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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o Choi Jan 12. 2016

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사랑, 시작과 끝

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arco.choi - 찍고, 쓰다.



이것저것 해봤더니 별거없지 이젠여기


나는 천천히 내 눈 앞에 놓인 수많은 것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렬하게 떨어져 내리던 한여름의 태양과는 다른 조사각을 갖고 떨어지는 은은한 12월 26일의 빛.

내려오는 빛을 따라 보이는  각자 가지각색의 생김새와 표정의 사람들.

나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인원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열차의 풍경.


지독하리 만치 반복해서 봐오던 이 풍경은 분명 매일매일 다른 모습이었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지겨움인 동시에, 권태로움의 상징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가고, 그런 삶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 이 전철이라고도 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이곳, 서울을 떠나고 싶은 또 다른 이유일 뿐이었다.


시선을 옮겨,  이곳저곳을 다시 둘러보려 했지만 이제는 인파 속에 묻혀,

은은하게 떨어져 내리던 12월 26일의 빛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 않는 촛불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나를 극으로 몰고 또 몰았던 도시의 삶.

횡제수 조차 한 번 없던, 서울에서의 생활들이 달리는 전철의 덜컹거림을 따라 스쳐 지나간다.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이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머리로만 알고 있던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삶의 정서적인 면을 이제는 가슴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개미가 기고, 마른  흙바닥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론이 아니라 가슴으로 알 수 있다.


나의 때 이른 이주 예보를 보거나 듣게 된 사람들은, 누리고자, 쉬고자 하기에 서른은 이르다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치기 어른 생떼도, 바쁜 생활이 지쳐 도망치듯이 떠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진짜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나이고 싶었으며, 나로 살고 싶었을 따름이다.


변모하고 내달리는 세상의 족적들에게 시달리고 살기에는,  이곳저곳 뿌려진 순간의 조각들이 너무 예쁘다.



진정 나로서 바라고, 바라건대 단 하나.

나로서 나를 위해서 삶을, 삶으로써 살아가기를.

그래서 작가로서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가장 나 답다.


태어나고, 자라, 장성하여  한 줌의 흙이 되기까지.

생이라는 그 일련의 자욱이자,

시련으로 흩뿌려진 순간들의 이유들을 찾기 위해.


나로서 나를 위해서 삶을, 삶으로써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갈 테야.


천천히 조금 더 멀리 구심점을 벗어나면서.


조금 더 멀리.


Far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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