 비디오 기술 용어다.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는 이유는 주로 사람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인데 흔히 모자이크Mosaic라 부른다. 아마도 설계자는 집과 미술관이라는 뚜렷한 경계를 모자이크로 처리해서 흐릿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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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우스 입장료에는 음료수 가격이 포함돼 있다. 집 구경을 마치고 라운지에 앉아 멍한 상태에 빠졌다. 소설가 김훈이 얘기한 대로 풍경이 정말 언어와 사소한 관련도 없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여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구하우스를 만들듯 구정순이라는 개인의 취향이 하나하나 모인 수집품들이 대중에게 양질의 디자인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시국이 시국이었던 만큼 그날도 광장에 모일 촛불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빛도 떠올랐다(당시는 촛불정국이었다). 어릴 적부터 수피파 종교의식 같은 빙글빙글 도는 행위에 희열을 느꼈던 방글이는 예상했던 대로 스펀 체어에 빠졌다. 무아지경에 빠진 스펀 체어 위의 방글이를 보며 불과 몇 달 전 스펀 체어를 하나 사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던 소소한 기억도 떠올랐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누가 봐도 집주인 같아 보이는 구정순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녀의 반려견 융이 누워 있었다. 방글이는 융을 만져보고 싶어 나를 불렀다. 의자에 비스듬히 구겨 놓은 몸을 일으키며 방글이와 융에게로 갔다. 난 이런 모든 행위가 일어나는 이곳이 적어도 내 집은 아니어도 누군가의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됐든 구하우스에서 우리는 참 안온했다.


설계자: 조민석&Mass Studies(2016)

주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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