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걷고 뛰렴",
진천 이원아트빌리지

(2009.11.2, 방글이2세)

by Archur

방글이가 커가면서 주말을 보내는 장소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기본적으로는 '주말 미사와 건축 답사 그 사이'라는 개념은 그대로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집 근방에서 2시간 내로 길어졌다. 돌 전후로 걷기 시작한 방글이는 제법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 근처에는 마음 놓고 뛰놀만한 공간이 없었다. 아이의 질주본능을 해소시켜줄 장소를 찾다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이원아트빌리지를 발견했다. 그곳에서는 방글이가 어떤 방해도 없이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 예상은 적중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방글이는 완전히 녹초가 돼서 골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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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아트빌리지는 '한 건축가가 우리의 농촌과 자연에 현실적인 희망을 세우기 위해 건축 프로그램을 세워 사회적인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곳으로 평가된다. 2004년 건축가협회상 심사위원들은 "자연에서 싹이 돋아 자연의 숲이 이루어진 건축의 숲을 본 것이다. 인공조미료가 배제된 건강자연식품의 건축을 만난 것이다. 옥내 공간에 집중된 기존 건축과 달리, 옥내 공간과 옥외 공간이 등가로 다루어지면서 풍부한 공간 연출을 하고 있는 버나큘라Vernacular한 건축이다"라고 평했다.


이원아트빌리지를 계획·설계하고 심지어 시공까지 한 건축가는 원대연이다. 원대연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등 굵직굵직한 자신의 작업을 뒤로하고 지명도 생소한 진천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6년 뒤인 2003년 이원아트빌리지를 완공했다. '이원'은 건축가의 아내 이숙경 씨의 '이'와, 자신의 '원'을 합친 이름이다. 원대연은 7,993㎡ 크기의 대지에 자신이 사는 상촌재, 상촌미술관, 원대연 건축환경연구소, 갤러리, 전시장, 방문객센터 등을 자연의 흐름에 맞게 툭툭 놓았다. 그런데 그 '툭툭'이 무심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농촌생활에 맞는 건축물의 가장 적합한 모습을 찾기 위해 짓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주변 환경과 하나 되는 단일 건축물을 넘어 마을을 만드는 시각을 찾았다.


원대연은 최효승과의 인터뷰에서 "흔히들 경관 좋은 곳에 큰 창을 내어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자연을 활용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경사를 이용한다든가 풍수지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연을 거론하기도 하고요. 물론 이러한 논리로 자연을 말하고 환경을 생각하며 건축을 한다는 것은 상식이 되는 일입니다만, 그것으로는 자연에 지은 집이 되질 않습니다. 살아보면 금세 알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살아갈 삶의 리듬이 자연과 일치되도록 하는 그런 집을 지어져야 합니다. 조경이라는 단어도 자연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자연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원래부터 있는 듯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축도 매한가지입니다. 글자 그대로 스스로 있는 것에 도달할 때,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때라야 자연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리뷰Review: 이원아트빌리지, 건축가Architect 2005.09 Vol.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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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아트빌리지 내 건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사실 눈에 띄는, 건축 잡지에 나올 만한 건축물은 아니다. 어찌 보면 정말 원대연이 추구하고자 했던 농촌환경에 어울릴만한 건물들이다. 하지만 그런 눈에 띄지 않는 개별 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꽉 짜인 관계성을 보여준다. 바로 이 관계성이 건축가가 이곳에서 추구했던 것이다. 그는 "많은 건물이 나무와 함께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지기 쉬운 뒷길이나 어두운 틈을 개성 있는 곳으로 드러나게 해서 주主 공간 못지않은 곳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이곳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게 함으로써 모두가 서로에게는 필요한 것이 되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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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천은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去龍仁'이라는 문구 외 이렇다 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광역시급은 고사하고 시市급도 아닌 지방의 군郡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다. 그나마 최근(2017년)에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이 개장하면서 언론에 종종 노출되고 있다. 건축가 원대연은 이런 상황 속에서 농촌 풍경을 지닌 땅에 놓인 하나의 건축물이 아닌 작으나마 그리고 제한적이나마 건축가가 제시할 수 있는 나름의 방안을 이원아트빌리지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건축물 내부가 아닌 건축물들을 잘게 나누어 만든 관계 속에 방문객들이 들어서길 바랬다. 그래야 그 관계가 비록 산만하거나 미로 같이 복잡할지라도 삶의 연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도시인이 꿈을 좇아 찾는 곳. 이것이 원대연이 이원아트빌리지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다.


물론 이원아트빌리지가 갖는 한계도 분명하다. 원대연은 그가 쓴 《여행 넘어서기》나 방문객센터 벽에 걸린 이탈리아의 알베로벨로Alberbello, 그리스 에게 해에 있는 섬 마을의 공간을 이곳에서 구현해내고자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원아트빌리지는 다수의 사람이 긴 시간 일군 마을이 아니라 한 건축가가 만든 복합공간이다. 그래서 이원아트빌리지에서는 농촌의 삶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그에게 동기를 제공한 마을도 관광 비수기가 되면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아 썰렁해지는 관광 마을이다. 더불어 그가 제시하는 프로그램도 농촌마을과 지역경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방도시에서 벌어지는 사업들은 대부분 이원아트빌리지가 표방했던 '예술', '친환경', '농촌에서의 대안적 삶'을 표방한다. '이런 아이템Item 외 다른 건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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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원아트빌리지는 실제 행동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가 있다. 그것도 한 건축가가. 앞서 언급한 지방도시에서 벌어지는 사업 중 실제 진행되는 경우는 1/10도 안 된다. 더군다나 이런 아이템을 적용해서 나온 결과물도 전혀 근거 없는 프랑스 마을이니 양식조차 국적 불명인 독일 마을이 전부다.

이원아트빌리지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최근 또다시 불고 있는 개발 아이템인 '친환경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친환경'은 태양광과 같은 단순한 하드웨어Hardware가 아니라 도시의 삶에서 찾지 못한 대안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진정한 친환경 마을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마을 공동체다. 그 최종의 모습이 슬로우 시티Slow City가 될 수도 있고 에코 뮤지엄Eco-Museum이 될 수도 있으며, 퍼머컬쳐Permaculture가 돼도 상관없다. 솔직히 난 이런 개념들의 정확한 차이를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원아트빌리지가 마을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삶을 조금씩 수용해 나가야 한다.

방글이는 예상대로 지쳐 잠들기 직전까지 뛰어놀았다. 나와 아내는 오랜만에 여유로움을 즐겼다. 여유로움 속에서 방문객센터에서 표를 건네주었던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됐느냐며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원대연과 함께 《건축잡지 플러스Plus》를 2000년까지 발행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999년~2000년 동안 난 이 잡지를 구독했었다. 당시《플러스》를 읽으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간에 대한 내 해석을 글로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는 밖에 소나무를 다듬는 인부를 지켜보고 있는 한 분을 가리키며, 저분이 원대연 씨라고 알려줬다. 방문자센터를 나와 인사를 드렸다. 이원아트빌리지를 들어오기 전 지니가 웨이브 진 헤어스타일이 왠지 범상치 않아 보인다고 얘기했던 분이었다. 편한 복장으로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의 원대연 씨와의 짧은 대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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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 저도 현재 건축사무소에 다니는데요. 잡지에 이곳이 너무 잘 소개돼 있어서 오기 전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일하시는데요?"

"'삼우'요."

"거기 박승 씨가 대표로 계시는 곳이죠?"

"제가 입사할 때는 대표셨는데요.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구나. 어떻게 좋은 시간이 됐어요?"

"저도 그렇지만 아이에게 너무 좋은 시간이었요."

이때는 이미 방글이는 내 품에서 자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곳이 좋은 상상력을 주었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상상력이죠."

"네... 충분히 그랬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역시 원대연은 건축가였다. 방글이에게 공간을 통해 '상상력'을 전달하고픈 건축가. 아마도 그는 그런 상상력을 가지고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와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건축적 대안, 농촌경제에 대한 그만의 제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삶의 다른 모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계자: 원대연(2003)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미잠길 66

참고사항: 현재 이원아트빌리지는 폐쇄됐다. 어떤 사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건축가 원대연의 꿈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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