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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o Choi Nov 16. 2019

그 골목에 들어서면

비문



2014 서울숲 / @arcochoi


생각보다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선택할 수 있는 일보다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물론 생각보다는 말입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그럴 것이고, 대인관계에서도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제가 느끼기에는 기억이라는 것이 특히나 그렇습니다.

‘기억’이란 것은 일종의 경험의 족적.
그러니까 발자국이랄까. 그림자랄까요.

내 발자국이 왜 이리 크지? 왜 이리 작지?
내 그림자는 왜 이리 길지? 왜 이리 진하지?
그런 생각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기억과 마주한다는 것도 그래요.
이미 벌어진 그리고 지나버린 계절들에게


“내가 이랬다면”, “내가 저랬다면”
그런 생각들이라고 뭐 다를까요.

그렇지만, 그렇대도.
나는 그 기억 앞에서 그런 무용한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네요.
“아마 언제까지고 그렇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사 온 망원동 거리를 걸었습니다.
좋은 음악에 책을 조금 읽고 싶어서요.

그러다 어떤 작은 골목길을 들어섰을 때
낯설지만 익숙한 어떤 감정에 찾아와 마음이 울렁거려 혼났습니다.
분명 처음 본 낯선 풍경이었습니다만 우스꽝스럽게도
지난날 걸었던 전혀 다른 골목에서의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어요.

아직은 조금 아프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멍청한 생각에 집중해버렸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참아줬다면...”

뜨거웠던 사랑의 종말은 늘 가정이 붙나 봅니다.
내가 조금만 더, 내가 그때 그랬다면 따위에 가정들 말입니다.
기억들이 추억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묻히기 전까지는 아마도.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 참 많이도 사랑하고 집중했었구나.”

아직 추억이란 수식으로 기억을 덮을 수는 없지만
분명 언젠가는 그런 날이 와서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후회가 아닌 그런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그러니까 울렁이는 저 골목들을 피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 울렁이는 마음들이 모여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고 내 어리석음들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 내가 될 수 있길 오늘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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