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작과 끝
arco.choi - 찍고, 쓰다.
1. 쓸데없는 자학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반성이라고 했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자학이었다.
스스로이 던진 무수한 자학과 물음에 대한 해답들은,
회피되고 왜곡된 변명들로 인해 갈피를 잃었다.
스스로에 대한 물음임에도, 나는 거짓된 답변으로 나의 진심을 왜곡하였고,
또한 회피해왔다.
무서웠으니까.
쓸데없이 습관이 된 자학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나는.
이로써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일반화된 사회인이 되었다.
이따금씩 차오르는 감정적인 다짐들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러한 추론의 결실을 맺었다.
"어차피 무너질 것이라는 것".
사람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게 늘 이런저런 변명이 가득한 누군가 일뿐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곁눈질, 눈치라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단은 나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목표.
말하기를 쉬이 하지 않고,
듣기를 쉬이 하지 않고,
결정하기 역시 쉬이 하지 않는.
다독임도, 용서도, 훈화도,
지금은 다 필요 없다.
스스로 해야만 한다.
2. 잃어버린 것은 어차피 잃어버린 것이다.
일부는 실수로.
일부는 또 실패로.
일부는 스스로이.
그렇게 오늘도
잃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런 반복으로 역시나 무언가를 잃거나 버리고 있지만.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내 탓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겠지.
어쩌면, 그게 사실일 수도 있고.
다짐한다고, 잃어버리지 않는다 생각한 것은, 나의 오만이 아니었을까.
교만했을까.
사들이고, 팔아치우는 게 너무 쉬워진 만큼.
잃어버리는 것도 쉬워진 걸지도.
그래서 널 버린 걸 지도 모르지만.
널 버리면서 나의 기억도 파편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이제는, 오늘의 나는.
그만 허우적거리고 싶었으니까.
너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따금씩의 희망고문으로
실존 마저 금이 갔으니까.
그런데,
이젠 그러면 안 될 거 같다.
죽어버릴 것 같으니까.
그리고 장황한 글처럼 괴롭지는 않다.
이제 나 꽤 잘 산다.
걱정하지 마라.
3. 태양이 뜨거웠고, 눈이 부셨다.
그래서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태양은 뜨거웠고, 눈도 부셨다.
태양이 온몸을 덮어 열이 올랐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태양의 잔상 덕에 눈은 시큼 거리고, 따끔거렸다.
그렇게 마주한 태양의 볕이 너무 뜨거워서 힘들었는데
그러든지 말든지 시간은 흐른다는 진리.
어쨌든 태양은 떨어져 밤이 되었고,
아직은 몸의 열이 덜 식었기도 하고, 눈도 이따금씩 시큼, 따끔하지만.
그래도 지금 좀 덜 한건 사실.
태양을 다시 마주할지, 그늘로 거처를 옮길지 고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