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어린이대공원과 꿈마루

(2011.8.26, 방글이 4세)

by Archur

"아빠! 우리 동물 보러 가요!"

생각해보니 박물관과 미술관을 데리고 다니느라 정작 아이들의 로망 동물원을 데리고 간지 꽤 됐다. 뭐 그렇다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간 건 아니다. 다만 아이가 너무 어렸을 때 가서 기억을 못 할 뿐. 물론 그 후에도 동물원에 몇 번 가려했었다. 문제는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대기열이 너무 길어 중간에 다른 곳으로 차를 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의 간곡한 부탁도 있어서 평일에 휴가를 내고 능동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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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 어린이대공원 일대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왕비 순명황후의 능이 모셔져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는 표현에서 무상함과 슬픔이 느껴진다. 하지만 현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만 가득하다. 기왓장이 올라간 정문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음악분수가 나온다. 그리고 그 너머로 H자 콘크리트 구조체가 인상적인 꿈마루가 서있다. 1926년 일본인들은 순명황후의 능을 남양주로 옮기고 골프장을 만들었다. 해방 후에도 이 땅은 '서울 컨트리클럽'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클럽하우스는 없었다. 그래서 건축가 나상진의 설계로 1968년 클럽하우스를 만들었다. 꿈마루의 전신이다.


경사로를 오르면 꿈마루에 다다른다. 담소를 나누는 골퍼들의 뒤를 캐디들이 따라 올라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경사로를 오르자 갈색 철로 만들어진 프레임이 나왔다. 프레임은 준공 당시 만들어졌던 클럽하우스의 입면이다. 그런데 건물이 교양관이었을 때 여러 용도로 바뀌면서 철거됐다. 그 철거된 입면을 2010년 교양관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재수립한 조성룡이 살려냈다. 하지만 되살아난 입면은 더 이상 클럽하우스를 위한 입면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조성룡은 프레임만 세워 건물 내외부 사이 흐릿한 경계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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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층을 오르면 적벽돌로 만들어진 관리사무실, 화장실, 회의실 등이 나온다. 교양관이 꿈마루로 바뀔 때 살아남은 기능들이다. 조성룡은 기존 재료들과 최대한 어울리는 적벽돌을 택했다. 건물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가운데 연못이 있는 피크닉 정원으로 나가는 밝은 출구와 그 옆 그래서 더 어두워 보이는 반원형의 공간이 있다. 골프 경기를 끝낸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은 이 반원형의 공간에서 샤워를 하고 피크닉 정원에 있던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들 중 박정희 대통령도 있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장을 옮기고 어린이를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린이대공원 조성 기본계획은 당시 홍익대학교 교수였던 나상기가 맡았다. 건물이 가지고 있는 클럽하우스로서의 역사는 2년으로 끝났다.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다. 클럽하우스는 교양관이 됐다.


피크닉 정원의 기존 구조체에는 벗겨진 페인트가 그대로다. 벽체는 조악하고 상판을 드러내 변형된 부분은 너무 적나라하다. '교양관', 왠지 대학 캠퍼스 내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시설명 같다. 어린이들을 위한 대공원에 '교양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누군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교양관은 그 시작부터 성격이 모호했다. 그러니 건물은 새로운 용도를 담기 위해 계속 바뀌었다. 나상기는 내부 공간 구획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건물 구조를 설계했다. 교양관은 그 구조 덕을 봤다. 어린이들은 부모 손을 잡고 교양관에서 개최된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지금은 정온한 분위기의 피크닉 정원이지만 교양관 전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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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마루'라는 시설명은 교양관과 달리 시민 아이디어 공모로 채택됐다. '어린이들의 꿈이 넘쳐나는 공간'라는 뜻이다. 피크닉 정원에서 한 층을 더 오르면 북카페가 나온다.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시설이지만 분위기는 어린이들을 위한 여느 시설과 다르다. 어린이들을 위한 대부분의 시설들은 알록달록한 원색의 현란함과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의 장식이 더해져 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동심의 표현이다. 반면 꿈마루는 무채색이고 동심에 대한 상징도 없다. 하지만 조성룡은 아이들의 미적 감각은 어른이 생각하는 고정관념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무채색이기는 하지만 꿈마루의 독특한 구조와 공간이 간직한 이야기가 많은 어린이들에게 색다른 체험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카페에서 반대쪽으로 나오면 야외 데크가 있고 다리를 통해 피크닉 정원으로 내려올 수 있다. 데크 위에 서면 어린이대공원의 녹음이 감싼다. 경기를 끝낸 골퍼들도 클럽하우스 옥상 데크에서 골프장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전시를 보러 교양관에 왔던 누군가는 당시의 풍경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내 어릴 적 기억에 교양관과 어린이대공원에 풍경은 없다. 어린이대공원은 내가 태어나기 4년 전에 조성됐다. 그럼에도 난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한 공간이 개인에게 가치가 있으려면 그 개인의 기억 속에 그 공간이 있어야 한다. 기억 속 풍경을 현재 다시 보는 것과 지금 그 풍경을 처음 보는 건 감동의 심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땅과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로 인해 조성룡의 꿈마루 작업은 교양관 그리고 그 이전 클럽하우스라는 과거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됐다. 그는 꿈마루에서 클럽하우스였을 때의 흔적과 비록 많이 훼손됐더라도 교양관일 때의 흔적이 함께 드러나길 원했다. 그곳에서 '풍경을 보는 주체'가 현재 보이는 풍경뿐만 아니라 클럽하우스 그리고 교양관이었을 때 풍경도 같이 보길 바랬다.

글을 쓰는 동안 건축물의 현재 이름인 '꿈마루' 외에도 과거 이름인 '클럽하우스', '교양관'을 번갈아 쓸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명칭을 통일해서 다시 쓰려했지만 그 공간에 포개져 있는 그 시대 흔적을 얘기할 때마다 현재 이름인 꿈마루로 부르는 게 영 어색했다. 꿈마루는 그런 공간이다. 과거에 것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기에 과거의 이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현재 그 건축물의 이름으로 그 공간을 부르기에는 뭔가 어색한 그래서 과거의 기억과 풍경을 교차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런 공간이다. 클럽하우스, 교양관, 꿈마루의 중첩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큰 의미를 갖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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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동물을 보고 점심을 먹은 후 8월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꿈마루로 갔다. 꿈마루 3층에 있는 북카페에서 정말 고요히 -이보다 더 중요한- 시원하게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북카페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도 꽤 있어서 방글이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나와 달리 방글이에게 어린이대공원과 꿈마루의 풍경은 그렇게 4살 때 시작됐다. 꿈마루는 분명 주말이면 주차하기도 힘든 어린이대공원에서도 이상하게 외져 있다. 위치상으로는 대공원 한가운데이고 정문을 들어와 바로 보이지만 어린이대공원의 분주함에서 꿈마루는 제외돼 있다. 이런 사실을 조금 안쓰럽게 볼 수도 있다. 공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점이 안타까웠는지 건물에 간판을 달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꿈마루의 한적함이 좋다. 아는 사람만 누리는 한적함이라 해도 좋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이라고 모든 곳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크닉 정원이 도시락을 먹으러 온 가족들로 가득 차도 좋지만 어린이대공원에서도 조용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설계자: 나상진(1968) + 조성룡(2011)

주소: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최근 꿈마루 옥상에 태양광판이 설치됐다. 친환경으로 가는 에너지 정책은 대찬성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대나 태양광판을 설치하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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