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만난 도인에게
배가 아파 상가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데, 고정된 시선 바깥으로 낯익은 냄새가 났다.
그건 바로 종교적 꼰대의 향기.
체크남방, 면바지, 검은색 크로스백 그리고 스포츠머리. 그 문제적 남자는 인사도, 일말의 추임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좋은 말씀 좀 들어보시죠?"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처럼 말하지만,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풀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뱀과 매한가지.
순간, 두뇌 회로는 육두문자를 떠올렸지만, 그의 머리칼이 검은색보다 흰색의 비중이 더 커 시선을 떨구고 "좋은 말씀, 좋은 이야기 듣고 싶은 생각 없으니 그냥 가시죠"라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들어봐요. 행복하세요? 아니잖아요 제가 행복을 찾아드릴 수 있어요... 우주가..."
또 육두문자가 올라왔지만 이내 참곤, 차분하지만 칼 같이 답변을 해주었다.
"종교적 이야기라면 그만두시죠. 짧은 인생 중에 반절 이상을 교회에서 보냈고 또 반절 이상은 신학대학원까지 나오신 어머님께 교육을 받았으나 양지에서의 종교는 다 장사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종교는 양지가 아니라 음지에서 피어야 제 몫을 할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음지에 있지 않습니다. 정말 누군가의 행복을 설계하고 돕고 싶으시다면 노방이 아니리 구청에 가서 불우한 이웃을 돕고 싶다고 말해보세요. 그게 더 합리적인 행복의 전달이지 싶네요"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한들 무조건 자기네 교회인지 뭔지로 가야만 한단다. 그 이유를 묻자 와보면 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같은 모호한 대답 일색.
순간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인지, 연행하려는 것인지 어지러웠다.
자기네들은 신의 음성을 매일 직접 체험하며 행복한데 이곳에 사람들은 다 불행하니, 구원하기 위해 노방 전도를 한다느니 그런 자신들은 모두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다느니,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입을 닫아버렸다.
신의 음성이 들린다는 자들이 뱀의 모습과 하등 다름이 없고, 논리의 박약과 지식의 얕음을 자신이 채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떠밀며, 막연히 상대의 생각을 업신여긴다니. 천사에서 악마로 전락한 태초의 악마가 이와 닮아있지 않을까.
종교는 칼이 아니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넓은 바구니 같아야 하고, 높은 곳에 서서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처럼 공의롭고 단단하게 낮은 곳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나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