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의 피를 딛고 서다.",
전주 전동성당

(2013.4.25, 방글이 6세)

by Archur

결혼 이듬해였던 것 같다. 장인 어른댁에서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성당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된 달력을 본 적이 있었다.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나름 문화재로 분류될 만한 성당을 꽤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성당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동시에 시간이 된다면 이 모든 장소를 직접 느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행히 집에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결심을 느리게나마 실행에 옮기고 있다. 달력 사진 속 성당을 하나씩 훑어보는데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처음에는 성당 자체의 아름다운 모습이 내 눈을 잡아 끌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시 후 '전통'하면 첫 번째로 꼽히는 '전주'에 이렇게 아름다운 서양식 성당이 공존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해(2007년) 마지막 주말 연휴에 지니와 전주로 향했다. 방글이는 뱃속에서 5개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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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은 태조로와 팔달로가 만나는 풍남문 교차로에 있다. 전주한옥마을 초입으로 경기전慶基殿과 약간 어긋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명동성당의 내부공사를 담당한 빅토르 루이 푸아넬Victor Louis Poisnel신부가 전동성당을 설계했다. 푸아넬 신부와의 인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건설에 참여한 중국인 기술자 벽돌공 100명도 명동성당 건설 때 고용됐던 벽돌공들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건립된 서양식 성당들 대부분이 그렇듯 전동성당도 파리 외방전교회와 관련이 있다. 1889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이던 보두네Baudounet신부는 전주로 와서 1891년 정확히 100년 전에 죽은(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수당한 순교지를 매입했다. 아마도 이 시기에는 전주읍성이 있었을 것이고 경기전과 그 부속건물들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개국왕 태조의 영정과 천주교 성당은 극적으로 마주 보고 있지 않고 전주읍성을 사이에 두고 나뉜 영역에 자리 잡고 있었을 듯하다.


1908년 보두네 신부 주도하에 성당이 착공됐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일제는 도로건설을 위해 전주읍성을 헐었다. 이제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서로 마주 보게 됐고, 푸아넬 신부는 성당의 정면을 북쪽에 둠으로서 1801년 신유박해 때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그의 동료들(유관검,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을 처형한 조선시대의 본가를 향해 당당히 얼굴을 드밀었다. 동시에 푸아넬 신부는 이때 헐린 전주읍성의 돌들을 가져다 성당의 추춧돌로 사용했다. 성당 부지에서 1791년 신해박해 때 참수당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머리가 풍남문에 걸렸다고 하니 성당은 이 두 순교자의 피를 딛고 서 있는 셈이다. 성당의 외형 공사는 1914년 끝났다. 하지만 모든 시설을 완비하고 열린 성당 봉헌식은 1931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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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성당 건립 120주년(2008년)을 준비하기 위한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비계Scaffold로 가려진 성당의 모습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3년 성당을 두 번째로 찾았을 때는 보수공사 이후 바뀐 성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당을 사진으로 처음 접했을 때도 그랬지만 전동성당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운데 종탑과 양쪽의 첨탑이다. 정면 세 탑의 구성은 최상부에 총화형 돔Bulbous Dome과 그 아래 창이 뚫린 드럼Drum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면의 수가 다르다. 가운데 종탑은 총화형 돔이 12각형이다. 그래서 그 아래 드럼도 12각형이다. 반면, 양쪽 첨탑은 총화형 돔과 드럼 모두 8각형이다. 종탑 아래에는 입구 홀Narthex이 있고 입구는 내부 삼랑식 구조와 동일하게 세 개다.


성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흰색 벽체에 회색 벽돌이 구조체에 쓰였다. 전체적으로 시공을 맡은 중국 벽돌공들의 솜씨가 이곳저곳에 묻어 난다. 특히 주랑Nave의 벽면 구성은 아름답다. 아케이드Arcade-트리포리움Triforium-고측창Clerestory 3단 구성을 모르더라도 각각의 처리가 정교하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가 설치된 시기는 1992년으로 그전까지는 목재 창틀에 일반 유리가 끼어져 있었다.

성당 동쪽에는 1926년 제2대 주임신부였던 마르셀 라크루Marcel Lacrouts신부가 건립한 사제관이 있다. 르네상스 양식에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사제관은 건물 발코니Balcony와 입구 상부 난간의 벽돌 처리가 인상적이다. 사제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현관-지붕창Dormer으로 이어지는 축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이 확연하다. 사제관은 사제가 생활하는 공간임에도 전주읍성을 향한 전동성당의 외침에 동조하듯 경기전을 향해 북향으로 지어져 있다.


2013년 성당을 다시 찾았을 때는 성당뿐만 아니라 사제관 그리고 그 주변까지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성당과 사제관을 중심으로 사적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기존에 무질서하게 있던 부대시설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제관 남쪽에는 사제관과 비슷한 형태로 한국 최초 순교자 기념관 두 동을 2011년 12월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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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을 통해 전동성당 일대가 밀도 있는 전주한옥마을에 텅 빈 공간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덩그러니 정리된 공원 위에 오브제Objet처럼 성당과 사제관이 놓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 터에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빼곡한 나무로 가득 찬 공원이 좋겠다. 전동성당은 전통을 첫 번째로 내세우는 전주에, 그것도 한옥마을에 그 서로의 역사가 엉켜 있듯 관계 맺고 있을 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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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전동성당을 다시 찾았을 때 방글이에게 물었다.

"방글! 옛날에 여기 왔던 거 기억나?"

"언제요?"

"음~~ 방글이 엄마 뱃속에서 5개월 때"

"에~~ 뭐야! 아빠 엉터리! 그땐 방글이 엄마 뱃속에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단 말이야!"

"어... 그래도 엄마가 느꼈던 공간이나 창의 색깔 뭐 이런 거 기억 안 나?"

"아빠! 근데 공간이 뭐예요?"

"방글아 공간은..."

난처해하고 있는데, 지니가 도왔다.

"방글! 저쪽으로 가면 민들레 많아요. 저쪽으로 가자.

애한테 뭘 바라니! 근처에 흑임자 빙수 맛있는 데 있데. 그거나 먹으러 가자."

아... 내 나름의 교육방식이 효과가 없는 걸까? 왜 방글이는 기억을 못 하지


긴 말로 설명 안 하고 한 단어, 한 마디로 자신의 생각을 뚝 내뱉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한 단어와 한 마디 뒤에 숨은 배경지식과 이론을 그 사람이 모두 알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감각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내게는 그런 직관적이고 육감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많은 곳을 직접 보고 그걸 정리하고 또 관련 책을 읽고 또 정리하는 평범한 꾸준함이다. 내가 10,000을 쌓아서 한 마디를 해야 비로소 내가 부러워하는 능력의 100을 쫓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방글이가 내가 부러워하는 그런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그런 감각을 느끼기 위한 무언가를 방글이의 무의식에 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내가 잘 아는 감각적인 공간 그리고 어떤 공간에서의 감각을 방글이에게 많이 전달해 주는 일이다. 그런데 일단 아이에게 공간이 뭔지를 먼저 설명해 주어야겠다.


설계자: 빅토르 루이 푸아넬(1914)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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