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를 듣다",
싱가포르 더 화이트 래빗

(2016.8.20, 방글이 9세)

by Archur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방글이를 조성진처럼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스트레스가 심해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 피아노가 그 하나의 수단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1년여가 지나자 방글이는 제법 피아노를 쳤다. 본격적인 여름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어느 날, 방글이는 더듬거리며 피아노를 쳤다. 그 선율은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였다.

"무슨 노래야?"

"'써머Summer'래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쳐주셨어요."

찾아보니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기쿠지로의 여름Summer of Kikujiro(1999)'이라는 영화의 OST였다.

'Summer'라는 노래는 피아노 버전이 훨씬 좋았다. 피아노가 들려주는 Summer는 습하지도 눅진하지도 않았다. 소나기로 열기가 식은 어떤 도시의 산뜻함. 그 언저리가 느껴졌다.

노래를 몇 번이나 반복해 듣다 방글이와 지니에게 말했다.

"올여름 가족여행은 싱가포르Singapore로 가자."


14년 전 난 싱가포르에 갔었다. 혼자 갔기에 그 열대도시에서 난 치열하려 했지만 그럴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몇 미터도 못 가 에어컨 아래에서 시원한 음료를 빨아대야 했다. 이번에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가니 치열할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기 위해 간 여행도 아니었다. 가이드북Guide Book을 뒤적거리다 싱가포르에서의 첫날 브런치Brunch는 이곳에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을 찾았다. 뎀시힐Dempsey Hill. 뭔가 그곳에서 'Summer'노래에 맞는 우리 가족만의 추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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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가장 번화한 오차드로드Orchard road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뎀시힐은 영국군이 주둔했던 탕린 배럭스Tanglin Barracks가 있던 곳이다. 그래서일까? 뎀시힐이라는 지명뿐만 아니라 이 일대 도로명 -Harding, Loewen, Malcolm, Ridout roads- 에는 모두 영국군 지휘관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지명인 '뎀시Dempsey'도 영국 제2군대를 이끌었던 마일즈 크리스토퍼 뎀시Miles Christopher Dempsey(1896~1969) 장군의 이름이다. 뎀시 장군이 이끌었던 영국 제2군대는 캐나다 군대와 함께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감행했다. 이후 1945년 뎀시 장군은 Allied Land Forces South East Asia(ALFSEA)의 총사령관이자 말레이반도 사령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면서 싱가포르로 왔다.


뎀시힐이 영국군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이곳 분위기에서도 흐릿하게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용산미군기지를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서울 한가운데에서 미국의 어느 한적한 동네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흐릿한 영국의 기운을 느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듯하다. 우리를 태운 택시가 홀란드 로드Holland Rd에서 민덴 로드Minden Rd로 접어들면서 푸르른 녹음이 훅 들어왔다. 싱가포르 어디를 가나 푸르름을 느낄 수 있지만 이곳은 무언가 달랐다. 길 양쪽에 나무들은 그 녹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푹 늘어져 있었다. 영국 조경양식의 특징인 픽쳐레스크Picturesque까지는 아니어도 싱가포르의 밀도가 이곳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잠시 후 싱가포르 첫날 아침의 목적지 '더 화이트 래빗The White Rabbit'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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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경, 이곳은 육두구 나무를 기르는 농장이었다. 농장은 윌리암 윌란스William Willans와 후 아 케이Hoo Ah Kay가 공동 운영했는데, 우리가 사회 과목 시간에 배웠던 서양인들의 자본과 현지인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플랜테이션Plantation이다. 당시 지명은 '마운트 헤리엣Mount Harriet'. 하지만 당시 많은 플랜테이션 농장에 전염병이 퍼졌고 그 원인으로 육두구 나무에 사는 딱정벌레가 지목됐다. 결국 이곳에 농장도 전염병이 퍼지지 않았음에도 1857년 운영을 멈췄다. 그리고 1860년 5월 윌리암 윌란스와 후 아 케이는 영국 군대에 농장을 매각했다. 100년 이상 이어온 이 땅과 영국군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땅을 매입한 영국 군대는 이곳에 '탕린 배럭스'를 조성했다. 그전까지 영국군은 현재 클락키Clarke Quay 북쪽에 있는 포트 캐닝Fort Canning에 주둔해 있었다. 그런데 포트 캐닝은 도심과 가까워서 영국군은 부담스러워 했다.


탕린 배럭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할 동안에만 전쟁포로수용소로 쓰였다. 이곳에 수용됐던 포로들이 태국-버마間 철도공사에 동원됐다. 1945년 9월 12일 일본군이 싱가포르에서 물러나면서 탕린 배럭스는 다시 영국군이 차지했다. 이후 영국군은 이곳을 Far East Land Forces의 본부로 지정했다.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고 1967년 7월 싱가포르 군대의 첫 번째 징집이 시작되면서 1971년 10월 31일부터 영국군 철수가 시작됐다. 그리고 1976년 마지막 영국군이 싱가포르를 떠나면서 탕린 배럭스는 싱가포르 소유가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곳은 여전히 군사시설(탕린 캠프)이었다. 이 일대가 민간에 개방된 시기는 1989년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옛 막사에 진기하고 이문화적인 가구나 카펫 등을 파는 앤티크 상점들이 들어섰다. 뎀시힐 일대의 이미지가 확연하게 바뀌고 외부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2006년 8월 Singapore Land Authority가 뎀시 로드Dempsey Road를 '랑린 빌리지Tanglin Village'로 새롭게 쇄신하면서부터다. 탕린 빌리지는 예술과 교육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용품 등을 다루는 곳으로 계획됐고 이곳에 대한 과거 기억이 없는 젊은이들은 특유의 보헤미안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이곳에 몰려들었다. 2006년 11월에는 싱가포르 비엔날레Singapore Biennale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더 화이트 래빗'는 군 막사로 쓰였던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 초입에 있다. 그래서 뎀시힐의 옛 군 막사를 본격적으로 보려면 이곳을 지나는 하딩 로드Harding Rd를 따라 더 들어가야 한다. 더 화이트 래빗은 식당, 바Bar 그리고 이벤트 공간이다. 하지만 원래 용도는 1930년대 영국군을 위해 지어진 '에베네저 채플Ebenezer Chapel'이었다. 종교시설의 흔적은 식당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확인할 수 있다. 열대기후라서 건물은 무거운 석재가 아닌 가벼운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지붕이 무겁지 않을 테니 회당 내부로 기둥을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건물 내부는 일반적인 종교시설의 삼랑식 구조가 아닌 통칸이다. 창은 모두 첨두아치Pointed Arch로 전면과 후면에만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가 있다. 제단이 있었을 거라 추측되는 벽에는 붉은색, 맞은편에는 청록색 빛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설치돼 있다. 종교시설이었을 때와 달리 현재 붉은색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한 붉은빛은 그 바닥에 경계 없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가르쳐서 될 수 없는 것은 빛을 읽는 감각이다." 19C에 활동했던 프랑스를 대표하는 초상사진가 펠릭스 나다르Felix Nadar가 한 말이다. 바닥에 그려진 저 붉은빛을 정말 읽고 싶었다. 맞은편 청록 빛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주출입구 안쪽에 있는 큰 바 테이블Bar Table과 그 안에 분주한 종업원들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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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종교시설은 제단 맞은편에 주출입구가 있지만 이 채플은 측면에 있다. 식당으로 개조되면서 바뀐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다. 하딩 로드로 연결되는 주출입구 맞은편에는 안쪽으로 이어지는 문이 하나 더 있다. 주출입구 반대편에 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안뜰과 연결된 한적한 공간이 나온다. 낮에는 지인들만 초대하는 작은 결혼식같은 이벤트 공간으로, 밤에는 바Bar로 쓰인다. 문 맞은편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 벽이 있다. 구멍 옆에는 '더 래빗 홀The Rabbit Hole'이라는 글씨가 걸려 있는데, 바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벽은 더 화이트 래빗 동쪽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과 작은 이 외부 공간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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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를 먹고 토끼 구멍을 통해 잔디밭으로 나갔다. 8월이었지만 싱가포르의 날씨는 한국보다 견딜만했다. 2016년 한국이 유독 더웠던 것도 있지만 잔뜩 곤두선 감각의 촉수가 싱가포르의 무더위가 아닌 다른 자극으로 여름을 느끼게 해 줬다. 인풋Input도 아니고, 아웃풋Output도 아닌 노풋No-put상태에서 'Summer'를 틀었다. 이곳에서도 'Summer'의 피아노 선율은 습하지도 눅진하지도 않았다. 그 하나하나의 음音들은 곤두선 내 감각의 촉수를 가볍게 튕겨내는 듯했다. 방글이는 벌써 구멍 안쪽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시간이 느린 듯했지만 움직이는 내 그림자마저 아까웠다.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다시 'Summer'를 틀었다. 고개를 까딱까딱 거리며 리듬을 맞추던 운전기사가 어떤 노래냐고 물었다. 'Summer'라는 노래 제목을 방글이가 말해주자 "It's summer now!!"라며 운전기사가 맞받아쳤다. 그렇게 4박 5일간의 싱가포르 일정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Summer'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2016년 여름의 싱가포르, 그중 뎀시힐과 더 화이트 래빗의 아침이 떠오른다. 노래에 맞는 우리만의 추억을 그곳에서 찾았다.


주소: 39C Harding Road,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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